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외상환자에 '미친' 이국종 10㎡ 방 안에는 다리미·군화·햇반..

신성식.백수진.정종훈 2017. 11. 2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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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이국종 센터장
23일 병사가 웃자 열흘만에 웃었다
북한 병사 묽은 미음 먹기 시작
이 센터장 "보람 느낀다"
병사 진료 와중에 수 차례 헬기 출동
도시락·햇반으로 저녁 때우고
셔츠·가운 빨아서 직접 다려 입고
간이침대에서 숙식하며 환자 돌봐
'아덴만 영웅' 석 선장과 통화에서
"선장님은 한 달 반 저를 괴롭히셨다.
귀순병사는 선장님에 비하면 껌"

━ 중증외상환자에 '미친' 이국종의 일과를 쫓다 "헬기 응급 출동 요청이 들어왔습니다."(간호사) "어디예요.서두르세요."(이국종 센터장) 21일 저녁 7시 30분 기자는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을 인터뷰하던 중이었다. 인터뷰 도중 도시락을 먹으려는 순간 비상 호출이 왔다. 서해안고속도로 9중 추돌사고 환자가 있는 충남 서산의 병원으로 가야 했다. 이 센터장은 안전모를 쓰고 항공 점퍼를 입었다. 등에는 'flight surgeon'(항공 수술 의사)이라고 씌어 있다. 오른쪽 어깨에는 미군 더스트오프, 오른쪽에는 경기소방본부 마크가 붙었다. 두 곳과 같이 일할 때가 많은데, 쉽게 식별하기 위해서다.(이 센터장은 15일 기자와 인터뷰에서 '동대문시장에서 점퍼를 1만2000원에 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수원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5층에 위치한 이국종 센터장의 사무실. 비행할 때 입는 항공 점퍼와 의사 가운, 코트 등이 옷걸이에 걸려 있다. 신성식 기자
이국종 센터장이 헬기를 탈 때 착용하는 헬멧. 신성식 기자
이 센터장은 비행할 때마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군화를 신는다. 신성식 기자
의료진을 독촉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향했다. 군화 줄을 조였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군화를 신는다. 발목과 다리를 보호하고 바지 단이 감겨서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센터장은 "헬기가 흔들릴 때마다 찍히고 피부 찰과상이 생긴다"고 말한다.
아주대병원 본관 옥상의 헬기 착륙장에서 환자를 데리러 갈 헬기를 기다리는 이국종 교수. 신성식 기자
이 센터장은 정확히 45분 후 두 명의 교통사고 환자를 외상센터로 이송해왔다. 소생실에서 응급처리를 한 후 수술이 진행됐다. 그는 "헬기가 아니면 이렇게 빨리 대처할 수 없다"며 "경기 소방헬기는 이렇게 밤에 잘 협조한다. 닥터헬기(의료 전용 헬기)는 왜 밤에 안 뜨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자와 이 센터장은 9시가 넘어서야 도시락을 먹었다. 식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었다.
이국종 센터장의 연구실 책장. 트라우마(중증외상) 관련 전공 서적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신성식 기자
이국종 센터장이 직접 옷을 다림질할 때 쓰는 다리미대와 다리미. 신성식 기자
연구실 책장 뒤에는 집에 가지 못하는 이 센터장이 잠을 청하는 침대가 놓여 있다. 신성식 기자
일과 생활의 흔적이 뒤섞여 있는 이 센터장의 연구실. 신성식 기자
이국종 센터장이 연구실에서 먹을 것을 보관하는 냉장고. 오래된 냉장고지만 문제 없이 작동된다. 신성식 기자
이 센터장은 잘 웃지 않는다. 농담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웃었다. 23일 밤 10시 전화기 넘어 이 센터장이 크게 웃었다. 북한 병사가 빠른 속도로 회복하면서 이 센터장을 볼 때마다 웃는다고 한다. 진료하러 갈 때마다 웃으면서 반갑게 대한다. 이 센터장은 "보람 있다"며 웃었다.

이 센터장이 웃은 이유는 또 있다. 북한 병사는 23일 처음으로 묽은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 이날 세 끼를 먹었다. 그동안 물만 마셨다. 수술 받은 지 열흘 만이다. 24일까지 묽은 미음을 먹고 장폐색(장이 막히는 증세)이 생기지 않고 방귀가 잘 나오면 좀 진한 미음을 먹게 된다. 그다음에는 죽을 먹게 된다.

북한 병사는 두 개(영화·오락) TV 채널만 본다. 23일에는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씨가 나오는 예능 프로를 봤다. 이 센터장이 "영화를 왜 안 보냐"고 물었더니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있다"고 답했다. 이 센터장은 23일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 센터장의 공간에는 없는 게 없다. 10㎡(약 3평) 크기의 방에 가장 눈에 띄는 게 다리미다. 이 센터장은 거의 집에 가지 않는다. 와이셔츠·가운 등을 화장실에 설치한 소형세탁기에서 빨아서 건조대에서 말려 직접 다려 입는다. 책장 뒤편 창 쪽에 간이침대가 있다. 이 센터장은 "여기서 잘 만해요"라고 말한다. 겨울에는 창문 외풍이 심해서 추울 것처럼 보이는 데도 별문제 없다는 투다. 응급 출동용 안전모는 옷걸이에 거꾸로 걸려 있다. 이 센터장은 "이렇게 걸어야 땀이 밑으로 빠진다"고 설명한다. 음악을 좋아해서 오디오를 사뒀는데, 2년간 연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센터장은 락 음악 매니아로 알려졌다. 음악을 좋아해 오디오를 사무실에 마련해뒀지만 2년간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신성식 기자
테이블 밑 신발장에 놓인 수술 신발에 '외과 이국종'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다. 신성식 기자
10년 넘은 듯한 대우 탱크 소형 냉장고가 눈에 띈다. 작동하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문제없다"고 말한다. 의자 뒤에 군화 두 켤레, 운동화·슬리퍼가, 테이블 밑에는 구두 여러 켤레와 수술방용 신발이 놓여 있다. 수술 신발에는 '외과 이국종'이라고 크게 쓰여 있다. 포장을 뜯지도 않은 전자레인지 오픈 선반, 비타민C, 구강염증 방지용 약품 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는 2011년 아덴만의 여명 작전 때 인질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과 찍은 사진이 있다.
이 센터장의 연구실 옆 행정실에 위치한 간이주방. 이 센터장을 비롯한 센터 직원들은 이 곳에서 밥을 해결할 때가 많다. [사진 김지영 매니저]
간이주방 한 켠에 즉석밥인 햇반이 잔뜩 쌓여 있다. [사진 김지영 매니저]
이 센터장과 센터 직원들은 화장실에 놓인 미니 세탁기로 빨래를 해결한다. [사진 김지영 매니저]
이 센터장 연구실 옆 행정실에 간이주방 시설이 있다. 햇반·빵 같은 먹거리가 쌓여 있다. 싱크대·전자레인지·냉장고 등의 주방시설이 설치돼 있다. 이 센터장은 여기에서 밥을 해결할 때가 많다. 15일 1차 인터뷰 때 10시 넘어서 햇반으로 저녁을 해결했었다.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군과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이국종 센터장에게 지난달 '좋은 이웃상'을 수여했다.신성식 기자
이 센터장은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 메디컬센터에서 외상외과 트레이닝을 받았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미국 것을 참고해서 만들었다. 본관 옥상 헬기장도 그걸 참고했다. 미군과 협력관계를 잘 유지한다. 지난달 19일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한테 '좋은 이웃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센터장은 석 선장 치료를 계기로 해군과 가까워졌다. 올 4월 해군참모총장에게서 명예해군 소령 임명장을 받았다. 그의 연구실에 해군 장교 정복을 입은 사진이 여러 개 걸려있다. 'Navy(해군)'를 새긴 모자가 여러 개 연구실에 걸려 있다. 이 센터장은 "명예해군인 게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해군이 선물한 '지휘봉'도 비치돼 있다.

이국종 센터장이 해군에서 선물한 지휘봉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신성식 기자
대한민국 해군 제5성분전단장 김종삼 준장이 이국종 센터장에게 선물한 지휘봉. 신성식 기자
이 센터장 연구실 한 켠에 비타민C가 놓여 있다. 신성식 기자
이 센터장은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구강 염증을 예방하기 위해 가글을 쌓아놓고 쓴다. 오른쪽에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과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신성식 기자
이 센터장은 21일 밤 석 선장과 통화했다. "선장님이 저를 한 달 반 괴롭히셨어요. 이번 환자(북한 귀순 병사)는 '껌'이죠." 석 선장보다 북한 병사를 치료하기 훨씬 쉽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선을 넘을 뻔한 귀순 병사를 '쉬운 환자'라고 표현하는 걸 보고는 '이국종답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의사들이 ‘별거 아닌 환자를 데려다 쇼한다’고 난리가 났어요. 선장님의 배 총구멍 사진을 공개해도 될까요. 환자 개인 정보(귀순 병사를 지칭) 공개한다고 비판하네요. 합참이랑 상의해서 하는 건데도 그래요. 머리 아파 죽겠어요. 북한 애(귀순 병사)가 좋아져서 다행입니다. 선장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어요. 잘 처리할게요. 끝나면 한 번 내려가겠습니다." 15일 1차 인터뷰에서 "왜 집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센터장은 "제가 봐야 할 환자가 많아요. 북한 병사 말고도 돌봐야 할 외상센터 환자가 150명이나 돼요"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매일 나와 함께 일하는 300명의 동료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안 그러면 하루도 못 버틴다”고 말한다. 그는 15일 밤 기자와 병실을 돌면서 간호사들에게 "기자님께 얼마나 힘든지 말 좀 해줘요"라며 간호사들을 챙겼다.

김지영 외상프로그램 매니저, 송서영 외상전담PA, 송미경 외상전담PA, 라울 코임브라 UC 샌디에이고 중증외상센터장, 이미화 외상전담PA, 김윤지 외상전담PA, 권준식 외상외과 교수, 문종환 외상외과 교수, 김은미 외상전담PA, 허요 외상외과 교수(왼쪽부터). 장진영 기자
이 센터장 옆에는 이번에 북한 병사 1, 2차 수술에 참여한 교수진과 간호사 등의 300여명의 동료가 있다. 교수진은 외상외과 문종환·권준식·허요·이호준·정승우 전문의, 정형외과 김태훈·최완선 전문의, 마취통증의학과 이인경·황지훈 전문의 등이다. 간호사는 김지영 외상프로그램매니저를 비롯해 200여명 근무한다.

수원=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백수진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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