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체부 '용산공원 내 국립문학관' 건립 일단 보류

입력 2017.11.23. 21:36 수정 2017.11.2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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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역사공원 추진' 서울시 반발에
'국토부-시 협의하자' 한발 물러서
시 "총리실로 옮겨 원점 재검토를"
터 선정 둘러싼 기싸움 장기화할듯

[한겨레]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문학관 신축 터로 지목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옆 공지. 박물관 건물과 왼쪽의 미8군 골프연습장 그물망 사이 숲 공간이 예정 터다.

서울 용산 옛 미군기지에 국립한국문학관을 건립하는 정부 계획을 놓고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건축물 인허가권자인 서울시의 갈등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3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용산에 국립문학관을 신축하는 것은 확정된 방침이 아니다”라며 “국토교통부·서울시와 협의체인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추진위원회’를 다음주까지 꾸리겠다”고 밝혔다. 앞서 문체부 자문기구인 문학진흥정책위(진흥위)는 지난 8일 문학진흥기본계획수립 공청회를 열어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있는 정부 소유지 1만여평에 국립문학관을 짓기로 자체의결하고 문체부에 건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서울시는 이튿날인 9일 “생태역사문화공원으로 거듭나야 할 용산공원안과 충돌한다”고 성명을 내며 반발한 바 있다.

문체부가 이날 간담회를 열어 국토부·서울시 협의체를 꾸리자고 한 것은 갈등을 봉합하자는 취지이지만, 서울시는 물러서지 않았다. 양용택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은 이날 오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협의체 구성은 수용하겠다”면서도 “문학관 터 선정을 원점부터 다시 협의하자는 뜻에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터 선정을 둘러싼 기싸움이 장기화할 것임을 내비친 셈이다. 또 그는 “용산공원의 종합적 개발과 보존을 위한 주체를 국토부에서 총리실로 옮기는 문제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용산공원 개발·보존 문제가 총리실 소관으로 옮겨가면 문학관 입지 논란이 범정부 차원의 현안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2021년 개관을 목표로 하는 국립문학관은 2만㎡ 터에 예산 608억원을 들여 지어지는 대형 문화시설이다. 문체부는 간담회에서 내년 6월까지 건립터를 최종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터가 확정되지 않아도 올해 안으로 시설 연구 용역 등의 실무 준비작업에 들어가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문학관 건립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문학진흥법이 제정돼 설립 근거가 마련됐고, 그해 5월 전국 24곳 지자체의 공모를 거쳐 건립 터 심사를 벌였으나 경쟁 과열로 한달여 만에 선정 작업이 중단됐다. 이에 문체부는 지난해 8월에 문학진흥 티에프(TF)팀을 구성하고 연말에 토론회를 열어 대표성, 상징성, 확장성, 접근성, 국제교류가능성 등 5개 선정 기준을 제시했다.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 284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터, 용산공원 터가 후보지로 떠올랐다. 새 정부 출범 뒤 문인 출신인 도종환 의원이 문체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3개 후보지들 가운데 용산공원 터 일대가 문학관 최적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진흥위가 건립터로 꼽은 용산국립박물관 옆 땅은 10여년 전부터 국립민속박물관이 이전 대상지로 점찍어왔던 곳이다. 박물관은 애초 터 아래쪽 서울시 소유 가족공원 땅의 추가 매입을 추진했으나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시 쪽도 그뒤 매각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바뀌면서 이전이 불투명해진 상태였는데, 그 틈을 문학관이 치고 들어온 셈이다. 이 땅밖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도 장관의 소신도 작용했다는 게 문체부 내부의 전언이다.

문체부는 이와 관련해 이날 간담회에서 “국립한국문학관이 용산국가공원을 침범해 공원을 훼손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문체부 시설이 들어가도록 결정된 문체부 소관 국유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땅은 도로와 닿는 부분이 없는 맹지(盲地)다. 도로 쪽과 맞닿는 진입로를 틔우려면 그 옆 서울시 소유 가족공원 땅 일부를 사들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립한국문학관 신축을 추진 중인 서울 용산 가족공원 부근의 모습. 서울시는 어떤 건물 신축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가 시종 강경한 이유는 옛 미군기지 터엔 어떤 건물도 짓지 말고 생태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박원순 시장의 의지 때문이다. 시 산하 시설들도 용산공원 일대에는 일체 들이지 않기로 했는데, 문학관 건립은 이런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다른 분야 예술계와의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일부 예술계 인사들은 도 장관이 특정 문인들과의 교감만 내세워 용산에 문학관을 지으려 한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게다가 문체부는 문학관 추진으로 용산 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민속박물관을 두고, 더 넓은 터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지난 7월 세종시 이전안을 꺼냈다가 문화재계의 반발을 샀다. 전직 관장 등 문화재계 원로들이 성명을 내며 반대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결국 지난주 원로들을 면담한 뒤 이전안을 보류시키는 쪽으로 방침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계 인사들은 원래 계획대로 민속박물관을 용산에 신축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형석 남은주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