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지금, 행복하십니까](5)"GDP라는 하나의 숫자가 사회 전체의 행복을 말해주진 않아"

파리 | 이혜인 기자 2017. 11. 2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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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OECD 통계국 ‘웰빙 및 발전부서’ 책임자 캐리 엑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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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보통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성장’이 ‘발전’이라고 믿는 시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내년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가 올해보다 낮아지면 ‘저성장의 늪’에 빠진다며 두려워한다.

한국경제가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1970~1990년대, 대기업은 돈을 벌면 신사업에 투자하고, 고용을 늘렸다. 하지만 2017년 지금, 대기업이 돈을 벌고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고용이 늘고 보통 사람들의 삶이 나아질까.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을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두고, 일자리가 잘 늘지 않는 기술집약적 산업 위주로 투자해 경제가 성장해도 개인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사람들이 경제성장에 너무 많은 가중치를 두는 것은 GDP처럼 양적 성장을 측정하는 경제지표가 너무 중요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며 대안지표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국에서는 하나의 수치로 압축되는 경제지표들이 잡아내지 못하는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측정하기 위한 일종의 대안지표를 만들었다. 2011년부터 OECD 통계국에서는 매년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 BLI)’를 발표한다. OECD 회원국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삶의 질과 밀접한 교육, 환경 등 11개 분야에서 웰빙 정도를 측정한다.

경향신문은 지난 10월 프랑스 파리의 OECD 통계국을 찾아가 ‘웰빙 및 발전부서’ 책임자인 캐리 엑스톤(사진)을 만나 BLI에 대해 더 자세히 들어봤다.

■ GDP만 보면 놓치는 것이 생긴다

“GDP는 생산이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따져보기에는 아주 좋은 통계죠. 표준화된 산출방법이 잘 갖춰져 있어 이용하기에도 편해요. 하지만 GDP라는 단 ‘하나’의 숫자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대안지표에 대해 말하려면 우선 기존 지표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을 알아야 한다. 엑스톤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한 사회나 나라 안에서 어떻게 분배하고 있는지, GDP가 성장하면 누가 그 성장의 이득을 가장 많이 보는지와 같은 사실은 숫자 하나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인한 지나친 환경오염,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는 친교 관계 등은 GDP 기준으로 보면 ‘경제적 활동’으로 평가할 수 없다.

엑스톤은 각 사회가 GDP라는 단일 지표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경제통계를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면서 어떤 경험을 하고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더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단일 경제지표와 통계들이 사람들의 삶과 관련된 담론에도 깊숙이 개입해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며 “경제통계를 뛰어넘어서 생각해보자”고 했다.

OECD 통계국에서는 경제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들이 모여서 사람들의 삶의 질과 행복에 영향을 미칠 만한 요소들을 추려냈다. 삶의 질을 다방면에서 측정할 수 있어야만 GDP라는 단일지표가 범한 우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측정 분야를 세분화했다.

BLI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11개 영역에서 총 24개의 세부 지표로 구성된다. 건강 상태, 일과 삶의 균형, 교육과 기술, 환경의 질 등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환경 8개의 영역과 소득·주택·일자리처럼 물질적인 조건 3개 영역으로 구성됐다. 11개 영역에서 고루 우수한 수치가 나올수록 그 사회에 사는 개인들의 삶이 장기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엑스톤은 “짧은 순간 강렬하게 느끼고 휘발되는 것 같은 감정이 아니라, 삶에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만족감 등을 행복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GDP의 한계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이 지표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계국에서는 BLI와는 별도로 현재 삶을 유지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이 미래에도 얼마나 지속가능한지를 보는 ‘웰빙의 지속가능성’도 체크해 2년에 한번씩 나오는 ‘삶의 질 보고서(How’s Life)’에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자연 자본·인적 자본·사회적 자본·경제적 자본의 네 가지 부문으로 나누고 각 부문의 자원들을 미래에도 계속해서 사용가능한지 살핀다. 자연 자본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 재생 가능한 담수 자원, 위협받고 있는 종들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식이다.

■ GDP가 놓치는 ‘분배’와 ‘평등’

경제성장 결과가 얼마나 평등하게 사회구성원들에게 분배되는가는 사회 전체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GDP는 이를 담아내지 못한다.

엑스톤은 “성장 결과가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가를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사회 안에서 누가 성장의 수혜를 누리고, 누가 소외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GDP에서는 다루지 않는 분배에 대해서 BLI와 같은 지표들이 더 자세히 다루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이 분배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더 많이 신경을 쓸 것이다”라고 말했다.

BLI의 11개 영역의 하위지표들은 기존 경제지표들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췄다. 소득 영역에서는 세부 지표로 ‘가구당 가처분 소득’과 ‘가구당 금융자산’을 두고 있다. 소득과 자산을 사회 전체로 뭉뚱그려 보지 않고 개별 가구에서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엑스톤은 “우리는 부유한 소수가 잘사는 사회를 삶의 질이 높은 사회라고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분배에 대한 이야기는 한 사회가 얼마나 공평한가 하는 이야기다. 엑스톤은 “소득 불평등뿐 아니라 교육이나 정치참여,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와 같은 기회의 평등 여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며 “사람들에게 정책 성과나 경제적 성과가 각각 어떻게 귀결되는지를 알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올해 나온 ‘삶의 질 보고서’에서는 OECD 국가들에서 계층별, 성별, 연령별, 학력별로 삶의 조건들이 얼마나 평등하게 구성되는가를 살펴보고 비교분석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과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들 간에 취업, 소득, 정치적 참여 등에서 얼마나 차이가 발생하는지 등을 살폈고, 젊은층과 중년층의 소득수준을 비교하기도 했다. 엑스톤은 “단 한 개의 측정기준을 가지고 불평등도를 평가하는 것은 제대로 된 평가라고 볼 수가 없다”며 “그룹별, 계층별로 여러 비교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OECD 통계국에서는 궁극적으로 BLI가 정책 의사결정의 근거로 활용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사람들의 삶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지표를 토대로 정책이 결정되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장의 양이 아닌 질에 대해 평가하는 흐름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양적 성장 지표만이 아니라 더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서 평가하기 시작하면 경제성장이나 정책의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의 삶에는 여러가지 면이 존재하는데, 더 풍부한 데이터를 이용해서 평가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시리즈 끝>

<파리 |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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