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조원짜리 '피의 숙청' 빈살만, 사우디 왕위 계승 임박설

김성탁 입력 2017. 11. 20. 01:02 수정 2017. 11. 20.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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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언론선 이번주 승계 보도
'석유자원의 저주' 풀려는 빈살만
550조 신도시 구상 등 재원 필요
"자산 내놔라" 구금한 왕족들과 협상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도 상장 계획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국왕(오른쪽)과 아들 빈살만 왕세자의 모습이 담긴 건물. 영국 데일리 메일은 왕위 이양이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사진 사우디 문화부]
사우디아라비아의 32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이르면 이번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81) 국왕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을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살만 국왕이 퇴위하고 공식 실권을 빈살만 왕세자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왕실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지난 6월 왕세자이던 조카 무함마드 빈나예프를 전격 폐위하고, 그 자리에 아들 빈살만을 지명한 지 5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양위가 이뤄질 가능성이 무르익고 있다.

◆중동 사태 각본·주연 맡은 빈살만=빈살만은 최근 중동 상황과 관련해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 주인공의 역할을 모두 담당했다.

그는 국방장관을 맡은 2015년 예멘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은 반군의 세력을 줄이지 못한 채 민간인 희생자만 양산했다. 지난 6월엔 수니파 아랍 국가들과 손잡고 카타르 봉쇄를 주도했다. 이달 초 부패척결을 명분으로 왕족과 주요 기업인, 고위 관료 등 수백 명을 체포하는 사우디판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이란과 사우디의 완충지 역할을 해온 레바논의 사드 하라리 총리가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전격 사퇴를 선언한 사건의 배후도 빈살만으로 꼽혔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살만 국왕 부자가 사우디 지배구조의 근간인 형제간 왕위 승계를 종식시키고 부자간 왕위 계승을 원활하게 하려는 것과 관련돼 있다는 분석이다.

왕족 구금 등 빈살만 왕세자의 승부수가 성공하려면 대중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빈살만이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다. 빈살만은 우선 여성 운전을 허용하는 등 온건 이슬람 노선으로의 탈바꿈을 선언해 젊은층의 환호를 받았다. 사우디 인구의 70%인 30세 미만의 청년층은 사우디의 극단적인 이슬람 문화에 불만을 토로해왔다.

◆유가 하락 겹치며 재정적자 천정부지=경제적으로 사우디는 ‘석유 자원의 저주’를 겪고 있다. 산업 개발을 등한시하고 석유에만 의존하다보니 석유 부문이 사우디 예산 수입의 약 87%, 수출의 90%, 국내총생산(GDP)의 42%를 차지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30%에 육박했다. 국민들에겐 석유 수입으로 보조금을 지급했다. 여기에 유가 하락이 겹치면서 재정적자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빈살만은 경제구조의 수술을 내걸고 ‘비전2030’을 선보였다. 석유에 의존하던 경제구조를 다변화하고, 현재 40%인 민간기업의 기여도를 65%로 늘리는 내용이다. 서북부 홍해 인근 사막과 산악지대에 서울의 44배 넓이에 해당하는 미래형 신도시 ‘네옴’(NEOM)을 건설하겠다는 프로젝트도 발표했다. 투입되는 돈만 약 5000억 달러(약 550조원)다. 이 도시에는 석유 대신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가 공급된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투자 재원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7%에 달하는 실정이다.

빈살만은 막대한 부를 거머쥔 왕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하지만 대다수가 네옴 건설 등에 “꿈 같은 얘기”라며 비협조적이었다. 오히려 자산을 해외로 옮기는 게 포착됐다. 그러자 빈살만은 부패 혐의로 왕족과 기업인 등을 체포한 뒤 보유 재산 상당 부분을 헌납받는 조건으로 석방해주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파이낸셜타임스(FT)의 분석이다.

◆알왈리드 등에게 재산 70% 헌납 강요=사우디 당국은 아랍 최대 부호로 자산 규모가 20조원에 달하는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 등에게 재산의 약 70%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FT는 전했다. 앞서 사우디 검찰총장은 구금된 이들의 부패 규모가 최소 1000억 달러(약 109조7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부패척결을 통해 최고 3000억 달러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려한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이 왕족들의 유폐 장소로 바뀐 데는 반대파 견제와 함께 강제 납세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중동 질서의 한 축인 사우디의 정정 불안은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빈살만의 노림수와 무관치 않다. 빈살만은 비전2030 실행을 위해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를 내년에 사우디와 해외증시에 동반 상장하고, 지분의 최대 5%를 매각할 계획이다. 빈살만으로선 아람코를 최대한 비싸게 매각하려면 유가 상승이 필요하다.

현재 유가는 배럴당 60달러선을 넘나들면서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FT에 따르면 금융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까지 유가가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빈살만이 다른 산유국들과 감산에 합의하면서 고유가를 유지하려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과격 행보에 서방 우려 커져=하지만 서방은 빈살만의 개혁 드라이브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과격성 때문에 사우디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게 아니라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빈살만이 왕족 등을 체포해 구금하는 과정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 재임 중 내무부 장관을 지낸 하비브 알 아들리의 조언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들리는 재임 중 고문과 납치 등 인권탄압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일부 왕족 체포 과정에선 폭력도 있었다. 블룸버그는 “대개 부패가 줄면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지만, 합법 절차를 따르지 않고 왕족들을 체포하는 빈살만의 모습에 ‘다음은 내가 될 수 있다’고 느끼는 외국계 투자자도 많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빈살만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손잡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지그마이어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이 “사우디가 레바논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고 비판하자 베를린 주재 자국 대사를 사우디로 소환하는 등 서방과 마찰도 빚고 있다.

NYT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빈살만에 우호적인 것과 달리 미 국무부나 국방부,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들은 빈살만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 결국 미국에 손해를 끼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소개했다.

■ 빈살만 관련 사우디에선 무슨 일이

「 ● 1985년 8월 : 빈살만 출생 ● 2009년 12월 : 컨설턴트로 일하다 정계 입문 ● 2015년 1월 : 살만 왕 왕위 계승, 빈살만을 국방장관에 임명, 왕실재판소 사무총장, 국무장관도 겸임 ● 3월 : 이란 지원받는 예멘 후티 반군 상대 전쟁 시작 ● 2016년 4월 : 사우디 경제구조 개혁 내건 ‘비전 2030’ 발표 ● 2017년 6월 : 살만 왕, 빈나예프 왕세자 폐위, 빈살만을 왕세자 책봉 ● 9월 : 여성 운전 허용 ● 11월 4일 : 빈살만 위원장으로 반부패위원회 신설 왕자 최소 11명, 전·현직 장관 등 수백 명 체포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 사우디서 사퇴 선언 ● 16일 : 영국 매체 “빈살만 왕세자 곧 왕위 계승” 」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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