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뉴타운의 '그림자', 달봉이네를 소개합니다

2017. 11. 2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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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유기견과 들개..동물과 관계 맺기 실패한 결과

[한겨레]

녹색 펜스를 사이에 두고서는 기꺼이 사람 손에 얼굴을 맡기는 개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섭다는 듯이 도망치기 바쁘다.

사설보호소 ‘달봉이네’는 경기도 고양시의 한 산자락에 있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이하 카라)의 더불어숨센터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약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 버스에서 내리면 비닐하우스 모양을 닮은 개 사육시설을 볼 수 있다. 시설 위로는 전봇대 하나 하늘 가리는 일 없이 탁 트인 시야가 펼쳐진다. 개들은 펜스에 달라붙거나 멀찌감치 떨어져 봉사자들을 향해 짖으며 꼬리를 흔든다. 160여 마리의 개들의 비슷한 듯 각기 다른 얼굴에는 경계, 혹은 반가움이 짙게 번져 있다.

달봉이네는 2000년대 초반에 진행된 은평뉴타운 개발로 탄생했다.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이 철거를 앞둔 집에 반려견들을 남겨놓고 가며 유기견이 대량 발생한 것이다. 당시에는 은평뉴타운 개발지역뿐 아니라 다른 재개발 지역에서도 유기견이 쏟아지고 있었다. 재개발 지역에 남겨진 유기견들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는데, 산으로 올라가거나 재개발 지역의 떠돌이 개가 되는 것이었다. 일부 산으로 올라간 개 중 일부는 살아남아 ‘산에 사는 유기견’이 됐고, 재개발 지역에 남겨진 유기견들은 대부분 잡혀가 안락사 되거나 주변에 출몰하는 개장수에게 잡혀갔다.

당시 산으로 올라간 개 중 간신히 살아남은 개체는 서로 짝을 지어 새끼를 낳기도 했다. 사람과의 긍정적인 접촉이 없었던 새끼들은 야생성을 가진 개들로 자라나 무리를 지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부분 산에 사는 개들이 사람을 무서워하는데, 사람에게도 산의 개들은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산에서 무리를 지은 것만으로도 위협적으로 보일뿐더러, 등산객을 위협하는 등 공격적 행동을 보였다는 소식이 미디어에 보도되며 ‘산에 사는 개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대중에게 자리 잡힌 듯하다.

개들은 집과 비닐하우스와 바깥을 드나들며 지냈다. 관리되지 않은 개들은 굶주림과 질병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버려진 개들은 구멍 뚫린 비닐하우스 아래에서 지내며 자기들까지 개체 수를 늘렸다.
카라가 개입한 후 일차적으로 정리한 개 사육시설. 낯선 이가 오면 개들은 경계심 가득한 시선을 한 데 모았다.

한편, 은평뉴타운에 남겨졌던 개들은 재개발 지역의 주민인 원아무개씨가 거두었다. 그 역시 철거를 앞둔 형편이었으나 배고픔과 애정에 굶주리던 개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하나둘씩 데려온 개들은 70여 마리에 달했다. 달봉이네 보호소는 그렇게 재개발 지역에 버려진 유기견들의 집합체로서 출발했다. 원씨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어찌 보면 그가 은평뉴타운 개발지역의 개들의 들개화를 막은 셈이다.

그러나 중성화가 안 된 개들은 서로 교배하며 개체 수를 200여 마리까지 늘렸다. 개들은 제대로 밥도 못 먹으며, 그리고 이끼가 낀 물을 먹으며 질병 앞에 취약하게 노출되었다. 병에 걸린 개들은 제때 치료받지 못했다. 개들은 천장도 없는 비닐하우스를 집으로 두고 목숨을 간신히 연명하거나, 잃었다.

개 주인도, 지자체도, 국가도 외면한 많은 동물을 한 명의 철거민이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도 도움도 없이 시한폭탄처럼 하루하루를 견디던 보호소는 카라가 지원하기로 하면서 한숨 돌렸다. 지붕 없는 비닐하우스 환경을 정비하고, 중성화 수술 등 필요한 의학적 조처로 개체 관리에 나선 것이다. 사설보호소의 올바른 모델을 제시하는 한편 들개 문제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호소가 있는 곳 또한 재개발 지역이었다. 지원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안 되어 즉각 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예견된 일이었으나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원씨가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개들을 방사해 산으로 보낼 수도 없었다.

그래도 기회는 있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성악가 조수미 씨가 봉사에 나서고, 카라가 재개발 지역의 유기견 문제를 사회에 환기하면서 보호소 이전을 위한 활동에 나섰다. 지역에서 발생한 개들을 자발적으로 보호하는 활동이었고 이미 야생화된 개들의 포획과 이동이 필요한 활동이었건만, 고양시와 소방관서는 냉담하게 등을 돌렸다. 오로지 시민들의 후원과 카라 활동가들만의 노력으로 180마리의 대규모 엑소더스가 이뤄졌다. 수십 번의 봉사활동 끝에, 달봉이네는 조용한 산 아래에서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거처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달봉이네 보호소에는 비슷한 성격을 가진 개들끼리 같이 지내고 있다. 이 구역의 개들은 전체적으로 사람을 경계한다. 유기견 사이에서 태어나 사람을 낯설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이 개를 두고 나오는 건 마음 아픈 일이지만, 정리된 개 사육시설에서 매끼 꼬박꼬박 먹으며 몸 아픈 데 없이 지내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고양시로 옮긴 달봉이네 보호소. 개농장이 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비닐하우스의 구조를 이용해 지었다.

달봉이네 개들의 삶은 이전 은평구 시절에 비해 나아졌다. 음식물 쓰레기를 뜯는 대신 기부 받은 사료를 먹을 수 있고,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온전하고 섬세한 애정을 받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개들은 입양을 원하는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손길을 받으며 삶을 연명해갈 것이다. 그들을 버린 사람이나 버리도록 만든 체계를 대신해 책임을 지고 있는 다른 이들의 손에서 말이다.

산에 사는 개들을 생각해본다. 살기 위해 산으로 가 살아남았으나 사람들의 질서에 반한다고 ‘북한산의 무법자’라 불리며 사람과의 대척점에 선 들개나, 살아남았으나 소외된 공간에서 사람만의 도움을 기다리는 유기견. 양쪽 모두 우리 사회가 동물과의 관계에서 실패했을 때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삶의 편리함이 개들을 산으로 밀어냈다는 것을 기억할 때, 그에 대한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갖추게 될 때야 사회는 좀 더 성숙한 의식을 갖추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김나연 통신원·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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