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예권 "확신 갖고 내 길 가야 청중에게도 음악 전달"

문학수 선임기자 2017. 11. 2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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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후 국내서 첫 리사이틀

MOC프로덕션 제공

“생계형 출전이었죠.” 2년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열여덟 살에 참가한 미국 플로리다 국제콩쿠르부터 7개의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어 ‘콩킹’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생활비로 쓸 상금이 필요해서 달렸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콩쿠르는 의미가 달랐다. 서른 살을 목전에 두고 “연주자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 이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참가한 그 콩쿠르”에서 그는 여덟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55년 역사를 지닌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이제는 이뤘구나!”라는 짧은 한마디로 함축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국내에서 첫 리사이틀을 연다. 12월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일 IBK챔버홀에서 연주한다. 17일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 18일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 25일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도 청중과 만난다. 반 클라이번 이후 국내에서 몇 차례 협연은 있었지만 자신만의 독주 무대는 처음이다. 당시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들을 이번 리사이틀에서 다시 선보인다는 점도 이채롭다. 선우예권을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는 밀려드는 연주 섭외 때문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년 연주회가 이미 100회 가까이 잡혔어요. 제안은 그 3배쯤 들어왔는데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건강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최상의 컨디션으로 청중과 만나야 하니까요. 사실은 지난주에도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어요. 스코틀랜드에서 두 차례 협연하고 다음날 뉴욕 가서 저녁에 또 연주하고, 그날 자정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와서 리허설하고….”

선우예권은 머리를 휘휘 저었다. 반 클라이번 우승 이후 당연한 현상이다. 이제 그를 향한 국제적 주목도는 예전과 견주기 어렵다. ‘연주료는?’ 하고 슬쩍 물으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섯 배쯤 올랐다”며 하하 웃었다. 이 지점에서 잠시, 그를 둘러싼 ‘어떤 소문’ 하나가 떠올랐다. ‘우승 이후 선우예권이 미국의 명품 백화점에서 1만달러 쇼핑을 했다더라’는 소문의 진위를 물었다. 그는 또 웃었다. “그게, 제 돈을 쓴 게 아니고요. 반 클라이번 재단에서 콩쿠르 우승의 부상으로 니만 마커스 백화점에서 1만달러 쇼핑 기회를 줬어요. 연주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 사라는 거죠. 연주복, 구두, 벨트 같은 것들요. 셔츠를 아주 많이 샀어요(웃음). 우승자에 대한 재단의 지원이 세심하더라고요.”

말끝에 그는 “저는 흥청망청 산 적이 없다”며 농담 섞어 항변했다. 우승상금 5만달러도 세금 제하고 “어머니에게 절반을 드렸다”고 했다. 누가 보더라도 ‘효자’다. “우승 이후 행복한 일 가운데 하나가 어머니에게 매달 생활비를 드리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전에는 저 혼자 살기에도 빠듯했는데”라는 뒷말은 왠지 가슴을 아릿하게 했다.

음악은 성품을 따라간다. 선우예권은 우물쭈물하거나 속마음을 감추는 스타일이 아니다. 연주도 그렇다. 이제껏 그의 음악에 대한 해외 언론의 호평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적확한 평가를 내놓은 곳은 ‘뉴욕타임스’였다. 문장은 아주 단순하다. ‘그의 연주는 명료하고 에너지 넘치며 황홀하다’는 것이다. 그렇듯이 선우예권의 피아니즘은 확신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쪽을 지향한다. 물론 이와는 다른 해석과 스타일을 보여주는 연주자들도 있다. 어느 곡이든 척척 연주해내지만 연주자의 확고한 목소리가 약하게 들려오는 경우도 있다. 선우예권은 “내가 확신을 갖고 연주해야 청중에게도 음악이 전달된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해 스스로 불확실하거나 의심을 갖고 있으면 듣는 분들한테 전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제 연주에 대한 평가에도 혹하거나 그 반대로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죠. 얼마 전 ‘시카고트리뷴’에서 과분한 극찬이 나왔더라고요. 한데 그 이틀 후에 정반대의 의견이 나오기도 했거든요.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합니다. 연주자는 ‘내 길’을 가야 하니까요.”

이런 연주자는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음악에서 특별한 장점과 매력을 뿜어내는 경우가 많다. 선우예권은 “지금의 나는 슈베르트,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에 혼연일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에도 이 세 음악가들의 곡이 당연히 포함됐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슈베르트의 소나타 19번 c단조 D.958,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2번 b플랫단조를 연주한다. IBK챔버홀에서는 하이든의 소나타 C장조(Hob. XVI 48),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6번 A장조, 베토벤의 소나타 30번 E장조를 연주한다. 라벨의 ‘라 발스’는 이틀 모두 마지막 곡으로 연주될 예정이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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