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들 더 초과근무", "68시간 계산법 틀려"..오류 가득한 근로시간 단축

세종=전슬기 기자 2017. 11. 23.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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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휴일 수당 도리어 근로시간 연장휴일 개념에 대한 입법적 정리도 필요

퇴근길 시민들/사진=연합뉴스

10년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휴일 근로 수당 중복 할증’ 문제에 대해 대법원이 내년 1월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을 열기로 하면서 근로시간 단축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휴일 근로 수당 중복 할증 여부는 근로시간 단축의 핵심이다. 내년 1월 행정해석 폐기를 준비하고 있던 정부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치권도 당장 23일부터 관련 법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본말이 전도되고, 핵심 사안이 빠진채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비싸진 휴일 근무 수당이 근로자들의 초과 근무를 더 부추기는 ‘역효과’를 가져올거라는 우려다. 또 정부가 말하는 현행 68시간이라는 근로시간 계산법에도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① “수당 높아지면 근로자들 더 초과 근무한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정하고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1주일이 주중 5일인지, 주말을 포함한 7일인지 명시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주일을 5일로 유권해석해왔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최대 주 68시간(주중 40시간+연장 12시간+휴일 16시간) 근로를 권고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근로자들에게 주말 16시간 근무를 요구할 수 없게 한다. 기업들은 주 52시간으로 근무 시간을 당장 축소해야 한다. 이렇게 운영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법정 근로시간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휴일 근로수당과도 직결된다. 기업들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12시간)와 휴일근로(16시간)에 대해선 통상임금에 50% 할증을 붙인 수당을 근로자에게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면 중복 할증이 생긴다. 휴일에 근무한 것은 휴일근로이면서 연장근로이므로 연장근로 가산금(통상임금의 50%)에다 휴일근로 가산금(통상임금의 50%)을 각각 합친 금액을 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 휴일근무에 따른 기업의 수당 지급 부담이 지금보다 두배 늘어날 수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단축은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휴일이나 법정 시간 외 근로에 줘야 하는 수당이 높아지면,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근로자들에게 초과 근무를 시키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과 정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싸진 수당’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고민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들은 근로시간을 줄이는게 아니라 기본급을 낮추는 등 높아진 수당 체제 안에서 어떻게든 기존의 행태를 이어갈 것이고, 높아진 수당은 근로자들에게는 도리어 초과 근무를 하고 싶은 유인책이 되리라는 것이다. 결국 근로시간 단축의 본래 목적인 ‘휴식’은 실현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들은 지난달 1일 “휴일 근무를 '휴일 근무이자 연장 근무'로 인정해 수당을 크게 높이는 경우 기업들은 오히려 기본급인 '정규 임금'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또 현장에서는 기본급이 낮은 근로자들은 휴일 근로 수당이 비씨지기 때문에 초과 근무를 더 원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의 원래 목적은 근로자들에게 휴식을 보장하고, 굳이 초과 근무를 시키려면 ‘비싼 돈’을 제대로 주라는 것이다”라며 “그러나 오히려 본말전도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 고민이 많다”라고 밝혔다. 이같은 딜레마를 감안해 최근 여권 출신인 홍영표 국회 환노위 위원장은 “기업에 큰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며 휴일 근로 수당을 중복 할증하지 않고 현행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언급하기도 했다.

근로시간의 양과 임금이 비례하는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근로시간이 업무량으로 평가되는 제조업 생산직 근로자들과 달리 사무직의 경우 근로시간이 길다고 반드시 업무 성과가 좋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성과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 근로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지급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DB

미국은 ‘화이트칼라이그젬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연봉을 받는 사무직 근로자들에게는 근로시간 배분의 재량권을 주고,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일본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근로시간이 업무량에 비례한다고 보기 어려운 화이트 칼라 근로자에게 생산직과 동일한 기준에서 초과 수당을 지급하면 오히려 근로시간이 연장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② 휴일에 대한 기준 회사마다 달라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현행 68시간 근로시간 계산법의 오류도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근로시간 단축은 현행 주 68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주 68시간은 주중 40시간, 연장 12시간, 휴일 16시간 근로를 합친 것이다.

그러나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휴일에 대한 규정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근로기준법 제55조는 휴일에 대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각 회사의 취업규칙에 따라 다르지만 현장에서 유급휴일은 보통 ‘일요일’로 통용되고 있다.

문제는 토요일이다. 정부의 68시간 근로시간 계산법은 유급휴일을 이틀로 보고 있다. 통상적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각각 8시간씩 16시간으로 계산한 것이다. 그러나 토요일은 엄밀히 말하면 근로기준법상 유급휴일은 아니다. 회사 마다 취업규칙에 따라 어떤 곳은 토요일을 유급휴일로 보지만, 어떤 곳은 유급휴일로 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토요일을 유급휴일로 보지 않는 회사들은 현재 68시간이 아니라 60시간의 근로시간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결국 최근 논의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은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게 아니라 현행 60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야권에서 주장하고 있는 특별연장근로 8시간 허용 문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야권은 현행 68시간을 기준으로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8시간 특별 연장 근로를 허용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을 60시간으로 보면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도입할 수 없다. 60시간에서 60시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이 안되는 셈이다.

더 중요한 건 휴일 근로 수당 중복 할증 적용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유급휴일로 보는 회사들과 아닌 회사들의 휴일 수당 계산법이 달라지는 복잡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정치권과 정부 내에서는 일부 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이같은 휴일에 대한 정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수습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사업장의 단체협약에 따라 토요일과 일요일을 어떻게 유급휴일로 볼지에 대해 차이가 있다”라며 “이런 부분도 국회에서 입법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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