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선의의 경제적 결과

강기택 경제부장 2017. 11. 20.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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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의지가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그 현황판을 채우는 숫자들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모든 공공기관과 공기업에서 일어날 일의 서막인 것이다.

'구조'를 그대로 두고 정치적 프레임과 그럴듯한 작명법으로 돌파하려고 해본들 일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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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의지가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프레임이 아름답다고 사실(fact)이 아름답지는 않다.

취임식에서 일자리를 가장 먼저 챙기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는 평가받아야 한다. 일자리 현황판이 개발독재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건 ‘상상력 빈곤’에 따른 것일 뿐 일자리 창출에 일로매진하겠다는 ‘상징으로서 가치’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그 현황판을 채우는 숫자들이다. 지난달 취업자수는 8월에 이어 또다시 30만명을 밑돌았다. 청년실업률은 8.6%로 10월 기준으론 1999년 이후 최고치였다. 인구와 추석이 원인으로 제시됐지만 그게 면피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 어느 정부든 각각의 사정이 다 있었고 집권여당도 야당 시절 그런 설명 따윈 귀담아듣지 않았다.

새 정부의 정책이 아직 제도화하지 않았다고 하고 싶겠지만 제도화한다고 해서 나아질 게 없어 더 걱정이다. 정부가 내건 몇몇 프레임과 작명법의 결말은 이대로 가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비정규직 제로’ 프레임이다. ‘비정규직 비중’이 현황판의 한 편을 차지하지만 안타깝게도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인천국제공항공사조차 ‘연내 1만명 정규직화’ 약속은 실현 불가능하다.

몇 명을 정규직으로 바꿀지를 놓고 컨설팅을 맡은 기관의 의견은 854명 대 최소 3221명으로 좁힐 수 없는 차이를 보였다. 정규직 노조는 “시험 쳐서 들어오라”며 ‘형평성’과 ‘공정’의 기치를 들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데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모든 공공기관과 공기업에서 일어날 일의 서막인 것이다. 그나마 공공부문은 정부가 경영평가 때 당근과 채찍 조항을 둬 정규직 전환을 독려할 수 있겠지만 ‘5년’만이 아니라 ‘5년 뒤’ 임금도 생각하는 민간기업들은 ‘비정규직 제로=전원 정규직’ 등식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민간부문의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지키는 일조차 힘겨울 것이다. 이런 상황은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정부와 여당을 겨누는 칼날이 될 수 있다. 그때까지 두드러지는 성과가 없으면 스스로 만든 ‘비정규직 제로’ 프레임에 갇혀 전방위적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최저임금 역시 마찬가지다. 16.4%의 인상폭을 감당키 힘든 곳부터 ‘일자리’를 줄이는 조짐이 나타난다.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했다는 ‘서울지역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처우개선 추진위원회’가 밝힌 대로 최저임금 인상으로 전국 경비원 1만여명이 해고될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영세 사업장에 최저임금 인상분 9%를 보조금으로 주기로 했지만 이 역시 길어야 5년을 지속하기 힘들다. 최저임금 인상을 보전하기 위한 돈을 ‘일자리 안정자금’이라고 명명했지만 이 허튼 이름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중단하면? 일자리가 ‘불안정’해진다는 얘기가 되기에 그렇다. 계속하면? 재정이 ‘불건전’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자영업자 중 70%를 훌쩍 넘어선 ‘나 홀로 자영업자’가 더 늘어날 것이다. 종업원을 줄일수록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이들의 노동강도가 더 세지고, 근로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자리 문제의 상당부분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민간기업을 막론하고 개별적인 차원에서 풀 수 없는 구조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경직된 노동시장, 낮은 생산성, 정규직 과보호 등 상투적이나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고 ‘사’뿐만 아니라 ‘노’와 ‘정’도 함께 품을 들이고 짊을 져야 하는 것들이다.

‘구조’를 그대로 두고 정치적 프레임과 그럴듯한 작명법으로 돌파하려고 해본들 일은 되지 않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프레임은 사실을 이기지 못한다. 선의의 경제적 결과는 ‘독’일수도, ‘악’일 수도 있다.

강기택 경제부장 acek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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