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20년 한국 경제 현주소] '이자 장사'만 열올린 은행들.. 가계대출 '또 다른 뇌관'

백소용 2017. 11. 2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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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금융 선진화 명암/외환위기 때 줄폐업 겪었던 은행권/ 여신심사 강화.. 건전성 높아졌지만/ 해외시장 개척 등 먹거리 발굴 뒷전/ 2년새 가계빚 연평균 129조원 늘어/ 금리 1.5% 오르면 6만 가구 '고위험'/"쉬운 영업 안주.. 사회적 책임 등한시"

외환위기 이후 수익성이 악화해 줄폐업 사태를 겪은 은행들은 양적·질적 측면에서 모두 20년 전보다 한 단계 도약했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성장한 은행들이 새로운 시장개척 대신 가계대출과 부동산대출 등 손쉬운 영업에만 안주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은행들이 가계대출에 집중하면서 급등한 가계부채비율은 한국 경제의 또 다른 뇌관이 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 건전성 강화

2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시중은행은 절반가량이 문을 닫거나 구조조정이 되는 충격을 겪었다. 대기업 대출에 집중하다가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기업과 함께 부실에 빠졌기 때문이다.

외환위기가 한창인 1998년 6월 금융감독위원회는 동남은행을 비롯해 경기·대동·동화·충청은행의 퇴출을 발표했다. 환란 당시 문을 닫은 동남은행 창구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당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8%)을 충족하지 못한 12곳 중 동남·동화·충청·경기·대동은행 5곳이 퇴출당했고, 33개 은행 중 16곳이 구조조정됐다. 정부는 금융기관 회생을 위해 168조7000억원의 공적자금까지 투입했다. 

도산 위기를 겪은 은행들은 예금과 대출을 늘리는 규모 위주의 경영에서 질적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여신 심사를 할 때 위험도 심사와 관리체계가 강화됐고, 선진국의 은행 경영기법도 도입됐다. 이는 20년 전과 비교해 은행의 외형적 성장과 건전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1997년 말 7.04%에서 올해 6월 15.37%로 상승했다. 은행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6월 6.68%로 전년 동기 대비 1.28%포인트 올라갔다. 기업대출의 관리능력도 월등해져 기업대출 연체율은 1997년 말 7.3%에서 6월 0.63% 수준으로 떨어졌다.

박재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와 같이 일부 정치권의 압력이나 행장의 독단에 의해 여신을 하던 관행이 해소되고 여신 관련 리스크 개념이 명확히 각인돼 여신 리스크 심사·관리체계가 강화되고 투명해졌다”며 “행장 선임 시 정부 입김이 절대적이었는데, 절차를 거쳐서 뽑도록 하고 이사회 중심의 경영이 정착돼 지배구조도 크게 변화했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등 쉬운 영업에 안주

은행의 건전성에 큰 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외국 선진 금융회사에 비해서는 실적이 초라하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자산을 운용했는지를 보는 척도인 평균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62%에 그쳐 지난해 글로벌 100대 은행의 평균 ROA(0.85%)에 못 미친다. ROE도 아시아 주요 은행의 절반에 불과하다. 

올 들어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은행들이 예대금리차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은행이 대부업체와 다름없이 고금리 ‘대출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은행들이 해외사업 개척 등 이익구조 다변화 전략을 짜지 못하고 가계대출 등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분야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 7월 취임 직후 “외환위기 이후 혁신 중소기업 등 생산적 분야보다 가계대출, 부동산금융 등으로 자금 쏠림현상이 더욱 심화됐다”며 “스스로 위험에 대한 선별기능을 키우기보다는 가계대출 등 익숙한 분야로 ‘손쉬운 영업’에 안주하는 경향이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 총대출 중 가계대출 비중은 1998년 27.7%에서 지난해 43.4%까지 올라갔다. 반대로 기업대출 비중은 떨어졌고, 그나마 부도가 발생하더라도 원리금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는 담보나 보증 위주의 여신이 대부분이다. 연대보증 관행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회사는 돈을 받아서 필요한 이들에게 잘 공급해야 하는 사회적 사명이 있다”며 “과도하게 국내시장, 예대 업무에 치중한 이익구조는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어나는 가계부채 위기 차단해야

저성장 기조 속에서 지속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외환위기 전 가계부채 규모는 211조2000억원에 불과했지만 올해 6월에는 1388조2914억원으로 불어났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가계부채는 연평균 129조원 증가해 과거 추세의 2배를 넘을 정도로 빨라졌다.

앞으로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취약차주의 이자부담이 커질 경우 가계부채발 위기가 찾아올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DSR)이 40%를 넘고, 자산평가액 대비 총부채 비율(DTA)도 100%를 넘는 고위험가구는 지난해 기준 31만5000가구다. 대출금리가 1.5% 오를 경우 고위험가구는 6만가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최근 한국은행이 국내외 금융기관 관계자 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금융시스템 리스크 요인’에서도 가장 많은 응답자(35%)가 가계부채 문제를 지적했다. 이는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28%),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인상 등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24%), 부동산시장 불확실성(3%)보다 높은 것이다.

구용욱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장은 “20년 전에는 유동성 위기였다면 앞으로는 부채관리가 잘 안 되면 10년 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같은 부채위기 형태로 위기가 올 수 있다”며 “특히 저성장 기조에서 큰 위험으로 번질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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