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다가도 대리주차하고 차 빼는데 수당 요구했다고 용역 전환이라니요"

김지혜 기자 입력 2017. 11. 2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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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준법투쟁’ 나선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원들

지난 20일 오후 10시20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한 입주민이 경비실 초소 문을 두드렸다. “오늘부터 키 못 맡기나요?” 아파트 주차장에 막 차를 대고 온 입주민이 자동차 열쇠를 들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초소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 ㄱ씨는 “네. 가지고 들어가세요. 오늘부터는 주차 관리 업무를 못해드려요”라고 답했다. 주민들의 자동차 열쇠를 보관하는 초소 내 열쇠함은 3분의 1 정도가 비어 있었다. ㄱ씨 가슴에는 ‘용역결사반대’라고 쓰인 노란색 리본이 붙어 있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원들은 경비운영방식을 직접 고용에서 용역업체를 통한 위탁 고용으로 전환하는 안건이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의결된 것에 반발해 지난 20일부터 ‘준법투쟁’에 나섰다. 24시간 2교대 근무에 평소처럼 임하되 경비업법에 따라 입주민 차량 주차와 우편물·택배 업무 등을 보지 않고 경비원 본연의 업무만 하겠다는 것이다. 21일 기준 경비원 총 99명 중 50여명이 동참하고 있다.

‘용역결사반대’ 리본을 달고 준법투쟁 중인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원. 김지혜 기자

현대아파트의 경비근무지침은 경비 업무를 세대 내·외부 도난방지, 무단출입자 단속, 화재예방 및 조기화재 진화·신고, 책임지역 내에서의 공동 재산의 보호 및 손상 시 신고 등으로 정하고 있다. 경비원들의 준법투쟁에 따라 일부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면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20여명의 주차관리 요원을 일시로 고용해 주차업무를 시키고 있다.

경비원들이 준법투쟁에 나선 것은 휴게시간 근무에 대한 수당 지급 문제에서 시작됐다. 전국아파트 노동조합연맹 서울지역 현대아파트 노동조합은 “경비원들이 휴게시간 동안의 근무에 대한 수당 지급을 요구하는 민원을 고용노동부에 제기하자 대표회의가 경비원 고용을 용역업체에 위탁 고용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29일 경비원 23명은 휴게시간 근무 수당을 지급하라는 민원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강남지청에 제출했다.

노조에 따르면 주차 공간이 부족한 현대아파트는 경비원들이 일종의 ‘발레파킹(대리주차)’을 하고 있다. 노조 측은 “입주민 대부분이 경비 초소에 차량 열쇠를 맡기고 있으며 경비원들은 입주민이 요청하는 즉시 주차된 차량들을 운전해 해당 입주민의 차를 빼내야 한다”고 말했다.

경비원 ㄴ씨는 “전체 업무 중 3분의 2가 차 빼는 일이다. 고용계약서에는 24시간 근무 중 6시간은 휴게시간을 보장하고 있지만 휴게시간에 초소에서 밥을 먹다가도 차를 빼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나가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ㄴ씨는 “항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경비들이 휴게시간에 대해 왜 문제가 있다고 했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셨나요. 경비원들과 대면하여 문제해결을 위하여 노력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용역으로 넘기면 된다는 식의 논리는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입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이에 대해 대표회의 측은 “발레파킹은 경비원들이 팁을 받고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근무 외 활동이며 단체협약 등 규정에 의한 휴게시간 역시 부여해왔다”고 반박했다. 이런 공방 와중에 대표회의는 지난 10월26일 경비운영방식을 위탁 운영으로 전환하는 안을 의결하고 지난 16일 공고문을 통해 밝혔다. 경비원들은 위탁 운영으로 전환되면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경비원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입주민들도 있다. ‘현대아파트를 사랑하고 오랜 기간 살아온 화난 주민들’이라고 밝힌 주민들은 아파트 게시판에 입장문을 붙여 “고생하시는 분들의 업무환경 개선 및 상생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없다고 더 좋은 방향으로 해결 못한다면 대표 자격이 없는 것 아닌지요”라고 밝혔다. ‘현대아파트 ○○동 주민인 12년 전 중학생’이라고 밝힌 또 다른 주민은 “12년 전 중학생인 저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켜주던 경비원 아저씨들이 지금 우리 아파트의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지켜주셨으면 좋겠다”는 게시물을 붙였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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