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맨부커·퓰리처 수상 작가, 겨울 서점가 달군다

심성미 입력 2017. 11. 22. 17:18 수정 2017. 11. 23.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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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내마음의 낯섦'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 찾기
이스탄불 변화상 섬세 묘사
얀 마텔 '포르투갈의 높은 산'
사랑하는 사람 잃은 주인공
부서진 믿음 회복과정 그려
스트라우트 '버지스 형제'
아버지를 잃은 중년의 세 남매
귀향하면서 벌어지는 일 다뤄

[ 심성미 기자 ]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판매된 맨부커상 최대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로 유명한 캐나다 작가 얀 마텔,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 2009년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받은 거장들의 신작이 국내에 잇따라 출간돼 올겨울 서점가에서 주목받고 있다.

마텔의 네 번째 장편소설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작가정신)은 지난해 영미권에서 출간돼 단숨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화제작이다. 파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극한의 상황에서 삶에 대한 의지로 바다를 헤쳐나간다면 이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주인공들이 산산이 부서져버린 믿음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소설은 3부로 구성된다. 1부의 배경은 1904년 포르투갈 리스본. 사랑하는 이들을 1주일 만에 모두 잃고 신에 대한 반발심이 극에 달한 주인공 율리시스가 온갖 고난을 겪으며 안식처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1938년이 배경인 2부에선 부검 병리학자에게 남편의 시신을 가방에 들고 찾아온 여자가 등장한다. “남편을 부검해 그가 왜 죽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하던 그녀는 “여기가 내 집”이라며 남편의 시신 안에 자신을 넣고 꿰매달라고 요청하면서 삶을 마감한다.

1981년 캐나다가 배경인 3부는 40년간 함께 살아온 아내와 사별한 상원의원 피터와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다. 피터는 오클라호마 출장 중 우연히 방문한 유인원 연구소에서 만난 수컷 침팬지의 눈빛에 홀린다. 과거와 회한, 미련에 집착하는 자신과 달리 현재의 순간에만 집중하며 행복을 음미하는 침팬지의 삶의 태도에 매혹된다. 캐나다에서의 삶을 모두 정리한 피터는 침팬지와 함께 고향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난다. 삶에서 뜻하지 않은 고통에 부딪히는 인간은 무엇을 의지하고 믿으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묵직한 소설이다. 다만 허구적 설정이 어색하게 다가올 수 있다.

스트라우트의 버지스 형제(문학동네)는 미국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중년의 세 남매가 고향을 떠났다가 중년이 돼서야 마을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수전의 아들 재커리는 마을의 소말리족 난민공동체가 신성시하는 이슬람교 사원에 잘린 돼지 머리를 던져넣는다. 이 행위로 인해 재커리는 연방검찰에 기소당할 위기에 처한다. 변호사인 짐과 법률구조협회에서 일하는 밥은 조카를 도우려 하지만 오랜만에 재회한 가족들은 삐거덕거린다.

작품 속에서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구속하는 또 다른 철창이다. 저자 특유의 예리한 감정 묘사는 주인공들이 느끼는 타인에 대한 혐오를 정확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가족 간 갈등, 소말리족 난민과 주민 간 갈등을 동시에 다루며 타인에 대한 몰이해는 어디에서 오는지 질문한다. 작품이 제시하는 대답은 ‘인간의 존재론적 불완전함’이다. 다만 작가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 타인을 이해하는 문이 열릴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함께 던진다.

내마음의 낯섦(민음사)은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파묵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이다. 터키의 전통 음료를 파는 빈민 메블루트의 일생과 함께 1969~2012년 터키 이스탄불의 변화상을 짜임새 있게 직조해낸 작품이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면서 소박한 일상에서 기꺼이 행복을 찾는 메블루트가 뿜어내는 힘이 작품을 이끌어간다. 함께 도망치려 했던 여자 대신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고 주차장 경비원, 식당 매니저, 전기료 징수원 등 닥치는 대로 일하는데도 곤궁한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그의 인생은 어찌 보면 참 기구하다. 그러나 온갖 예기치 못한 사건에도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느샌가 마음속으로 응원의 말을 던지게 된다.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할 때 이스탄불을, 이스탄불을 설명할 때 나 자신을 설명한다”고 말했듯, 파묵의 ‘이스탄불 사랑’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경제적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도시 모습에 대한 작품 속 묘사가 급격한 현대화를 겪은 서울의 모습과 닮아 있어 흥미롭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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