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수능보는 날, 입시거부 선언한 청년들

박정훈,유성호 2017. 11. 2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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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열아홉살 혜민과 피아 "언제까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해야 하나"

[오마이뉴스 글:박정훈, 사진·영상:유성호]

▲ '수능날' 청년 11명, 대학입시 거부 선언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소속 회원과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한 청년들이 입시경쟁과 학벌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 유성호

"대학만이 정답은 아니다. 우리의 삶을 존중하라."

23일 오전, 대학수학능력시험 2교시 수학 시간에 수능을 거부한 이들이 서울 청계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 자리에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투명가방끈) 회원 11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나를 위해, 모두를 위해 대학입시를 거부한다'는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발표했다.

투명가방끈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은 2011년부터 올해까지 73명이 동참했다. 입시경쟁교육과 학벌 차별 등이 만들어내는 무한경쟁과 서열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다양한 삶이 보장될 수 있게 변화를 촉구하는 운동이다.

입시거부선언을 위해 모인 이들은 "행복한 삶에 나중은 없다"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에 너무 많은 시간이 희생된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한 명씩 릴레이 발언을 이어갔다.

고3이지만 수능시험장에 가지 않았다는 박성우씨는 "학교를 12년째 다니면서 배우는 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경쟁하는 법 그리고 자연스럽게 누군가 비교하게 되는 거'라고 대답하게 될 것 같다"며 학교가 조장하는 경쟁체제를 비판했다. 이어 박씨는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조차 설명해주지 않고 대학에 가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무언가를 내 의지와 관계없이 하고 싶지 않아서, 제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대학입시 거부를 선언한다"라고 밝혔다.

일산 정발고에 재학 중인 정재현씨는 "공부 때문에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친구를 만난 게 13살이었다. 제가 원했던 교육은 스스로를 죽이는 법이 아닌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 숫자로 이뤄진 친구들의 삶을 짓밟는 것이 아닌 함께 성취하는 것"이라며 "더 이상 수능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7명의 릴레이 발언이 끝난 후, 이들은 입시제도와 청소년들에 대한 편견 어린 말들이 적혀있는 종이를 '뻥이요'라고 외치며 부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투명가방끈은 공동선언문을 낭독하고 ▲ 입시경쟁교육 반대 ▲ 교육권의 온전한 보장 ▲ 대학이 '선택'이 되는 사회 ▲ 대학과 무관한 개인에 대한 존중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대학입시거부에 참여한 11명 중 라혜민씨와 피아(활동명)씨가 기자회견 직후 인터뷰를 통해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오마이뉴스>에 밝혔다. 라씨는 비인가대안학교를 12년 동안 다녔고, 피아씨는 충주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올해 초에 자퇴했다. 아래는 이들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경쟁의 패배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의문 들었다"

▲ “학력학벌 따지는 차별을 없애라”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소속 회원과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한 청년들이 입시경쟁과 학벌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 유성호
 피아
ⓒ 유성호
- 수능을 보지 않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피아: "지난해까지 계속 기숙사에서 공부만 하면서 '인서울' 대학을 목표로 했어요. 저는 목 디스크, 우울증 등에 시달렸고, 심지어 친구는 울면서 쓰러져 병원에 가기도 했거든요. 그때 이상한 걸 느꼈어요. 사람들은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미래를 위해 포기하고 헌신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요.

집에 가면 맞거나 욕을 듣기 일쑤여서, 결국 집을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올해 초에 학교를 나오게 된 거예요. 그리고 '거부하우스'라는 셰어하우스에서 대학을 거부하는 분들이랑 같이 살게 됐고, 그분들이랑 어울리다 보니까 대학 거부까지 결심하게 된 거죠."

혜민: "비인가 대안학교에서 12년을 다녔고, 대학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며 스스로 사는 교육을 배웠어요. 이곳에서 대학에 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고 느꼈고, 그것들을 포기하기엔 대학은 매력적이진 않더라고요."

- 현재의 입시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시나요?
혜민: "모든 공부의 목표가 대학으로 가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 문제죠. 모든 배움이 '대학 입시'에 관련된 게 아니면 의미가 없어지거든요. 삶에서 유익한 것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하는데, 학교의 목적이 대학이라고 하면 학교를 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실제로 친구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지진이 나면 공부하다가 죽어야 한다'라고 말한대요." 

피아: "계속 몸은 죽어나는데, 눈은 미래에 가 있어요. 현재를 보지 못하는 사람을 만드는 거죠. 완벽한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문제예요. 문·이과 통합 같은 정책 같은 걸 보면 전과목을 다 잘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대학입시 공부를 시키면서도 '독서 대회' 같은 것을 하면서 영미 문학 책을 읽으라고 해요. 그리고 경쟁은 계속 있는데, 자꾸 승리자가 되라고 하면 패배자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의문이 들더라고요."

- 주변 친구들은 대학에 가잖아요.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혜민: "비인가 대안학교에서 전학을 가서 대학가는 친구 이야기 들어보니까 경영학과를 간다고 하더라고요. 돈 잘 버는, 안전망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이유였어요. 그런데 면접 질문에 대한 답변 써놓은 걸 보니까 다 거짓말이고, 포장된 내용으로 가득한 거예요. 그런 것 보면서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나 싶었어요. 

그리고 연극영화과 지원한 친구들은 '공평하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연기 실력보다는 외모를 중시하고, 학원 강사들이 외모 품평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요. 돈도 많이 들어서, 도중에 포기하게 되면 부모님께 미안하니까 대학에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저는 저렇게까지 미래를 위해 지금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달려야하나 싶었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피아: "한 친구가 수시를 보러 다니면서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냥 너도 대학 거부해'라고 말했더니 '그래도 가야 하는데 어쩌겠어'라고 답하더라고요. 이 친구는 눈이 작은 걸로 학교나 집에서 엄청 지적을 받았어요. 그래서 대학 면접 보기 몇 달 전에 쌍꺼풀 수술을 하고 옷도 사 입고 그랬어요.

충주에 있을 때는 다들 말하는 게 비슷했어요. '죽을 것 같다' '힘들어' '못할 것 같아' '이래도 안 되면 자살각' 등등. 친구가 그런 말들을 하면 저까지 고통이 느껴졌어요."

혜민: "저도 공교육 학교에 다녔으면 '대학이 아니면 갈곳이 없다'라고 생각할 거예요. 막막하니까 대학에 가긴 가야겠지만, 그것 자체가 힘들고 스트레스가 크죠."

피아: "실제로 학교에서 '대학 가는 길' 이외에는 알려주는 게 없어요. 대학 안 가면 '쓰레기만 줍고 다녀야 한다' 이런 말도 해요. 대학에 가지 않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죽거나' '망하거나' '몸을 팔거나' 한다는 식으로 교육받아와요. 저도 처음에 집과 학교를 나왔을 때 '난 끝났다'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대학 거부 선언' 통해 내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 “줄세우기 무한경쟁 지금 당장 중단하라”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소속 회원과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한 청년들이 입시경쟁과 학벌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 유성호

- '평범함'에서는 많이 벗어난 삶을 살고 있잖아요. 불안하진 않나요?
혜민: "당연히 불안하죠. 대안학교에서 생태주의, 평화, 철학. 예술 등을 배웠지만 막상 졸업하고 나서 갈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선배들도 선택하는 폭이 좁아지고 결국 대학에 가는 것을 보거든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판'이 잘 안 그려지는 게 가장 막막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20대 사람들이 가장 모이는 곳이 대학교인데요, 그런 이야기 듣다보면 졸업하고나서 학교에 다니지 않을 때 뭘 해야 하는지 막막한 게 있어요."

피아: "한 달에 한번쯤 미친 듯이 불안하긴 해요. '앞으로 40대에 어떡하지, 50대에 어떡하지'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그때 말고는 괜찮아요. 입시에 파묻히면 다들 겪는 거겠지만, 자살 충동이 많이 들었을 때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그때 이후로 좀 달관했달까, 그런 게 있어요."

 혜민
ⓒ 유성호
- 단순히 수능 시험을 안 봐도 됐을 텐데, 광장에서 '입시 거부 선언'까지 하신 이유는?
혜민: "대학을 안 간다고 하니 '무슨 깡으로 안 가냐', '제대로 먹고 살 수 있겠느냐' 이런 소리를 듣게 돼요. 대학에 안 가도 낙오자가 되거나 불이익을 당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대학거부를 통해서 제 인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고, 저와 같이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도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피아: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요. 흔히 엄마들은 '요즘 세상에 대학 안 가는 애들이 어딨어. 주위를 봐 어딨어' 이러잖아요. 그런데 선언을 하면 신문에 '대학 거부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뜰 거 아니에요.

'이런 존재가 있으니, 나라에서는 이거 보고 존재를 인정해주고, 우리를 위한 정책을 잘 마련해달라' 요청하고 싶은 거예요. 또 같이 할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 앞으로 무슨 일 하며 살고 싶으세요?
혜민: "먼저 대학 가지 않아도 다른 일들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안정적이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으면 좋겠고요. 일단 저는 학교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하고 고생을 했기 때문에, 좀 놀고 싶어요 (웃음).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일'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그런 걸 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고 싶어요."

피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뚜렷하진 않아요. 중학교 때는 가수를 하고 싶었고, 고등학교 때는 어떤 과를 가고 싶었고... 저는 중간에 학교 나올 줄 정말 몰랐거든요. 앞으로의 인생도 그때그때마다 좋아하고 하고싶은 게 달라질 것 같아요. 제가 지금은 카페에서 커피 만들고 있는데, 이 일을 좋아해요. 당장은 '거부하우스' 사람들이랑 잘 지내면서 돈 벌고, 커피 기술 익히고 싶어요."

▲ “줄세우기 무한경쟁 지금 당장 중단하라”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소속 회원과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한 청년들이 입시경쟁과 학벌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 유성호
▲ 대학입시 거부한 학생들 "불안으로 내모는 뻥들 날려버리자"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소속 회원과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한 청년들이 입시경쟁과 학벌사회를 비판하며 불안으로 내모는 뻥들을 날려버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그냥 좀 참아 대학 가서 하면 되지’, ‘서열화 경쟁없는 교육 불가능해’라고 적힌 판을 격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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