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반려 인형을 '돌본다'는 것

2017. 11. 2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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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술빵이를 안고 잠든 것 같은데, 아침마다 등이 배긴다.

곰 인형의 반려자를 자처하면서 만날 저렇게 깔아뭉개니까 코가 눌리는 거잖아.

아무리 바빠도 함께 사는 강아지와 고양이한테 밥을 안 줄 수는 없을 것 아닌가? 살아 있는 대상은 반려자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충만한 기쁨을 주겠지만, 그만큼 더 큰 책임이 따를 것이다.

그러니 바쁜 직장인들이나 강아지가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께는 조심스레 반려인형을 권해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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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소영이의 반려인형

가끔 손빨래를 당하는 곰 인형 순남이.

분명 술빵이를 안고 잠든 것 같은데, 아침마다 등이 배긴다. 또 깔고 자다니. 손바닥만한 또 다른 곰 인형 순남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잠을 청한 날도 마찬가지다. 일어나 보면 온데간데없다. 십중팔구 침대 밑에 굴러떨어졌거나 저 멀리 이불 속에 내팽개쳐져 있다.

그런 곰돌이들의 모습은 우습기도 하지만 애처롭기도 하다. 곰 인형의 반려자를 자처하면서 만날 저렇게 깔아뭉개니까 코가 눌리는 거잖아. 말할 줄 아는 녀석들이면 나한테 항의할 것 같다.

지인들이 가끔 곰돌이 세탁법을 나한테 물어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 난 그냥 세탁기에 넣는데?’ 하고 대답했다. 순남이는 작고 너무 낡아서 손빨래하지만, 술빵이는 그러기에는 너무 크고 힘겨워서 매정하게 세탁기에 들여보낸다. 그나마도 자주 안 한다.

트위터에서 봉제 인형을 씻는 방법을 본 적이 있는데, 다음과 같았다. 과탄산소다를 녹인 물에 담가 둘 것, 부드러운 브러시로 털을 빗어 더러움을 제거할 것, 물이 탁해지면 버리고 물이 깨끗할 때까지 반복할 것, 손으로 쥐어짜지 말 것, 수건에 감싼 채 세탁기로 30초 정도만 탈수시킬 것, 망에 눕혀서 바람이 잘 통하고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곳에 두고 말릴 것. 미안하지만 난 이렇게까지는 할 수가 없다. ‘물이 깨끗해질 때까지 반복한다’에서 포기. 꼬질꼬질한 술빵이는 그러자면 영원히 목욕을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정성을 쏟을 시간이 없다.

바쁠 때는 며칠 동안 곰돌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날도 생긴다. 그러면 조금 딱딱하고 차가워진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흥, 이제 왔냐? 하면서. 그렇게 방치된 인형들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근사한 곳에도 데려가서 앉혀 놓고 사진도 찍고 싶다. 결국 그것이 내 삶을 돌보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제 깨닫는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울 자격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바빠도 함께 사는 강아지와 고양이한테 밥을 안 줄 수는 없을 것 아닌가? 살아 있는 대상은 반려자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충만한 기쁨을 주겠지만, 그만큼 더 큰 책임이 따를 것이다.

그러니 바쁜 직장인들이나 강아지가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께는 조심스레 반려인형을 권해드리는 바이다. 조금 신경을 덜 쓰더라도 설령 눈을 흘길지언정 큰 탈은 안 날 테니까.

정소영(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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