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 꿈꾸는 마음 약한 여우는 '진짜 남자' 환상 품던 10대의 나"
[경향신문] ㆍ‘빅 배드 폭스’ 책·영화 동시에 한국 온다…작가 레네 인터뷰
“어린 시절 나는 남자는 거칠고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남자(a real man)’가 되고 싶던 소망과 달리 나는 여자아이들과 대화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수줍음을 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편안하고 사려 깊은 마음씨가 훨씬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작품 속 여우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크고 무섭고’ 싶었지만, 결국 자신은 훌륭한 엄마가 되는 게 더 맞는다는 걸 깨닫는다.”
농장의 공포스러운 포식자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닭 한 마리에게도 쫓기는 신세인 나약한 여우에 관한 이야기 <빅 배드 폭스>가 그래픽노블과 애니메이션 영화로 한국을 찾아왔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빅 배드 폭스>의 작가 뱅자맹 레네(34·사진)를 지난 19일 e메일 인터뷰로 만났다.
■ ‘진짜 남자’와 ‘진짜 여우’
2015년 1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빅 배드 폭스>는 지난해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야수상을 수상했으며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올해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공식 출품됐고, 국내에서 열린 부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빅 배드 폭스>에는 시골 마을의 농장을 중심으로 세 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야기의 중심은 전혀 크지도 무섭지도 않은 여우에 관한 내용이다. 여우는 동정심이 많고 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동물들을 잡아먹지도 못하고, 닭들에게 맞기까지 한다. 결국 여우는 병아리를 훔쳐 이들을 잡아먹을 때까지 키우려고 한다. 다만, 여우는 병아리가 태어나 처음 본 것을 엄마로 생각한다는 걸 잊었고, 자신을 엄마로 생각하는 병아리에게 정이 들어버리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처음 얘길 떠올렸을 때 혼자 참 재밌다고 생각했다.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웃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얘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다만, 작업을 시작한 뒤로는 이 얘기가 가족, 편견, 교육 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빅 배드 폭스>는 ‘이상한 성격의 여우’와 ‘병아리와 가족이 된 여우’라는 어쩌면 만화에서나 통할지 모르는 가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해 생각할 지점을 던져준다. 주인공인 여우를 자신의 “10대 시절에 대한 은유”라고 표현한 작가는 ‘진짜 남자’라거나 ‘진짜 여우’라는 것은 사실 어디에도 없는 환상일 뿐이고 자신의 특성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머지 두 이야기는 농장에 사는 동물들에 관한 내용이다. 농장에 불시착한 아기를 원래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물들의 이야기와 크리스마스에 산타 대신 아이들에게 선물 배달을 하려고 노력하는 말썽꾸러기 토끼와 오리, 돼지의 소동 ‘크리스마스를 지켜줘’ 등이다.
■ 수채화 감성
<빅 배드 폭스>는 수채화 기법으로 작업한 만화다. 레네는 공동 감독으로 참여한 전작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서도 수채화를 통해 곰과 생쥐의 특이한 우정을 사려 깊게 그려낸 바 있다. 그의 작품은 다소 엉뚱한 이야기들이지만, 이를 그려낸 수채화 풍경이 스크린에 꽉 차는 것을 볼 때, 관객의 마음은 절로 편안해진다.
“나는 스토리만 좋다면 그것이 어떤 기술을 사용했건 모든 애니메이션의 팬이다. 픽사나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물론이다. 나 역시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다양한 기술을 배울 생각이 있다. 다만, 수채화는 내가 말하고 싶은 편안한 감성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레네는 한국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수채화풍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던 이성강 감독의 2001년작 “‘마리 이야기’를 굉장히 감동적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는 <마리 이야기> 외에도 봉준호, 김기덕, 박찬욱 감독의 팬이라며 한국 작품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빅 배드 폭스>는 이달 국내 출간됐고, 영화도 오는 30일 개봉한다. 레네는 2015년 초 프랑스에서 <빅 배드 폭스> 출간 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작은 휴식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당시 그의 책은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이 있은 후 며칠 뒤 발표됐다.
“책이 나오고 며칠 뒤 팬 사인회를 했다. 그때 어떤 독자가 찾아와 사건 이후 항상 침울했는데 책을 보고 처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며 ‘고맙다’는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내 책이 그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준 것 같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이야기를 통해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좋겠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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