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앙코르.. 래틀은 무대에 앉아 미소를 지었다

김경은 기자 2017. 11.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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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베를린 필 떠나는 래틀..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내한공연
작곡가 진은숙도 신작 참여.. 투어 함께한 조성진 "꿈같은 11월"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공연이 열린 19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사이먼 래틀(62)과 함께 피아니스트 조성진(23)이 등장하자 열광적인 박수가 터져나왔다. 베를린 필 단원들도 객석의 뜨거운 열기에 술렁거렸다. 1부에서 베를린 필하모닉과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조성진은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악기를 치는 속도와 세기를 주도면밀히 계산해 모든 악기가 말끔히 다듬어진 근육처럼 움직이는 오케스트라 위에 조성진의 건반은 싱그러운 빗방울처럼 생기를 불어넣었다. 서정적인 2악장 연주 직전 객석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19일 오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조성진이 앙코르로 드뷔시 '영상 1집'의 '물의 반영'을 치는 동안 래틀은 오케스트라 단원 뒷자리에 앉아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감았다. 노아 벤딕스 발글리와 다이신 카지모토 등 베를린 필의 두 악장을 비롯, 콧대 높기로 이름난 스타 단원들까지 스물셋 한국 피아니스트가 그려내는 음색에 몰입했다.

래틀과 악단이 주(主)요리로 선보인 브람스 교향곡 4번도 실황으로 들을 수 있는 최상급 연주였다. 마지막 음이 끝나는 순간, 홀은 숨 막힐 듯한 침묵에 휩싸였다. 래틀은 포디엄 위에 붙박인 채 천천히 지휘봉을 내렸다. 그의 손이 완전히 아래로 떨어지고 나서야 객석을 가득 채운 청중 2500명은 환호했다. 객석을 향해 환히 웃으며 인사한 래틀은 악장과 각 파트 수석들, 뒷자리의 관악주자들에게까지 일일이 다가가 손 내밀고 악수했다. 한마음으로 멋진 연주를 해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서로에게 건네는 칭찬이자 격려였다.

좌(左) 진은숙, 우(右) 조성진! 올해 최대 화제작으로 꼽힌 공연을 다섯 시간 앞두고 열린 간담회에서 래틀은 자신의 양옆에 앉은 두 한국 음악가를 가리키며 껄껄 웃었다. 그는 "지구상에 재능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는 많지만, '건반의 시인' 조성진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건 기쁘고도 감사한 일"이라 했다. 이번 투어를 위해 신작 '코로스 코르돈'을 작곡해준 진은숙(56)에 대해선 "다채로운 소리와 상상력이 끊임없이 나오는 보석함 같다"며 "헝가리 명(名)작곡가 리게티의 세계를 누가 이을까 궁금했는데, 그의 제자인 진은숙이 그보다 더 잘한다"고 극찬했다.

베를린필 아시아투어를 위해 신작‘코로스 코르돈’을 작곡한 진은숙(오른쪽).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2002년부터 세계 최고 교향악단으로 꼽히는 베를린 필을 이끌고 있는 래틀은 내년이면 이 악단을 떠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자리를 옮긴다. "매번 '무엇이 새로울까' 고민한다"는 래틀은 지난 16년간 매 시즌 새로운 현대음악을 초연하고, 악단의 공연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며 베를린 필에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투어가 특히 눈길 끄는 건, 래틀이 상임지휘자로서 이 악단과 손잡고 오는 마지막 연주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 전,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겼다. 당초 협연자로 예정돼 있던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이 왼팔 이상으로 연주를 포기하면서 차질이 생긴 것. 그때 구원투수처럼 등판한 연주자가 바로 조성진이다.

래틀은 "나의 오랜 친구이자 가장 아끼는 피아니스트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성진을 추천했다"며 "지메르만은 자신을 포함해 누구에게든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는 연주자인데, 그런 그가 성진을 칭찬하길래 어디가 아픈 줄 알았다"고 했다.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이번 공연에 앞서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홍콩에서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투어를 함께했던 조성진은 "꿈 같은 11월이었다. 오늘이 이 투어의 마지막 연주라서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베를린에서 첫 리허설하던 날, '내가 지금 DVD를 보고 있는 걸까' 생각했을 만큼 설레고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래틀과 베를린 필은 20일 오후 8시 같은 곳에서 '코로스 코르돈'과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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