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포격 무섭지 않았다, 살려고 대응사격" 연평도 그 후

김민석.박용한 2017. 11. 24.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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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불바다에도 사격만 생각
파편 맞아도 아프지 않았다
전투 뒤 바지 속 피로 흥건
연평도 전체가 요새화
연평도 전투력 크게 강화
북한군 목의 가시 역할

━ 그후 7년, 연평도 가보니

“살고 싶었다. 그래서 (북을) 응징해야 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때 해병 연평부대 포반장 김상혁 상사는 “포화 속에서도 대응사격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해병대는 23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연평포격전 7주기 추모식을 했다. 연평도엔 긴장감이 여전했다. 연평도에서 바라본 북녘 섬들은 손에 잡힐 듯했다. 야포로 무장한 섬들이지만 겉으론 한가로웠다.

김 상사는 “북한의 포격에 온통 불바다가 됐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없었다”며 “살기 위해선 우리 K-9 자주포를 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부하들에게 달려가 치료해주고 싶었지만 우리가 쏘지 않으면 (북한에게) 당한다는 판단에 대응사격부터 독려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김 상사는 북한의 포격 도발 이후 다른 곳으로 전출 갔다가 지난 5월 이 부대로 다시 왔다. 그때 포술장이던 천중규 중사도 이 부대로 복귀했다. 천 중사는 북한이 쏜 포탄이 마치 휘파람 소리처럼 들렸다”며 “처음엔 설마 북한 포탄이랴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쏜 포탄에 K-9 자주포 부대 주변이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했으며 이어 연평도 민가에서도 포연이 올라왔다고 기억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연평부대 K-9이 1, 2차 대응사격을 마친 뒤 병사들을 보니 모두 손이 찢어져 있었다고 김 상사는 말했다. 병사들이 포탄 장약이 든 통을 급하게 개봉하면서 손까지 다쳤다는 것이다. 탄약수 김모 상병은 전투가 끝난 뒤 바지를 벗으니 허벅지에 파편이 박혀 피범벅이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선 상처가 났는지 아픈지 전혀 느낌이 없었다”고 천 중사는 말했다. 그들은 이 정도는 부상으로 간주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임준영 상병은 자신의 철모가 불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주포를 타고 대응했다.

포병 전술은 적으로부터 포격을 당할 때 아군의 다른 포병부대가 그 적 포병에게 대신 대응사격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뒤 적의 포격이 멈추면 그때 함께 반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연평도에는 K-9 포대가 하나밖에 없어 아군의 다른 포병이 대응사격을 해줄 수 없었다. 이 포대가 포격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13분 뒤 곧바로 대응사격을 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한미연합사가 평가했다. 도발 직후 현장을 찾았던 포병 장교 출신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은 “해병대의 용맹성에 감동했다”고 회고했다.

작전이 종료된 뒤 연평부대는 대응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북한군이 170발을 쏟아부었지만 연평부대는 그 절반에 못 미치는 80발만 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군은 우리 연평초등학교를 비롯해 민가에까지 포격했는데 해병대는 그에 상응한 응징을 못했다는 것이다. K-9 자주포 6문 가운데 일부가 정비 불량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당시 연평도 K-9 포대는 사격훈련 직후 정비 중이었다. 또 북한군의 포격에 사방이 불바다인 데다 파편까지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즉각 대응은 쉽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얘기다. 목숨을 던져야만 했다. 그래서 많은 해병대 장병이 파편상을 입었다. 문제는 남북 간 포격전 때 초계임무 중이던 공군 전투기 2대가 투입됐지만 공대지미사일이 없어 공격에 나서지 못했다. 초계임무 중인 전투기는 북한 전투기에 대비해 공대공미사일만 장착하기 때문이다. 합참도 전투가 종료된 뒤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한 F-15K 4대를 띄웠지만 결국 북한군을 응징하지 못했다.

북한 도발에 의한 포격전이 끝난 뒤 한국군은 변신했다. 유엔사 교전규칙과 한국의 자위권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열흘쯤 뒤 취임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유엔사 교전규칙도 중요하지만 자위권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교전규칙을 따지기 전에 우리가 살고 적의 도발을 방지하기 위해선 강력한 자위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북한이 도발하면 야포와 미사일은 물론, 전투기까지 동원해 도발한 북한군의 원점과 지원 세력, 필요시엔 군단사령부인 지휘 세력까지 타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른바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고 선 조치 후 보고하라’는 지침이다. 이 때문에 미 합참의장과 태평양사령관이 김 장관을 찾았다. 한국의 과잉 대응에 확전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자위권’이 우선이라는 의지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미국이 손을 들었다. 그래서 나온 게 한·미 연합 국지도발 공동대비계획이었다. 북한이 도발하면 한국이 주도적으로 대응하되 미국이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후 북한의 직접적 도발은 없었다.

그 이후 연평도는 섬 전체가 요새화됐다. 연평부대 전원이 유사시엔 요새화된 진지 속에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다. 심지어 부대와 부대 사이를 잇는 좁은 이동로(교통호)도 콘크리트로 씌웠다. 연평부대장 김용범(해사 47기) 대령은 “북한 포탄이 교통호에 떨어져도 생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연평부대에는 한 달 분량의 식량 등 보급품을 유지하고 있어 북한군의 연평도 점령 시도에도 상당 기간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이에 증원 부대가 오도록 돼 있다. 해병대는 오히려 북한 도발 시 북측 전투력을 제거하고 연평도를 기반으로 북한에 상륙해 교두보를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연평도가 북한군의 점령 대상이 아니라 목의 가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해병대는 이를 위해 전투력을 크게 강화했다. 우선 1개 포대(6문)뿐이었던 K-9을 3개 포대로 늘렸다. K-9은 북한 야포에 비해 훨씬 정확하다. 최대사거리 80㎞에 1발로 축구장 3개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구경 230㎜ 다연장포도 배치했다. 유사시엔 무인정찰기와 대포병 레이더가 북한 표적을 포착해 알려준다. 사거리 25㎞에 정확도가 1m인 스파이크 미사일은 북한의 해안 동굴진지를 항시 조준하고 있다. 이 미사일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유도와 함께 조이스틱으로 표적에 조종할 수 있어 북한 해안포는 물론, 레이더와 지휘부까지 영점 타격이 가능하다. 여기에다 내년엔 한 번에 40발을 연발 사격할 수 있는 2.75인치 유도 로켓도 배치한다.

북한이 고속 공기부양정으로 점령을 시도하면 백령도의 코브라 공격헬기와 평택의 미군 아파치 헬기가 날아온다. 김 대령은 “북한군이 연평도에 닿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한 이런 전투 과정에서 연평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화생방 보호장치가 설치된 대피소 7개를 새로 만들어 유사시 주민 전원을 수용할 수 있게 했다. 연평도 선착장에서 만난 박광호(19) 일병은 “북한이 도발하면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돼 있다”며 “대부분 장병들이 같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연평도는 7년간 더 강해져 있었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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