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인 美 보호주의..韓 반도체·철강·태양광도 위기

황형규,고재만,황순민 입력 2017. 11. 22. 17:57 수정 2017. 11. 2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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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세탁기값 올라..美소비자들이 손해볼 것"
수입철강에 무역확장법 태양광패널 세이프가드 반도체 특허 침해 조사 등 줄줄이 고강도 제재 예고

◆ 美 통상압박 가속 / 美 ITC, 세탁기 관세폭탄 ◆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쓰나미'로 재계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한국을 겨냥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조치가 반덤핑 관세 같은 단골 수입규제는 물론 냉전시대 규제 산물인 무역확장법이나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처럼 한동안 쓰지 않았던 '비전통적' 방법까지 무차별적으로 동원하는 추세다. 21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내놓은 삼성·LG전자 등 수입 세탁기에 대한 최고 50% 관세 부과 역시 전례 없이 강도가 높은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연 200만대,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규모의 세탁기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ITC 권고안에 따라 100만대 안팎의 세탁기에 50% 관세가 부과된다. LG전자의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국내 창원공장에서 생산하는 20%의 물량을 제외한 베트남 태국 공장 생산 물량이 관세 부과 대상이다. 미국 수출물량을 모두 베트남 등 해외공장에서 생산하는 삼성전자는 좀 더 타격이 크다. 관세폭탄은 곧 가격경쟁력 상실과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져 북미시장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삼성·LG전자는 ITC 결정에 '유감'을 표했다. LG전자는 "세이프가드 발효의 최종적인 피해는 미국 유통과 소비자가 입게 될 것이므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ITC의 권고안을 받아들일 것이 확실한 만큼 고관세를 피하는 현실적인 방법은 미국 내 공장을 서둘러 완공해 생산에 나서는 것뿐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1분기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가전공장이 가동에 들어가면 고관세를 일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는 테네시에 건설 중인 연 100만대 규모 세탁기 공장의 가동시점을 당초 예정됐던 2019년에서 내년 말까지 최대한 서둘러 충격을 흡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ITC가 세탁기 완제품뿐 아니라 부품에 대해서도 연 5만대 이상일 경우 50% 관세를 부과하라고 권고한 만큼 상대적으로 영세한 부품협력사들까지 미국 내 공장을 갖춰야 한다. 부품을 포함한 미국 공장이 정상 가동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ITC의 발표 중 우려되는 것은 위원 4명 중 2명이 '120만대 이내에 대해서도 20%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권고한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모든 수입 세탁기에 최소 20%의 관세가 부과돼 수익성에 비상이 걸린다. 이번 ITC 권고안이 "미국 소비시장에서 제품을 팔려면 부품·완제품 모두 미국 내에서 생산하라"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세이프가드 최종 결정권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이 남은 60여 일 동안 한국과의 통상현안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내년 1월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을 최종 결정할 수도 있다"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미 FTA 폐기까지 실제 검토했던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염려했다.

문제는 이번 세탁기에 대한 고관세 부과가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공세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반도체 철강 태양광 등 주력 산업이 줄줄이 보호무역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ITC는 이미 한국의 주력 산업인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미국 업체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를 들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철강도 대표적인 타깃이다. 트럼프 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거해 철강제품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수입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세이프가드가 발동될 수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조만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무역확장법 232조의 최종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우리나라 주력 수출 품목인 후판과 에너지용 강관에 고관세 판정을 내렸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만약 철강 제품에 세이프가드를 적용한다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철강업계가 직접 대응하거나 미국 정부와 조정에 나서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정부와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태양광 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태양광전지의 경우 이미 세이프가드 구제조치 판정이 내려진 상황이다. ITC는 한국산 태양광모듈에 최대 35%의 관세를 부과하고 최대 4년간 수입 쿼터를 설정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확정한 상태다. 이번 세탁기 세이프가드 발동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세탁기는 시작일 뿐 반도체 철강 등 주력 산업이 줄줄이 트럼프 행정부의 타깃이 되고 있다"며 "개별기업이나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통상전략을 흔드는 조치인 만큼 민관이 합동으로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현정 무역협회 연구위원은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수입규제가 다른 품목까지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며 "최종 피해판정까지 나면 한국 기업과 제품에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한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미국 각계각층에 호소해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걸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2일 세탁기 세이프가드 관련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열고 향후 진행 과정에 따라 이번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기로 했다.

[황형규 기자 / 고재만 기자 /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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