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아이 낳으라' 다그치곤..버리고 죽이는 이상한 나라

입력 2017.11.23. 19:46 수정 2017.11.2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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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지음/동아시아·1만5000원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넬슨 만델라)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보여주는 우리 사회가 전망 없고 완매하기 그지없이 아이들을 대하는 사례들은 혼탁한 이 사회의 영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은이는 우리 영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을 가부장적 가족주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고 지목한다. 이 비정상적 ‘정상가족’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것을 진짜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세이브더칠드런, 인권정책연구소,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등 아동인권 분야에서 쌓아온 자신의 체험과 깨달음을 토대로 설득력 있게 설파한다. “나는 가족 내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인 아이를 중심에 놓고 우리의 가족, 가족주의가 불러오는 세상의 문제들을 바라보자고 제안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고착, 재생산해 온 주체는 개발독재 아래서 압축성장을 강행해 온 국가다. 국가는 자신의 공적 역할을 방기하고 그것을 가족에 떠넘기면서 한국 특유의 전근대적 가족 이데올로기를 확대재생산했다. 책은 가부장적 국가주의자들의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인 저출산·고령화·인구감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혁파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난제를 풀려면 기존의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가부장적 국가주의자들에게 자기 해체까지 각오해야 하는 이 모순적 과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흥미롭고도 중요하다.

2016년 이 나라 출생아 수는 인구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에 302명의 갓난아기가 길바닥과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다. 같은 기간 해외로 입양된 아이는 334명. 거의 하루에 한 명꼴로 아이를 버리고, 해외로 보낸 셈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유일한 나라이자, 전세계에서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오래 보내는 나라다.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42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3월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그해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 8명을 추모하는 영정을 들고 묵념을 하고 있다. 이들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해결책 마련과 아동보호 예산 증액, 아동학대 초기 개입 강화 등을 요구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영유아뿐만 아니라 18살 미만 아이들까지 넣으면, 부모한테 버림받아 시설이나 위탁가정 등으로 간 아이들은 같은 기간 4503명, 하루 평균 12명이 넘는다. 같은 기간 학대당하다 숨진 아이는 한 달 평균 3명꼴이었고, 아동학대 판정을 받은 경우는 하루 평균 51건이었다. 아이들을 옥죄어 온 세계 최악의 사교육비 지출도 같은 기간 역대 최고였다.

“통계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한국은 참 이상한 사회다.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계속 줄어들어 ‘국가소멸’을 우려하는 판국에 왜 하루가 멀다고 아이를 버리며 해외입양을 보내는 걸까? 왜 아동학대와 그로 인한 사망, 가정 내 아동학대는 줄어들지 않는가? 아이의 수는 줄어드는데 왜 아이들의 놀이와 수면 시간을 빼앗는 사교육비 지출은 계속 늘어나는가?”

지은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 모든 문제들 중심에 ‘가족’이 있다고 본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란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이다. 여기서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이 ‘정상가족’은 가부장적 위계가 지배하는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다.

국제구호 아동인권 활동가 김희경
영아유기, 해외입양의 원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지목
가부장적 가족주의 없애지 않으면
저출산 미혼모 초고령화 문제 못 풀어

2011~2016년간 아기를 버렸다가 경찰에 입건된 영아 유기 피의자의 79.3%가 여성이었다. 대부분은 미혼모들로 추정된다. 미혼모는 완강한 ‘정상가족’ 규범의 부도덕한 일탈자로 간주돼 배척당한다. 2016년에 국내외에 입양된 아이들 880명의 92%가 미혼모의 아이들이었다. 2016년의 경우 미혼부로부터 양육비를 지원받는 미혼모는 9.4%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아기 입양 가정, 위탁가정, 양육시설이 받는 정부 지원금에 비해 미혼모가 직접 아이(13살 미만)를 키울 경우의 지원금은 그 10분의 1도 안 된다.

한국은 혼외 출산 비율도 세계 최하위다. 프랑스·스웨덴·노르웨이 등은 혼외 출산이 전체 출산의 절반을 넘지만 한국은 1.9%(2014년)로 조사 대상 42개국 중 가장 낮았다. 혼외 출산 비율이 56.7%인 프랑스는 출산율도 1.98명, 혼외자가 많은 칠레·아이슬란드·노르웨이도 1.7~1.9명으로 오이시디 평균인 1.68명보다 많다. 한국은 1.25명. 미혼모 지원이 저출산 대책의 중심일 순 없지만 완강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국가가 적극 지원에 나선다면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수 있다. 책은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모범적인 사례로 스웨덴을 꼽는다.

스웨덴의 출산율은 2.0 안팎으로 체벌을 법률로 전면 금지한다. 국가가 출산·육아·교육의 당사자로 개입해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구성원들을 자율적 개인으로 길러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삶은 개인적으로, (문제)해결은 집단적으로”라는 말로 대표되는 스웨덴식의 ‘국가주의적 개인주의’의 ‘차가운 신뢰’는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복종과 희생, 상호의존으로 형성되는 ‘뜨거운 신뢰’보다 개인의 자율성과 평등, 공존의 사회적 신뢰도가 더 높다.

2013년 11월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자원봉사자가 유치원에 갈 준비를 하는 아이와 입을 쑥 내밀어 뽀뽀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국은 스웨덴과는 정반대로 “삶은 집단적으로, 해결은 개인적으로”에 가깝다. “근대화 과정 내내 국가가 선성장 후분배 논리하에 거의 모든 사회 문제를 가족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사람을 먹이고, 키우고, 보호하고, 가르치고, 치료해주고, 부축해주는 그 모든 일은 전부 가족의 책임이었다.”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국가의 책임 방기로 믿을 것은 오직 가족밖에 없게 된 한국인들은 안으로 더욱 결속했다. 외부자에 대한 배타성·차별성을 강화했고, 살아남아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모든 가족이 서로를 상대로 사투를 벌였다. 사교육 과열, 필사적인 스펙 쌓기, 불면과 불안, 외부자 배척, ‘비정상’ 멸시 등이 모두 거기서 비롯됐다. 혈연, 학연, 지연에 연연하는 유사가족사회의 퇴행적 패거리문화 확산도 마찬가지.

해법은 가족이 짊어진 짐을 사회로 옮기는 것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해체가 그 답이다. 지은이는 그 희망의 싹을 촛불혁명에서 봤다고 했다. “어떻게 국가를 탄압과 통제의 기구가 아니라 개인적 자율과 평등, 약자의 보호를 촉진하는 주체, 시민의 지원자로 바로 서게 할 것인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또 다른 과제라 할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