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조작 엄벌은 마땅..환경부의 '변경 인증' 과징금은 지나쳐"

김준 선임기자 2017. 11.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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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인증 강화’ 자동차업계 표정

2015년 10월 인천시 서구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에서 검사관들이 폭스바겐이 제조한 아우디 A3 차량의 배출가스 인증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자동차 인증 관련 법규가 강화되면서 국내 완성차와 수입차 업체를 ‘미래의 범법자’로 내몰고 있다는 업계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일부 수입차 업체처럼 인증 서류를 조작해 정부와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는 엄벌에 처해 마땅하지만, 단순 부품 변경과 관련한 신고 미이행을 인증 서류 조작과 같은 행위로 보고, 수백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특히 오는 12월 말부터 인증 미이행 관련 과징금이 최대 1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늘어나 중소 부품업체는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유해가스 줄여도 다시 인증받아야

대기환경보전법 제48조 2항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업체나 수입차 업체는 자동차 제작에 사용되는 배출가스 관련 부품이 바뀌면 ‘변경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부품이 어떻게 변경될 때 변경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부품 변경 범위의 구체적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배출가스와 관련 없는 색상이나 부품번호만 바뀌어도 반드시 변경 인증을 받아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19일 “부품 업체가 성능 개선을 위해 배출가스 관련 부품의 도금 종류를 바꾸거나 제품 사이즈를 미미하게 변경할 때 완성차 업체에 통보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개선 작업을 통해 유해 배출가스 양이 줄어도 완성차 업체가 그 사실을 통보받지 못해 변경 인증을 누락하면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기환경보전법 제67조는 환경부 장관이 고시한 배출가스 관련 부품이 아니어도 부품 변경 시 환경부 장관이나 국립환경과학원장(수입차의 경우)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장관이 고시하지 않은 부품도 유해가스 배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유사하게 관리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규정인데, 해석하기에 따라 배출가스에 영향을 미치는 부품 수가 수백가지로 늘어날 수도 있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시트는 법규가 정한 배출가스 관련 부품은 아니지만 마사지 기능이나 통풍 기능이 추가되면 무게가 늘어나고 이럴 경우 배출가스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보고 대상이 될 수도 있다”면서 “자동차는 3만개가량 부품으로 만들어지는데, 이처럼 부품이 바뀔 때마다 일일이 정부 인증 담당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본사가 한국에 있는 현대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는 변경 인증에 상대적으로 쉽게 대응할 수 있지만, 본사가 유럽 등에 있는 수입차 업체는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도 수입차 업계의 불만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유럽에는 이런 방식의 변경 인증 제도가 아예 없고, 미국도 1년에 한 번씩 그 해 바뀐 부품을 한꺼번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변경 인증을 받으려면 유럽이나 미국 본사에서 다시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한국의 사정을 모르는 외국 본사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 부품업체 도산 우려되는 과징금 폭탄

‘폭탄’ 수준으로 높아진 과징금도 문제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 제56조는 인증 위반 업체에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다만 업체에 과중한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과징금 금액이 100억원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BMW 스포츠유틸리티차량 X6 개별 모델이 인증 관련 법규를 위반할 경우 동일 모델 전체 판매금액의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되 최대 100억원까지만 부과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과징금 규정이 개정돼 다음달부터는 과징금 부과율이 매출액의 5%로 상향되고, 과징금도 차종당 최대 500억원으로 높아진다.

특히 변경 인증을 하려면 수십에서 수백쪽에 이르는 차량의 기술 데이터를 환경부 인증 프로그램에 직접 입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오기가 발생할 수 있는데, 실제 차량의 배출가스는 기준치를 만족해도 ‘거짓 신고’로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

이처럼 상향된 과징금은 전체 판매량과 개별 차량 모델당 매출이 많은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대차 그랜저의 경우 매달 1만대 안팎이 팔리는데 평균가격을 3000만원으로 잡으면 전체 판매금액은 3000억원가량 된다. 부품 변경으로 배출가스는 개선됐지만, 앞서처럼 사소한 행정 착오로 변경 인증을 한 달만 누락해도 150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되는 것이다.

완성차 업체뿐만이 아니다. 변경 인증 누락 사유가 부품업체에 있을 경우 부품업체가 아예 도산할 수도 있다. 현대모비스를 제외하면 국내 부품업체 대부분이 중소기업이어서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맞고도 기업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업체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증 서류를 변조하거나 조작하는 부정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과 과징금 부과가 타당하다”면서도 “배출가스에 영향이 없는 관련 부품의 교체나 단순 오기는 과징금 최대 금액을 지금처럼 100억원으로 유지하거나 다른 법률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과태료 부과로 제도가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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