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린 37년 무가베 시대, 여전히 험난한 짐바브웨의 앞날

심진용 기자 2017. 11. 2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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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의 의회 건물 앞에서 21일(현지시간) 로버트 무가베 사임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하라레|AP연합뉴스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93)가 전격 사임했다. 1980년 독립 이후 37년간 이어진 그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수도 하라레는 무가베 퇴진을 기뻐하는 시민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짐바브웨의 앞날은 여전히 불안하다.

무가베는 21일(현지시간) 의회가 탄핵 절차에 돌입하자 사의를 표했다. 과거 그는 “신만이 나를 끌어내릴 수 있다”며 100세까지 통치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현지 일간 뉴스데이는 “무가베가 의회 탄핵으로 더 큰 치욕을 당하는 것을 피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의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무가베를 탄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는 도중 무가베의 사임 서한이 전달됐고, 탄핵 논의도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해방자에서 압제자로, 무가베의 37년

1970년대 무가베는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해방군 최고사령관으로 무장 게릴라 투쟁을 이끌었다. 1980년 독립으로 그는 사상 첫 흑인 총리가 됐다. 그러나 무가베는 독립영웅이 아니라 독재자의 길을 택했다. 1982년 무장 투쟁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조슈아 은코모를 연정에서 축출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권력 독점에 나섰다. 은코모의 은데벨레 부족이 반발하자 북한에서 훈련받은 부대를 투입해 무력진압했다. 인권단체들은 진압과정에서 2만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한다.

그는 1987년 총리제를 폐지하고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야당 활동은 불법화했다.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2000년 다시 야당의 선거 참여를 허용했지만, 권력 도전은 철저히 억눌렀다. 2008년 대선이 대표적 사례다. 무가베는 1차투표에서 민주변화운동(MDC)의 모건 창기라이에게 졌지만 결선에서는 85.5% 득표로 압승했다. 창기라이를 5차례 구금하는 등 MDC의 선거운동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결과다. 외신들은 1차투표 후 3주 동안 최소 80명이 숨지고 2000여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짐바브웨메일은 “그는 짐바브웨의 해방자였고 압제자였다”고 전했다.

무가베 집권 기간 짐바브웨 경제도 파탄났다. 2000년 그는 해방전쟁의 일환이라며 백인 소유 농장을 무상 몰수했다. 짐바브웨메일은 “농장 몰수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경제는 망가졌다”고 적었다. 2008년 짐바브웨 인플레이션율은 2억%에 달했다. 수출농업이 무너지면서 외화 수입이 끊겼고, 국제제재까지 이어졌다. 이와중에 콩고 내전까지 개입하고 나섰다. 돈이 없으면 새로 찍어내면 된다고 정권은 판단했지만 그 결과는 초유의 하이퍼인플레였다. 포린폴리시는 과거 식량수출국가였던 짐바브웨가 이제는 시골 인구 절반이 해외 원조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전했다. 1990년 32만t이던 밀 생산량은 지난해 2만t으로 떨어졌다.

■앞날 불안한 포스트 무가베 시대

37년에 걸쳐 누적된 문제가 무가베 한 사람의 퇴진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무가베 퇴진 역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기보다는 상층부 권력 투쟁의 결과에 가깝다. 무가베 다음 권력은 에머슨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무가베 집권 기간 요직을 두루 거쳤고, 정권의 폭압적 통치를 주도해 ‘악어’라는 별명이 붙은 인물이다.

지난 6일 무가베에게 해임된 후 이웃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피신했던 음안가그와는 22일 짐바브웨로 돌아왔다. 제이컵 무덴다 의회 의장은 이날 회견을 열고 24일 그가 대통령에 취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짐바브웨 헌법은 대통령 탄핵시 부통령이 자동 승계하지만, 90일 내에 집권당이 지명한 후보에게 자리를 넘겨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 부통령 펠레케젤라 음포코는 친무가베파로 실권이 없다.

집권당 짐바브웨민족연맹-애국전선(ZANU-PF)는 지난 19일 무가베를 당대표에서 해임하고 대신 음난가그와를 추대하면서 일찌감치 그의 권력 승계를 준비해왔다. 뉴스데이는 ZANU-PF가 음포코가 사임하도록 설득하거나 아예 부통령 탄핵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음난가그와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과도정부를 꾸려 무가베의 잔여 임기를 마무리할 전망이다. 정당성 확보를 위해 음난가그와가 창기라이를 비롯한 야권 인사들도 과도정부에 참여시켜야 할 것이라고 포린폴리시는 전망했다. 텐다이 비티 전 재무장관, 조이스 무주루 전 부통령 등도 후보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들이 과도정부에서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음난가그와의 안정적인 권력 승계를 위한 들러리로 그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전례가 있다. 2008년 대선 파동 이후 무가베는 통합정부를 꾸리겠다며 창기라이를 총리 자리에 앉혔다. 실권은 전혀 없는 허울 뿐인 총리였다. 그리고 2013년 대선에서 무가베는 여유롭게 창기라이를 이겼다. 포린폴리시는 “야권 인사들도 이런 함정을 알고 있지만, 과도정부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는 압박을 느낄 것”이라고 전했다.

과도정부의 역할이 끝나고 이르면 내년 8월 열린 선거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될지도 의문이다. 창기라이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음난가그와가 지난 37년간 무가베의 통치 방식을 반복한다면 대단히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면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원래 비슷한 이들끼리 어울리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가베가 짐바브웨의 마오쩌둥이라면, 음난가그와는 나라를 새 방향으로 이끄는 짐바브웨의 덩샤오핑이 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면서도 “하지만 그보다는 무가베와 ZANU-PF의 동료들이 했던 대로 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무가베 시절 폐간된 일간 짐바브웨안 전 편집장 페드지사이 루하냐는 알자지라 기고에서 “누가 권력을 쥐든 군부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들의 수탈은 계속될 것이며 일반 국민들의 고통스런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반면 독재자 무가베는 사임 이후로도 안락한 여생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집권당도 군부도 ‘혁명 영웅’ 무가베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 모요 대변인은 무가베의 사임을 반기면서 “그는 짐바브웨 해방을 이끌었고, 총리와 대통령으로 많은 일을 했다. 무가베는 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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