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일·집안일 쉴 틈 없이 일하지만 '여자 어촌계장'은 꿈도 못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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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에서 남편과 함께 고기잡이와 맨손어업을 하는 임아무개(55)씨는 쉴 틈이 없다.
충남 당진에서 낚싯배와 굴 양식을 하는 권아무개(56)씨도 남편과 함께 바닷일을 한다.
당진에서 33년째 배를 타고 맨손어업도 하는 홍아무개(57)씨는 "(자녀를 키울 때) 바다에 나가 온종일 아기를 업고 일했다. 요즘도 섬 등 어촌에 사는 여자들은 그렇게 일을 하는데 대부분 다문화 여성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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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소득의 절반 이상 기여' 불구 지위는 남존여비
[한겨레]
충남 태안에서 남편과 함께 고기잡이와 맨손어업을 하는 임아무개(55)씨는 쉴 틈이 없다. 성수기 조업 때는 오후 4시에 배를 타고 나가 다음날 새벽 4시에 육지로 나온다. 위판장에 가 고기 무게를 달고 와도 쉴 수가 없다. 400평 밭일이 임씨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뱃일뿐 아니라 주꾸미에 바지락까지 맨손어업도 한다. 남편은 맨손어업이나 농사일을 돕진 않는다.
충남 당진에서 낚싯배와 굴 양식을 하는 권아무개(56)씨도 남편과 함께 바닷일을 한다. 그러나 고기잡이 설거지와 집안일은 오롯이 권씨 몫이다. 바지락·굴을 캐고 까는 일도 거의 다 ‘아내’ 차지다. 권씨는 남편보다 곱으로 일을 많이 한다고 여기지만 재산은 대부분 남편 이름으로 돼 있다. 다른 집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낙들은 남편 못지않게 경제 활동을 하지만 ‘여성 어촌계장’은 꿈도 못 꾼다. 마을에서 조금 목소리를 낸다 싶으면 “네 아내 억세다”는 말이 금세 돌아 남편부터 질색한다.
‘성 불평등’한 환경에서 바닷일을 하는 여성 어업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충남여성정책개발원은 20일 ‘충청남도 여성 어업인 실태와 특성 보고서’를 펴냈다. 개발원은 지난 4∼6월 충남 보령·아산·당진·서천·홍성·태안 등 6개 시·군에 사는 여성 어업인 3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하고, 이 가운데 20명을 뽑아 심층면접을 했다.
설문조사 결과, 여성 어업인의 36.8%가 조업(어선 어업)에 직접 참여했고, 맨손어업(42.1%)으로도 돈을 벌었다. 본인이 가구 소득의 절반 이상을 번다는 응답자는 61%에 달했다. 충남 지역의 여성 어업인들은 어업 이외에도 농작물 재배·판매(59.8%), 자영업(21.8%), 아르바이트(15.1%), 어촌 관광사업 14.5% 등의 소득 활동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9.71시간을 일하고 어업인으로서 자부심도 5점 만점에 평균 3.26점으로 높았지만, 대부분 여성 어업인은 ‘지위는 남성보다 낮다’고 응답(90%)했다. 당진 김아무개(47)씨는 “남자보다 여자가 30% 정도 더 일한다. 나는 바닷일 다녀오고, 가게(직접 잡은 수산물을 파는 횟집)를 운영하고, 집에 가서 또 집안일은 하는 일상을 매일 반복한다”고 밝혔다.
심층면접 분석 결과 어촌계, 수협 등 어촌 사회는 남성중심으로 꾸려졌고, 여성 어업인의 관련 단체 활동은 활발하지 않았다. 태안 임아무개(55)씨는 “어촌계 회의 때 낄 수가 없다. 도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협상할 때도 여자들은 못 따라갔다. 여자가 어촌계장이 되는 건 생각도 못 한다. 어촌계는 남자들이 주도한다. 지금 주로 남자들 중심으로 돼 있는데, 여자들이 좀 더 참여할 수 있는 제도 방안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층면접에 참여한 많은 여성 어업인은 보육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자녀를 그대로 노출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일을 괴로워했다.
당진에서 33년째 배를 타고 맨손어업도 하는 홍아무개(57)씨는 “(자녀를 키울 때) 바다에 나가 온종일 아기를 업고 일했다. 요즘도 섬 등 어촌에 사는 여자들은 그렇게 일을 하는데 대부분 다문화 여성이다”라고 말했다.
임우연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연구는 여성 어업인의 경제적 권한, 노동가치, 대표성, 역량 강화, 조업환경에서 불평등 요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성 어업인의 경제적·사회적 위상은 여전히 낮고 남성 어업인의 보조자로 인식되며 부업과 돌봄·집안일을 병행해 노동시간이 길었다. 이런 실태가 정책에 반영돼 여성 어업인의 성장과 함께 전체 어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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