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 화려한 독주보다 완성된 협주
기량 과시하는 대신 음악 전체의 균형 고려
오케스트라가 빛나도록 절제하는 협연자 재능 보여줘
20세기에 작곡된, 강렬하고 화려한 협주곡이지만 조성진은 끝까지 튀어나오거나 폭발하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의 강력하고 쭉 뻗는 사운드에 비해 조성진의 피아노는 부드럽고 가벼웠다. 피아노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묻힐 때도 있었다. 1악장과 함께 빠른 템포인 3악장에서도 그랬다. 기교적이고 화려한 부분에서 조성진은 오히려 숨을 고르며 표현했다.
느리고 서정적인 2악장에서 조성진이 그렇게 한 이유가 더 분명히 보였다. 2악장은 오케스트라 없이 피아노 혼자 긴 솔로로 음악을 시작한다. 느린 3박의 왈츠에서 조성진은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도록 음악을 끌고 나가며 노래를 했다. 긴 독주 이후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받아 끌고 나간다. 조성진은 피아노 연주의 끝자락을 물고 들어오는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 연주자를 차례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이후 목관악기들이 노래할 때 조성진은 그들을 충실히 뒷받침했다. 화려한 독주자라기보다 마치 음악에 봉사하는 피아노 반주자처럼 보였다. 조성진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협주자의 모습이 드러나는 악장이었다.
그만큼 조성진에게 베를린필과의 협연은 중요한 만큼 쉽지 않은 무대였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그간 쌓아온 모든 기량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쓰지 않았다. 조성진은 독주자보다 협연자로서, 작품 하나를 같이 만들어가는 음악적 동료로서 오케스트라에 믿음을 줬다.
19일 공연에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래틀은 조성진을 두고 "조용하고 내적인 연주를 하는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했다. 래틀과 베를린필, 조성진은 이달 4일 베를린에서 시작해 프랑크푸르트, 홍콩에서 라벨 협주곡 연주를 마쳤고 19일 서울 공연은 투어의 마지막이었다. 조성진은 "서울 연주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조성진이 라벨 협주곡 안에서 오케스트라를 대한 태도, 음악 전체를 보는 넓은 시각 등으로 미뤄봤을 때 조성진과 베를린필의 협연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베를린필은 2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협연자 없이 공연을 한 번 더 한다. 내년 베를린필을 떠나 런던심포니로 옮기는 지휘자 래틀과의 마지막 한국 공연이다. 조성진은 내년 1월 부산(7일)·서울(10,11일)·전주(13일)·대전(14일)에서 전국 순회 리사이틀을 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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