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120돌]②독립문 현판은 정말 매국노 이완용이 쓴걸까?

이현우 입력 2017. 11. 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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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의 가장 큰 '옥의 티'로 불리는 것이 바로 독립문 현판이다.

이 현판 글씨는 친일 매국노의 거두인 이완용이 쓴 것으로 알려지면서 편액을 바꿔야한다는 주장도 수없이 나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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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뒷면의 한자 현판. 정면의 한글 현판과 함께 모두 매국노 이완용이 썼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치 않으며 여전히 현판의 주인을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사진=국가보훈처 블로그)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독립문의 가장 큰 '옥의 티'로 불리는 것이 바로 독립문 현판이다. 이 현판 글씨는 친일 매국노의 거두인 이완용이 쓴 것으로 알려지면서 편액을 바꿔야한다는 주장도 수없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진짜 이완용이 쓴 글이 맞는지 여부는 여전히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독립문 편액을 이완용이 썼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동아일보 1924년 7월15일자에 나온 '내 동리 명물(名物)-교북동 독립문(橋北洞 獨立門)'이란 기사에 나온 것인데, 여기에는 "(중략)...독립문이란 세글자는 이완용이가 쓴 것이랍니다. 이완용은 다른 이완용이 아니라 조선귀족 영수 후작 각하올시다...(후략)"라고 나와있다. 이 기사는 지금으로 치면 '우리 동네 명물'이란 연재물에 실린 글로 당시 독립문 근처에 살던 주민의 설명이 들어있는 글이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 정확히 이완용이 이 현판의 주인공인지 판별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독립문 설립 당시 외부대신 겸 독립협회 초대 위원장으로 독립문 건립에 깊이 개입했던 이완용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이완용이 현판의 주인공이란 이야기가 나오게 된 이유는 실제 독립문 건립에 이완용이 깊게 관여했었기 때문이다. 이완용은 독립협회 창립 멤버로 독립문 건립에 앞장섰고, 건립자금으로 당시로서는 꽤 큰 돈인 100원을 기부했다. 건립기념식 성격의 정초식(定礎式)에는 외부대신이자 독립협회 위원장 자격으로 나와 연설까지 했다. 당시 그의 연설은 훗날 매국노 이완용의 행보로 봐서는 상상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조선이 독립을 하면 미국처럼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며 만일 조선 인민이 단결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거나 해치려고 하면 구라파의 폴란드라는 나라처럼 남의 종이 될 것이다. 세계사에서 두 본보기가 있는데, 미국처럼 세계 제일의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나 폴란드 같이 망하는 것 모두가 사람 하기에 달려 있다"

사실 이완용은 이때까지만해도 친일파가 아니라 친미파였고, 독립협회 활동에도 상당히 깊숙이 개입했으며 독립신문 역시 이완용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기사를 썼다. 친미파인 이완용이 1897년 7월, 친러파의 압력으로 외부대신에서 학부대신으로, 뒤이어 9월에는 평안도 관찰사로 중앙에서 쫓겨나자 독립신문은 그의 좌천을 두고 상당히 두둔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그를 두고 대한제국의 몇 안되는 뛰어난 재상으로 치켜세워주기도 했다. 이완용 개인도 훗날 친일파로 돌아서서도 끝까지 일본어를 배우진 않았으며 이토 히로부미와도 서로 영어로 대화했다고 알려져있다. 이런 정황으로 봐서, 당시 독립문 현판을 이완용이 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독립문 현판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동농 김가진 선생의 모습. 김가진 선생은 독립협회 창립멤버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 명필로 1903년, 창덕궁 후원의 주요 편액글씨를 모두 맡아 쓴 적이 있어 독립문 현판의 주인공으로 추정되고 있다.(사진=위키피디아)


하지만 글씨체가 이완용의 글씨체와 다르다는 주장이 많기 때문에 글씨의 주인을 놓고 이론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 글씨가 이완용의 글씨가 아니라 구한말 독립운동가인 동농 김가진(金嘉鎭) 선생의 글이란 주장도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김 선생도 독립협회의 창립멤버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선생의 가문에서는 독립문 현판 작성자가 김 선생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당대 명필로 소문났던 김 선생이 1903년, 창덕궁 후원의 편액 글씨도 모두 맡아 쓴 적이 있는데 이 필체와 독립문 필체가 비슷하다는 것이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누가 썼다는 정확한 기록이 없는 상태라 건립 120주년을 맞은 오늘날까지도 의문으로 남게 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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