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요금제 도입 '흔들'

주영재·임아영 기자 입력 2017. 11. 2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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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통신 3사, 기존 요금 연쇄 인하 우려…단말기 자급제로 기울어
ㆍ차상위 계층 등이 쓰는 저가요금제, 가격 혜택 적어 개선 필요
ㆍ야당·관련 업계 반발 ‘걸림돌’…“정부, 비용 분담 방안 검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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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보편요금제 도입이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통신비 관련 사회적 합의를 위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협의회)에서는 논의 순서가 단말기 자급제에 밀렸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도 보편요금제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향후 국회 논의도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요금 인하 효과가 불투명한 단말기 자급제보다는 보편요금제가 통신비 인하 효과가 즉각적인 만큼 보편요금제가 가장 앞서 도입돼야 한다는 게 소비자·시민사회단체의 중론이다.

■ 단말기 자급제 부상에 뒷전으로

보편요금제는 월 2만원 수준에서 기존 데이터 최저요금제보다 많은 음성통화·테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다. 정부는 통신 요금의 전반적 인하를 유도하고 저가요금제 가입자들이 받는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취지로 도입을 추진했다.

보편요금제 논의가 뜸해진 것은 통신사와 국회가 단말기 완전 자급제 이슈를 꺼내들면서부터다. 국회에서는 박홍근·김성수·김성태 의원 등 여야에서 각각 자급제 법안을 내놨고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해 찬성 의견을 밝히면서 급물살을 탔다. 협의회 논의에서도 국회발 자급제 법안을 처리하기 전에 의견을 정리하자는 이유로 자급제에 밀렸다. 후순위로 밀린 보편요금제는 12월 중순에야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급제가 도입되면 현재 소비자들이 누리고 있는 공시지원금과 선택약정할인 제도가 사라진다. 혜택은 바로 사라지지만 통신사들은 약정할인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는 묵묵부답이다. 통신사들이 보편요금제 도입을 막기 위해 자급제 논의를 꺼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간 통신사들은 단말기 자급제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7월 말 2분기 실적 발표 때 유영상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은 단말기 자급제 도입을 통신 제도 개선 방안으로 거론했다. 정부가 선택약정할인율 인상과 보편요금제를 통신비 인하 대책으로 내놓은 이후이다.

보편요금제는 기존 요금체계의 연쇄적인 인하를 불러와 3사 모두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공산이 크다. 단말기 유통업계 관계자는 “보편요금제와 선택약정할인 제도를 무산시키는 것이 통신사들로서는 최대의 현안”이라고 말했다.

■ 고가요금제에 몰린 혜택

한국은 최저요금제 데이터 제공량이 적고 혜택이 고가요금제에 몰려 있어 고가요금제를 써야 유리한 구조다. 일례로 스페인 이동통신 최저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은 1기가바이트(GB)로 최고요금제 데이터 제공량(5GB)과 5배 차이가 난다. 요금 차이는 3.5배로 제공량 차이를 요금 차이로 나누면 1.4로 매우 낮다. 반면 한국은 최저요금제 데이터 제공량은 300메가바이트(MB)지만 최고요금제 데이터 제공량은 35GB에다 소진하면 매일 2GB씩 추가로 준다. 기본 데이터 제공량 차이가 324배나 나지만, 요금 차이는 3.3배밖에 나지 않는다. 제공량 차이를 요금 차이로 나누면 98이나 된다. 요금은 3배 남짓 차이 나는데 주어지는 혜택이 무려 30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저가요금제를 사용할 매력이 매우 낮은 셈이다.

이 밖에 미국·호주·일본·독일·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 데이터 제공량 차이를 요금 차이로 나눴을 때 한국처럼 100에 근접하는 국가는 없다. 그동안 통신사들은 요금제 격차는 어느 나라나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정부는 이런 점을 들어 저가요금제를 사실상 ‘시장 실패’ 영역으로 보고 있다. 또 저가요금제를 쓰는 소비자는 대부분 청소년·고령층·차상위 계층이라는 점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보편요금제 합의 이룰 수 있을까

보편요금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보편요금제 도입을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국회에서 통과돼야 하지만 야당은 지나친 시장 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사회적 논의기구의 논의를 거친 이후 보편요금제의 규제 심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협의회 논의 역시 합의에 이를지 미지수다. 통신사를 제외하고라도 시민·소비자단체와 유통업계·알뜰폰업계의 의견도 엇갈리기 때문이다. 유통업자들은 통신사 손실이 마케팅비 감소로 이어져 유통업계의 매출 감소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알뜰폰업계도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극적인 합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보편요금제 도입을 부담스러워하는 통신사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정부·시민단체들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앞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정감사에서 주파수 할당대가 인하나 전파사용료 감면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요금 인하를 전제 조건으로 정부가 비용을 분담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영재·임아영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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