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군 평소 "기계고장 잦다"..9월엔 낙상사고로 응급실행

2017. 11. 23.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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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이군은 '장시간 노동' 기계처럼 일했다
현장실습 '1일 7시간' 제한인데
하루 최장 14시간까지 근무해
휴일에 9.5시간 일한 기록도
"물량 못채우면 밤 10시까지 일해"

[한겨레]

현장실습에 나갔던 특성화고 3학년 이민호군이 사고로 숨진 이튿날인 20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특성화고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회원들이 추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교복을 입은 채 집회에 참가한 한 재학생이 “고 이민호 실습생의 죽음은 우리들의 현실이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19일 열여덟번째 생일을 나흘 앞두고 숨진 이민호(18)군은 현장실습생이라기보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장시간 노동자에 가까웠다. 평일엔 공장 숙소에서 잤고, 하루 11~12시간을 일하는 날도 잦았다. 함께 일하던 정규 직원이 그만둔 뒤 이군은 10m 가까운 라인을 홀로 뛰어다니며 음료 제품이 잘 포장되고 있는지 살펴야 했다. 기계는 자주 멈췄고, 기계를 고치는 것도 이군 몫이었다. 적재기 프레스에 목이 눌렸을 때도 그는 혼자였다. 이번 사고 이전에도 이군은 두차례나 다친 적이 있었다.

이군이 업체와 맺은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는 현장실습 시간을 1일 7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사업주가 현장실습생의 동의를 얻은 경우에는 하루 1시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22일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가 입수한 이군의 업무일지를 보면, 지난 9월 아침 8시30분부터 하루 11~12시간 넘는 근무를 한 흔적이 나온다. 10월13일에는 아침 8시3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 토요일인 10월14일에도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군과 함께 현장실습을 나갔던 이군의 친구는 “공장의 물량을 못 채우면 밤 9시, 10시까지 일했다. 처음에 엄청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군은 회사를 그만둔 직원을 대신해 기계 하나를 홀로 전담하기도 했다고 유가족과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는 전했다. 라인 중 포장·완성 단계 부분의 담당자가 이군을 교육한 뒤 회사를 그만뒀고 해당 업무가 이군에게 돌아갔다는 주장이다. 유가족이 공개한 이군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업체 정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컴프레서실 기계 켜는 법 알아?”라고 묻기도 했다.

실제 9일 이군의 사고 현장을 담은 폐회로텔레비전(CCTV)에는 길이 10m에 이르는 제품 적재기의 컨베이어롤러 주변 이곳저곳을 혼자서 살피는 이군 모습이 보인다. 오후 1시49분께 이군이 기계 작동상 오류를 발견한 듯 사고 지점으로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도 담겨 있다. 이군의 아버지 이상영(55)씨는 “화면을 보면 프레스가 원래 내려와 있어야 하는데 올라가 있다. ‘작동에 문제가 있구나’ 생각하고 그 안으로 들어간 것 같다. 기계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가 보고 돌아서 나오는 과정에서 프레스가 내려와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군이 프레스에 짓눌렸지만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제품 적재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등만 초록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사고 현장엔 위험 설비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는 울타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또 다른 현장실습생과 작업자가 이군과 한 공간에 있었지만 사고 당시 이군이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작업 중이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제주근로개선지도센터 관계자는 “해당 자동화설비에는 사람이 접근하면 기계 작동이 멈추는 센서 혹은 설비 접근을 막는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작업 현장의 안전성을 위해 사업자들에게 설치를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이민호군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카톡 메시지에는 이군이 회사 관계자에게 기계가 자주 멈춘다고 알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메시지를 받은 회사 쪽이 어떤 조 처를 취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숨지기 전 기계점검 중 두차례 사고
다른 실습생도 손가락 잘릴 뻔하기도

실습생인데 관리자 없어 사고 무방비
사람 접근때 작동 멈추는 센서도 없어

유가족은 이군이 평소에도 “기계가 고장 났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이군의 카카오톡을 보면, 지난 10월27일 회사 직원에게 “간지공급장치가 간지를 공중에서 그냥 놔버려서 기계가 자꾸 멈춰버립니다”라는 카톡을 보냈다. 이군의 아버지는 이군에게서 ‘하루에 한두 번씩은 기계에 에러가 발생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고도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쯤 이군은 높은 곳에 올라가 기계를 점검하다가 떨어지는 사고를 두차례 겪었다. 두번째 사고에서 이군은 갈비뼈 부분을 다쳐 병원 응급실까지 이송됐고 3일 동안 병가를 냈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추진위원장은 “회사에서 업무에 나오라고 독촉해 완전히 치료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에 복귀해야 했다”고 말했다.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관련된 징후들이 발생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처럼 이군은 잦은 위험에 노출된 끝에 참변에 이른 셈이다. 이군 사고 현장을 조사한 민주노총 쪽은 이군 사고를 처음 목격했던 다른 현장실습생도 최근 손가락이 잘릴 뻔한 위험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민호군의 9~10월 작업 일지. 추석 연휴를 제외하고 거의 매일 아침 8시30분에서 밤 10시30분까지 하루 13시 간가량 근무하고 있었다. 빨간 선은 총 연장근로시간. 고 이민호군 가족 제공

아버지 이씨는 “학생이잖아요. 실습생이잖아요. 숙련공 직원이랑 같이 일해야죠. 그게 안 되면 2인1조로라도 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이 혼자서 그냥 일반 직원과 다름없이 그 위험한 곳에서 일하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라고 절규하듯 되물었다. 이상현 추진위원장은 “기계가 자주 고장 나는 곳에 현장실습생을 배치했고 위험요소가 있었음에도 업체 쪽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는 “이군이 정지 버튼을 누르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가면 안 되는 곳에 들어갔다. 원래 제품자동화설비 안에는 사람이 들어가선 안 된다”며 이군 과실을 내세우고 있다.

이군의 학교도 사고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에서 발간한 ‘특성화고등학교 현장실습 매뉴얼’을 보면 담당교사가 현장실습 중 업체를 직접 방문해 학생에게 ‘순회지도’를 해야 한다. 이 학교 김아무개 교감은 “담당교사가 9월과 10월 두차례 ㅈ사로 순회지도를 나갔으나 이군에게서 ‘공장이 여름에 더웠다’는 불만을 들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군이 갈비뼈를 다쳐 3일간 병가를 낸 사실도 학교는 파악하지 못했다.

이군이 숨진 뒤에도 학교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현재 유가족은 ‘이군의 과실 여부’를 두고 산재와 보상 문제로 업체 쪽과 갈등을 빚으면서 발인을 연기한 상태다. 김 교감은 “회사와 학부모의 합의는 학교가 개입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한솔 이지혜 기자, 제주/허호준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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