[가보니] '자전거 천국'이라더니..'자동차 천국'이네

윤희일 선임기자 2017. 11. 2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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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제 이름은 ‘아줌마 자전거’입니다. 비싸고 화려한 부품이나 장식품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 주인님이 짐을 싣는 데 유용한 바구니와 짐받이가 앞뒤에 달려있지요. 보기에는 촌스럽지만, 교통수단으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얼마전 ‘자전거 천국’이라는 소문을 듣고, 이곳 세종시로 왔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저의 주인님이 ‘자전거 천국’을 명분으로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먼저 제 주인님을 잠시 소개할게요. 제 주인님은 ‘자전거는 교통수단이 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입니다. 출퇴근·통학·업무·쇼핑 등 일상생활에서 자전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운동을 펼치는 사람이지요. 얼마전까지 도쿄특파원으로 일을 했는데 그때도 ‘자전거 타고 취재다니는 기자’로 꽤 이름을 날렸다고 하더군요.

그와 함께, 아니 그를 태우고 매일 자전거 관련 시설이 전국에서 최고라는 세종시를 돌고 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 6일에는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전거 천국이라는 세종시에서 말입니다.

■‘자전거 천국’이 아니라 ‘자동차 천국’

“아, 바로 여기야. 여기만 보면 세종시에서 자전거가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지.”

멋지게 꾸며진 자전거도로 위를 달리던 주인님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꽉 잡더니 흥분을 하더군요. 잠시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까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등의 간판이 보였어요. 청사 입구에서 교차로로 빠져나가는 길이었지요. 자전거도로를 포함한 모든 인도가 갑자기 뚝 끊겨있더군요. 불법 주차된 차량이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꽉 막고 서 있는 겁니다. 자전거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은 전혀 없었고, 할 수 없이 주인님이 내리더니 저를 끌고 차도로 내려가 ‘장애물’ 지점을 통과하더군요. 사실 저도 성질이 나서 그냥 차에 들이박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만, 참았지요. 저는 ‘착한 자전거’니까요.

불법주차 차량에 막혀버린 정부세종청사 앞 자전거도로와 인도. 자전거를 타고가던 한 시민이 가던 길을 멈춰서서 불법주차차량을 바라보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오늘 하루만 이런 게 아니야. 내가 매일 체크를 했는데 지난 10월 1일부터 지금까지 휴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이 도로를 불법주차차량이 점거하고 있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야. 어떻게 ‘자전거천국’을 내세우는 세종시에서, 그것도 정부청사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거지.”

이 도로는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평일은 언제나 불법주차차량으로 완전히 점령당하는 곳이지요. 자전거 탄 사람은 물론 보행자조차 지나다니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얘깁니다. 자전거 이용자는 위험한 차도로 내려가야만 통행할 수 있지만, 누구 하나 문제제기를 하지 않더군요.

왜냐고요? 답은 간단합니다. 자전거가 차의 힘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죠. 자전거 타는 사람은 별로 없고, 차 타는 사람만 많기 때문이란 얘깁니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차 타는 사람만 소리치는 곳이 바로 이 세종시라는 겁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어느정도 있어야 막힌 자전거도로에 대해 항의라도 한 마디 하게 될 텐데,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는 얘기죠.

정부세종청사 앞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불법주차차량들. 불법주차차량이 자전거도로와 인도를 완전히 막아 자전거와 사람이 통행하기 어렵지만, 당국이 방치하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정부세종청사를 조금만 돌아다녀보면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의 주역인 공무원들이 여러가지 교통수단 가운데 무엇을 중시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잠시 청사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보면 여기저기가 전쟁터입니다. 청사 지하주차장과 지상주차장은 아침마다 차를 대려는 사람들로 생난리입니다. 주차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죠. 아름답고 여유롭게 지어진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정부세종청사의 지상 공간을 보면 여유로움은 도대체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빈 공간이 있으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차가 세워져 있기때문이죠. 물론 주차구역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마구 세워놓은 차량들이 뒤엉켜있어서 사람들이 걸어다니기 조차 어려운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세종시는 ‘자전거천국’이 아니라 ‘자동차천국’인 겁니다.

■세계 최고의 자전거도로에서 즐기는 ‘황제 자전거’

‘세계 최고 수준의 자전거 인프라 구축’

우리 주인님이 세종시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으로 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세종시를 세계 최고의 자전거친화도시로 만들겠다’는 구호와 함께 멋진 청사진이 제시되지요.

행복도시건설청은 현재 241㎞인 행복도시 내 자전거도로를 2030년까지 445㎞로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세종시는 세계최고의 자전거 인프라를 바탕으로 현재 3.1%에 불과한 자전거의 교통수단 분담률을 2030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의 지표만으로도 세종시 가운데 구도심을 제외한 행정중심복합도시 지역은 이미 세계 최고의 자전거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인구 1만명당 자전거도로 길이는 14.2㎞로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자전거도시로 알려져 있는 덴마크의 코펜하겐(7.6㎞)이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6.2㎞)에 비해 배 이상 깁니다. 인구 1만명당 자전거도로 길이가 0.9㎞에 불과한 서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요.

이런 지표들만 보면 세종시는 자전거타는 사람이 넘실 대는 ‘세계적인 자전거도시’가 돼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시민들이, 특히 당국의 정책을 이끌어야할 공무원들부터 자전거를 멀리합니다.

세종시의 이런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자료가 하나 있습니다.

행복도시건설청이 지난 9월 실시한 자전거통행량 조사 결과를 보면 세종시를 대표하는 거리인 정부세종청사 고속버스정류소 앞길을 지나간 자전거는 하루평균 112.8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루 중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간을 12시간으로 본다면 본다면 자전거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시간당 10명도 안 된다는 얘기죠. 세종시의 강남에 있는 세종시청 앞의 경우는 하루 평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72.8명인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자전거 탄 사람을 1시간에 6명 정도 볼 수 있다는 얘기네요. 세종시의 간선 자전거도로가 이 지경인데 다른 자전거도로는 어떻겠습니까.

“세계 최고의 시설인 것은 분명한데 아직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지 않아요. 특히 공무원들이 안 타는 것이 문제지요.”

행복도시건설성 교통계획과 안교필씨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집이 멀어서, 공사중인 곳이 많아서, 공사차량이 많아서, 땀이 나서, 자전거를 세울 곳이 많지 않아서….

세종시 주민과 공무원들이 자전거를 타지 않는 이유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 동안 주인님과 함께 세종시를 직접 돌아다녀본 결과, 이는 대부분 기우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세종시내 주요 아파트단지에서 정부세종청사·세종시청을 자전거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부분 30분 안쪽입니다. 결코 멀지 않습니다. 시내의 주요 자전거도로 구간 가운데 공사중인 곳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자전거도로가 대부분 보도 위나 하천길 등에 설치돼 있기 때문에 공사차량과 직접 마주칠 가능성도 아주 낮습니다. 정부청사의 경우 샤워장 등이 잘 마련돼 있어서 땀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고, 시내 곳곳의 자전거주차장은 비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세종시의 자전거 인프라에는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공시설이 늘 그렇듯이 전체시설 규모보다는 ‘디테일’에 문제가 있습니다. 얼마전 대전에서 세종시로 자전거를 타러 왔던 박모씨(49)는 세종시내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큰 봉변을 당했습니다. 교차로의 자전거 주행로를 이용해 길을 건너다가 차도에서 인도로 올라가는 부분에서 자전거가 경계석과 충돌한 것입니다. 사고 현장에 가봤습니다. 설계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보통 자전거도로를 만들 때는 차도와 인도 사이의 경계석을 자전거가 지나가기 좋게 낮춰서 시공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인데요, 세종시의 경우 경계석이 낮춰진 부분의 넓이가 자전거 주행로에 비해 좁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교차로를 건너 인도에 설치돼 있는 자전거도로로 올라서려다가는 경계석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구나 어두운 밤이 되면 그 위험성이 더 높아집니다. 박씨도 어둑어둑해진 시간대에 사고를 당했거든요. 또 일부 교차로의 경우는 자전거 주행로 표시가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고요.

세종시내 교차로의 자전거 주행로에서 인도에 설치된 자전거도로로 올라가는 부분에 높은 경계석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위험하다. 실제로 여기서 사고를 당한 사례도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세종시에는 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공자전거 ‘어울링’이라는 놈이 있습니다. 우리 주인님만 타는 저를 ‘자가용’이라고 한다면, 이놈은 ‘영업용’이라고 해야하겠네요. 어울링은 현재 세종시내 72곳에서 735대가 운영되고 있습니다만, 이 중 상당수가 하루 종일 놀고 있었습니다. 세종시의 자료를 보면 어울링의 하루평균 대여건수는 558건에 불과하더군요.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하루종일 서 있는 녀석이 꽤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전거가 무시당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어울링이라고 별 수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세종시가 어울링의 활성화를 위해 작고 가벼운 노약자용 자전거를 공급하는 등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결과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지요.

세종시의 공용자전거 ‘어울링’ 뒤로 정부세종청사와 주차장에 가득 들어선 차량이 보인다. 윤희일 선임기자

혹시 ‘황제골프’라고 들어보셨는지요?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앞과 뒤에서 골프플 치는 사람(팀)이 없는 텅빈 골프장에서 자기들끼리만 마음 놓고 즐기는 골프를 ‘황제골프’라고 부르곤 하지요. 세종시에는 이와 비슷한 ‘황제자전거’를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사통팔달 시원하게 뚫린 자전거도로에서 나만 홀로 탈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도 황제자전거네”

우리 주인님이 제 위에 올라타면서 수시로 내뱉는 말이지요.

아, ‘황제자전거’를 보다 확실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저는 얼마전 대전에서 세종까지 이동하면서 저의 짧은 자전거 삶 중에서 최고의 기분, 황제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전~세종 사이 도로에는 이름하여 ‘자전거고속도로’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두 도시를 연결하는 대로의 중앙에 만들어진 이 자전거도로는 정말로 환상적입니다. 대전 반석에서 세종시 초입까지 약 8.8㎞ 구간을 단 한 번도 내리지 않고 질주할 수 있는 구간이인데요, 상당 구간은 지붕까지 있어서 해가 뜨거운 시간 대나 비가 내릴 때도 비교적 쾌적한 라이딩을 즐길 수 있지요. 시내에서 끊임없이 만나는 교차로와 신호등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해온 제 입장에서 이 도로에서의 주행은 차라리 ‘사치’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헐…. 그런데 말입니다. 이 좋은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동안 만난 내 친구, 그러니까 자전거는 딱 6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날이 토요일 오전이었는데, 제가 달린 30분 동안 자전거를 만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황제’가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제 주인님은 그날도 하루종일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아이구 이게 무슨 돈 낭비야.”

■자전거천국을 꿈꾸는 사람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꿈이 있습니다. 자전거가 무시당하는,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늘도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요.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일단 자전거를 타봐야 세종시의 자전거 인프라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게 되지요.”

집과 정부세종청사 사이 편도 6㎞를 매일 자전거로 오가는 민동명 사무관(농식품부)의 말에는 자전거를 멀리하는 세종시민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강하게 묻어나더군요.

세종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주)세종포스트의 직원 이희택씨(40)는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멋진 시민입니다. 세종시 안에서의 거의 모든 이동을 자전거에 의존하는 그 역시 “불편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출퇴근을 하거나 업무를 보러갈 때 언제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희택씨는 “세종시의 자전거 인프라는 정말로 훌륭하다”면서 “모든 시민들이 자전거를 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세종시 새롬동의 아파트단지에서 사무실까지, 사무실에서 업무차 방문하는 관공서까지 하루에 20㎞ 정도를 자전거로 이동하는데, 너무 편리합니다. 출퇴근이나 업무를 위해 이동하는 시간을 운동하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지요.”

이씨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그걸 본 이웃집 가족이 자전거를 타게 되고, 온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하고, 세종 시민 모두가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우리 국민 모두가 자전거로 일상생활을 하고….”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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