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friday] 삶의 한가운데.. 父母가 되고 싶은 13년 차 신혼부부

2017. 11. 2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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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다방으로 오세요!]

더 높은 나뭇가지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버티는 것도 용기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붙든 손을 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죠. 사랑한다면 외쳐주세요. 두려워 말고 그 손을 놓으라고. 내 품으로 떨어지라고.

홍여사 드림

며칠 전 늦은 밤의 일입니다.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잠이 깼습니다. 눈을 떠보니 아내가 저를 부르고 있더군요.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뜻밖에도 아내는 배가 고프다고 하더군요. 뭔가 자극적인 걸 먹고 싶다며, 같이 인스턴트 비빔국수를 끓여 먹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이 밤에 자는 사람을 깨워 비빔국수라니. 더구나 본인이 끓일 생각은 없는 듯, 식탁 의자에 앉아 말갛게 쳐다만 보는 겁니다. 할 수 없이 가스불에 냄비를 올렸습니다. 어이없는 일이긴 하지만, 마누라가 원한다면 그깟 비빔국수쯤이야 못 끓여주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마주 앉아 국수 면발에만 집중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아프고 심란한 고민거리는 잠시 접어둔 채 말입니다.

누가 보면 신혼의 풍경인 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결혼 13년 차의 40대 부부입니다. 나이로만 보면 초등학생 아이를 둘쯤 키우며 한참 재미도 좋고, 슬슬 지겹기도 할 때이지요. 하지만 저희 부부에게는 이렇게 신혼 때나 다름없는 풍경이 심심찮게 연출됩니다. 금실이 유별나서라기보다는, 풍경 안에 오직 우리 둘뿐이어서 그럴 겁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아이를 기다린 지 13년인데 아직은 소식이 없습니다.

헤아려 보니 한 7년쯤 됩니다. 자연임신을 기다리며 말라가던 아내가 이윽고 인공시술 얘기를 꺼낸 것이 말입니다. 저는 선뜻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좀 더 기다려봤으면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결심이 굳은 듯, 직장까지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아이 문제에 매달리기 시작하더군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그 모든 과정에 놀라우리만큼 잘 적응해갔습니다.

물론 저도 지켜만 보지는 않았죠. 병원에 함께 다니며 시술과정에 협조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협조'의 수준일 뿐, 아내만큼 큰 고통과 부담을 지지도 않았고, 그만큼 열성적으로 임하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어째 자꾸만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이 들더군요. 이렇게까지 해서 자식을 얻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아내에게도 누차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내의 대답은 한결같았죠. '난 뭐든 할 거야. 우리 아이만 데려올 수 있다면….'

지난 7년간 아내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늘의 선물만 기다리며 천천히 말라가던 때보다는 그나마 뭐라도 해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살아 있는 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잃은 것도 많습니다. 실망감에 고개를 떨구던 순간들의 아픔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부부의 일상마저 달라졌습니다. 정규직을 버린 아내는 언제부턴가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죠. 병원에 들어가는 돈이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제 급여에서는 시술비를 지출하고 싶지 않다는 아내의 어리석은 고집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내는 시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잠을 자는 것도, 무엇을 먹는 것도, 무엇을 먹지 않는 것도 임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눈을 맞추는 것도, 싸우는 것도, 한동안 냉랭한 것도 결국은 임신 때문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아, 아이만 있었다면 싶었고, 나쁜 일을 겪어도, 아이도 없는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억울해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천사 같은 아기를 마주치면 아내는 붙박인 듯 서서 눈을 못 떼고, 저는 모르는 사람처럼 걸음을 재촉했죠. 우리 둘만 아는 그 모든 씁쓸하고 미묘한 기분을 다 어떻게 말로 할까요?

언제부턴가 회의가 들기 시작하더군요. 이런 식으로는 진짜 삶을 살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느끼는 어색함, 불편함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길고 긴 우리 둘의 미래가 달린 일이었지요.

그래서 이번에 저는 용기를 내어 제 생각을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쯤에서 마음을 접는 게 좋겠다고요. 의외로 아내는 담담히 받아들이더군요. 저는 상당한 반발이 있을 거로 예상했는데, 아내는 그저 한동안 말없이 쳐다만 봅니다. 그러다 이윽고 입을 열었을 때는,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당신은 기억을 못 하겠지만, 가끔 당신 술에 취하면 목 놓아 울어. 아이가 너무너무 갖고 싶다고."

"내가? 언제?"

"몇 번이나…."

아내의 말은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기억에도 없거니와 믿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건 그저 몹쓸 술주정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그 말이 쉽게 안 나오더군요.

아무 대답을 못 하고 있는 저에게 아내가 그날 진지하게 묻더군요. 당신의 진짜 생각이 궁금하다고요.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 진짜 생각을 제 자신도 미처 모른다는 것을요. 저는 늘 아내 핑계를 대며 제 감정은 접어놓고 살아왔던 겁니다. 아내의 진짜 마음에 대해서도 실은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무수한 밤을 근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지새우면서도 우리는 한 번도 솔직한 대화를 해보지는 않았던 겁니다.

그날 저는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한때는 가진 것을 다 내주고라도 아이를 갖고 싶었다고요. 하지만 그런 시간은 지나갔고 이제는 우리의 삶을 살자는 말이 지금의 진실이라고요. 아내도 고백하더군요. 너무 힘들다고요. 한계를 느끼면서도 그동안 두려움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고요. 무엇이 제일 두려우냐고 물으니 그건 말을 안 합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밤 천천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서로 경쟁하듯 털어놓았습니다. 어떤 순간에 남의 아이가 미치도록 부러웠는지를요. 그리고 또 어떤 날은 앞으로 우리에게 허락될 좋은 일들의 목록을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이런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야밤에 둘이서 키득대며 국수를 끓여 먹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우리에게 허락될 좋은 일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내 앞에 국수그릇을 놓아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야무지게 면을 휘젓더니, 내게는 먹어보라 권하지도 않고 먼저 흡입하더군요. 어이가 없어 웃고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그럽니다.

"나도 이렇게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이제 원 풀었다."

이번에도 저는 한참 만에 말귀를 알아들었습니다. 아내의 원이 무엇이었는지를요. 야밤에 비빔면이 왜 간절했는지, 자는 신랑 깨워 끓여달라고 한 이유가 뭔지를요. 그때는 멋쩍어 아무 말 못 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아내에게 대답해주고 싶습니다.

걱정 마. 여보. 당신이 먹고 싶은 거라면 엄동설한에 산딸기라도 구해올게. 그런 거라면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해.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이메일 투고 mrsh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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