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연의 직격 인터뷰] "자신들 적폐가 산인데 누구를 청산하나"

최상연 입력 2017. 11. 22. 01:01 수정 2017. 11. 2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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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권 적폐 우리도 많이 안다
지금 하는 식이면 수백 건도 넘어
일심회·노무현 640만 달러 사건
반드시 재수사하고 청문회 열어야
정치 공작 댓글이란 증거가 없는데
언론플레이로 망신주고 몰아대니
법치와 민주주의 흔드는 정치보복
레드라인 넘으면 용납에 한계 있다

━ 이동관 전 홍보수석

이동관 전 수석은 ’표적을 정해놓고 죄가 나올 때까지 전방위적이고 초법적으로 뒤지는 건 정치보복“이라며 ’넘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고 용납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구속 이후 검찰 수사는 점차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향해 나가고 있다. 김 전 장관은 검찰에서 군 사이버사령부 활동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가 일부 있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MB가 연내에 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서게 될 거란 전망도 있다. 검찰 수사가 턱밑까지 다가오자 MB와 그의 주변에선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런 상황에서 MB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MB의 입’으로 불리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들어봤다.

Q : MB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왜 그런가.

A : “정권이 바뀌거나 혁명적 상황이 왔을 때 어느 정도의 청산 작업은 필요하다고 본다. 정치학에선 전환기적 정의(Transitional Justice)라고 한다. 다만 환부를 메스로 도려내듯이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미래 발전의 발판과 초석을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끼로 손발 자르듯이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이며 전방위적인 데다 초법적으로 털어대고 있다. 적폐청산에 국가 정보기관의 서버를 뒤져보라고 누가 권력을 줬나. 국정원 서버를 뒤지는 건 임금님도 못 보던 사초를 뒤져 정적을 제거했던 조선시대 사화를 연상케 하는 일이다.”

Q : MB를 겨냥해 죄가 나올 때까지 뒤지고 있다는 뜻인가.

A : “그렇다. 어떤 식이든 전직 대통령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우겠다는 집요함을 정치보복 말고 뭘로 설명할 수 있겠나. 적폐청산으로 포장했을 뿐 문화혁명기의 마오쩌둥 방식이다. 마오도 반대파를 숙청하려는 권력투쟁 차원에서 시작했다. 조반유리(造反有理·모든 반항과 반란엔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 발언 후 홍위병 완장으로 바람을 만들었는데 그 바람에 중국이 쇠퇴했다. 결국엔 마오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갔다.”

Q : MB도 사정의 칼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보나.

A : “타깃을 정해 놓고 달려든다는 걸 느낀다. 정치공작 댓글을 지시했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언론 플레이로 망신을 주는 건 졸렬하고 악의적인 방식이다. 인권탄압, 고문, 투옥 등의 진실을 밝혀 궁극적으론 법치와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게 적폐청산이다. 지금처럼 법치와 민주주의의 기틀을 흔드는 건 적폐청산이 아니다.”

Q : MB가 표적이라고 생각하는 계기는 뭔가.

A : “가족·친인척까지 다 엮어서 뒤지는 흔적이 보인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목표를 두고 나올 때까지 마구잡이로 털겠다는 건 곤란하다. 전직 대통령이 아닌 일반인이라도 그런 식은 안 된다. 넘지 말아야 할 레드 라인이 있다. 용납에도 한계가 있다.”

Q : 용납의 한계를 벗어나면 어떻게 하나.

A : “참모들도 처음엔 ‘지켜보자’는 쪽이었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많다. 목적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적(敵)을 폐하는 게 적폐’란 말까지 나온 상황이다. 청와대와 검찰, 적폐청산위원회가 쏟아내는 망신주기용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 국민도 혼란스럽다. 이젠 할 말은 하자는 분위기다. 앞으론 우리 입장에서 대항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다만 아직은 거기까지 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건 서로 막가자는 것이다.”

Q : MB 주변에선 ‘우리도 노무현 정부 때 벌어진 일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있다’는 식의 얘기를 흘리고 있다. 공개하겠다는 뜻인가.

A : “우리도 5년 집권했다. 왜 정보가 없겠나. 이런 식의 적폐청산이라면 수백 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일심회 수사 때 수사 축소 요청에 국정원장이 저항하다 결국 사직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적폐청산 대상 아닌가. 반드시 재수사하고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의혹으로 불거져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 달러 사건은 적폐를 넘어 국기문란이다. 그 돈으로 집을 샀다는 게 봉인돼 있는 당시 수사기록에 있다. 자신들의 적폐가 산처럼 쌓였는데 남의 적폐만 무차별로 뒤지고 있다. 도대체 누가 누구의 적폐를 청산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Q : 참모들은 모임이 잦나.

A : “이슈가 생기다 보니 최근엔 이전보다 자주 모여 대책회의를 한다. 우리가 겁내는 건 없다. 정치 댓글을 조작했다면 잘못이고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지고 처벌받는 게 맞다.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김관진 전 장관 기소장에 붙어 있는 댓글 8862건 중 절반 이상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된 사안이다. 그중 일부는 MB 정부를 공격하는 댓글도 있다. 적폐청산은 해야겠지만 통제되지 않는 무차별적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을 넘어 국가 혼란을 부를 수 있다.”

Q : 어떤 점에서 통제되지 않고 있다고 보나.

A : “국가 기밀기관 정보를 그렇게 다 뒤져서 국민에게 공개하는 나라에 어떤 국가가 정보를 공유해 주겠나. 국가 안보에 심각한 문제다. 노무현 정부 때 미국은 우리에게 정보를 주면 북한에 넘어간다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기미가 있다. 미국은 이라크전 개전의 핑계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WMD) 증거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못 찾았다. 만약 부시가 한국 대통령이었다면 감옥에 보냈을 거다. 하지만 미국에선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통치행위에 따른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라의 공적 자산인 전직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폄하하고 출국하지 말라고 여당 대표가 나와서 데모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Q : MB 출국 땐 입장 표명이 있을 거라더니 귀국할 땐 조용했다. 왜 그랬나.

A : “전직 대통령이 시도 때도 없이 아무 얘기나 할 수는 없다.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계기가 오면, 상황이 조금 더 진전되면 그때는 더 단호하고 강력한 입장을 밝힐 것이다. 더 나아가 입장 표명을 넘는 것까지 할 수 있다. 조용히 귀국했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Q : 언제, 어떤 상황이면 그런 강력한 입장이 나오나.

A : “부디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란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칼을 뽑게 되면 죽기 살기로 하게 되지 않겠나.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이런저런 공세야 있겠지만 우리가 보기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는 일은 없을 거라고 본다. 그럴 만큼 잘못한 게 없다.”

Q : 김관진 전 장관은 군 사이버사령부와 관련해 MB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지 않나.

A : “그 부분에서 회의감을 느낀다. 천안함·연평도 도발 이후 북한이 대남 사이버 공작을 많이 하던 시기였다. 국가 안보를 책임진 기관에서 거기에 대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북한의 대남 특수부대에 대응하기 위해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지시였다. 그걸 검찰에선 정치댓글을 조작하라고 지시했다는 취지로 언론 플레이를 하니 어이가 없다. 정치댓글 달라고 지시하는 얼빠진 대통령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나.”

Q : 청와대 홍보수석 때 국정원의 방송 장악에 개입했다는 수사도 진행 중이다.

A : “불법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책임을 지겠다. 하지만 그런 일이 없다. 김재철 전 사장이 93차례나 식사비를 내줬다는 소문까지 있던데 그 분을 만난 적이 없다. 김 전 사장도 나를 만난 적이 없다고 검찰에서 얘기했다고 하더라. 검찰의 언론 플레이다. 게다가 MBC 김장겸 사장의 퇴출 과정을 보면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을 강하게 의심하게 된다. 그런 건 왜 수사 안 하나. 내가 하면 방송 정상화고 남이 하면 방송 장악인가.”

Q : 김 전 사장의 운전기사가 ‘수시로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 ’PD수첩‘ 등을 논의했다’고 진술했다는데.

A : “만난 사실도 없지만 만났다 해도 운전기사가 무슨 논의를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MBC 노조가 김 전 사장의 식사 영수증을 근거로 교묘하게 엮은 것인데 나는 가보지도 않은 음식점들이다. 청와대 수석실에서 국정원에 지시하는 채널도 없다.”

Q : KBS 조직 개편과 관련해 ‘좌편향 인사 여부’ 문건 작성을 지시했나.

A : “청와대 내에 그런 시스템이 없다. 더구나 지시를 했다는 5월 말은 한·중 정상회담으로 정신 없이 바쁠 때였다. 6월 3일 보고를 받았다고 하던데 전날 지방선거 패배로 청와대 참모진 일괄 사의를 논의하던 시기다. 그렇게 하지도 않았지만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Q : 잘못한 게 없다면 검찰은 왜 MB 청와대를 수사할까.

A : “뭔가 있을 거란 선입견이 있다고 본다. 4대 강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국가 프로젝트를 하면서 돈을 안 받았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때도 감사원이 4대 강을 세 차례나 조사하고 4년간 롯데를 털었는데 나온 게 없었다. 그땐 그래도 벙어리 냉가슴 앓는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합리적이고 사려 깊은 분이란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전방위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나오고 있다. 홍준표 대표가 말한 것처럼 ‘망나니 칼춤 추는 것 같은 행태’다.”

Q : MB 근황은 어떤가.

A : “인도 정부 초청으로 일정을 조율 중인데 국내 정세가 이렇다 보니 계속 조율만 하고 있다. 적폐청산은 정해진 법과 제도 내에서 진행해야 한다. 또 과거 청산이란 판도라 상자를 열면 끝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이 전 대통령이 얼마 전 출국 길에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고 한 건 문 대통령의 5년간의 국정 경험을 믿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 보니 강경파 참모에 둘러싸여 통제력을 잃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마구잡이로 뒤지는 건 국가 발전에도, 문재인 정부를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된다. 통제를 못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문화혁명도 결국엔 마오에게 화살이 다시 돌아갔다.”

■ 이동관은 …

「 줄곧 ‘MB의 입’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온 뒤에도 MB의 서울 삼성동 사무실 회의에 참석하며 사실상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다. MB의 복심(腹心)으로 꼽히는 서너 명 중 한 사람이다. 동아일보 정치부장 출신으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MB 캠프에 합류했다. 이후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홍보수석, 언론특별보좌관으로 일하다 2012년 총선에 출마하며 청와대를 나왔다. MB가 그의 빠른 판단과 정무 감각을 높이 사 MB 청와대에선 오랫동안 실세로 통했다.

최상연 논설위원 정리=이유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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