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포항 강진 여파]"언제까지.." 지쳐가는 이재민들

백승목·백경열 기자 입력 2017.11.19. 23:03 수정 2017.11.2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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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르포 ‘지진 피해 현장’을 가다
ㆍ잇단 여진·한파에 피로감 누적기약 없는 대피소 생활도 ‘불편’
ㆍ“파손 건물 안전진단 빨리 해줘야 돌아가든 더 머물든 하죠”

대피소 이사 19일 오전 경북 포항 흥해실내체육관에 대피해 있던 지진 피해 이재민들이 대피소를 옮기기 위해 줄 지어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재민들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체육관에 칸막이 설치 공사를 하는 동안 흥해공고 등에 분산 수용됐다. 연합뉴스

“언제까지 이런 피난생활을 해야 하는 건지…. 칼바람 불어 잠도 못 자고, 지진은 또 계속되고, 막막하네요.”

지진 발생 5일째를 맞은 19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새 대피소인 흥해공고 체육관은 이재민들로 가득 찼다. 박모씨(66·흥해읍 대성리)는 “아들이 너무 멀리 살고 있어서 지진이 일어난 뒤 이웃을 따라 흥해체육관에서 머물다 오늘 아침 이곳으로 옮겼다”면서 “몸이 쑤시고 아파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힘없이 말했다.

이날 강추위 속에 흥해체육관에 머물던 이재민 800여명은 짐 보따리를 들고 포항시가 제공한 2대의 셔틀버스에 타거나 걸어서 새 대피소로 옮겼다. 포항시는 이재민들의 생활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흥해공고와 흥해남산초등학교 등 두 곳으로 이재민들을 분산 수용했다. 흥해체육관은 공간에 비해 이재민이 너무 많아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고 위생 청결도 유지할 수 없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앞서 포항시내 대도중·환호여중·항도초 등에 대피해 있던 주민들도 이들 학교의 수업 재개로 18일부터 순차적으로 교회와 경로당 등으로 이사했다.

개별 칸막이 세운 대피소 19일 경북 포항시 북구 ‘기쁨의교회’에 마련된 지진 피해 이재민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대피소에 이재민들의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도록 개별 텐트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저녁 규모 2.6의 여진이 발생한 이후 18일에는 단 한 차례의 여진도 일어나지 않아 잠시 안도했던 이재민들은 19일 규모 2.0~2.4의 여진이 계속 잇따르면서 지진공포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여진이 이날 오전 1시부터 6시까지 1~2시간 간격으로 이어지면서 이재민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수시로 비명을 지르거나 대피소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60대 여성은 “이제는 여진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계속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고, 아주 작은 진동에도 놀란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불안을 반영하듯 지난 18일 1000여명까지 줄어들었던 이재민이 이날 1300여명으로 다시 늘었다.

■ 장기화로 환자 속출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성리에서 가족 4명이 17평짜리 서민아파트에 살고 있는 정모씨(52)는 “지진 후 이틀 정도 포항시내에 있는 친지 집에서 신세를 졌는데, 더 머물기가 미안해 대피소로 왔다”고 말했다. 이어 “딱히 오갈 데가 없어서 집이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까지는 불편하더라도 대피소에 있으려고 하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큰 병을 앓을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날 포항의 최저기온이 영하 1~3도를 기록한 데다 한낮에도 7~8도에 머무는 등 한겨울 날씨를 보이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재민들을 더욱 위축시켰다. 포항시재난대책본부는 이날 각 대피소 바닥에 방한 매트를 깔고 텐트를 설치하는 공사를 벌였다. 텐트를 설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칸막이를 쳐 최대한 한기를 막고 사생활을 보호키로 했다. 비워진 흥해체육관에는 장기 대피자들이 가족 단위로 머물 수 있도록 텐트 300개가 설치된다. 이르면 21일부터 이재민들이 다시 수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민들의 대피생활 여건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장기화되면서 이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각 대피소 한쪽에 자리 잡은 의료봉사단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거의 50~60대 이상이거나 어린아이들이었다. 대부분 추위로 감기몸살을 앓거나, 지진 트라우마로 인한 불면증·가슴 떨림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포항 ‘기쁨의교회’에서 의료봉사 중인 에스포항병원 권흠대 병원장은 “평소 지진 안전지대라는 믿음이 깨지고, 강진에 이어 여진이 계속 잇따르면서 받은 충격과 오랜 대피생활의 피로감 등이 각종 질환으로 이어진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진단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지진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대피 주민들에 대한 심리상담도 진행됐다. 포항북구보건소 관계자는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재민을 상대로 심리상담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대피자들에게 ‘나 혼자 겪은 것이 아닌 만큼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것도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 파손된 집 못 떠나는 주민들

각 대피소의 이재민들은 이날부터 포항시가 이름과 연락처를 확인한 뒤 지급한 ‘수용자 명찰’을 달고 있었다. 지금까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수용’을 하다보니 이재민 관리가 어려웠다. 포항시는 또 건물이 기울어진 흥해읍 대성아파트 입주민들을 비롯해 돌아갈 집이 없는 주민들을 장기 대피자로, 이 외의 주민들은 임시 대피자로 분류해 관리할 예정이다. 하지만 장·단기 대피자 분류작업 자체가 잘 안되고 있어 대피소의 ‘무작정 수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민 최모씨(57·흥해읍 마산리)는 “자리를 놓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려고 다투는 모습도 종종 보여 참 슬프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백강훈 포항시의원(53·흥해읍)은 “수백명이 분야별로 건축물의 안전진단을 하고 있는데, 파손된 3300여채 민간 건물의 경우 집에 돌아가도 되는지 안되는지에 대한 진단 결과가 매우 더디게 나온다”면서 “이게 먼저 이뤄지지 않으니 대피자들을 장·단기로 분류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흥해읍 매산리에 사는 김태연씨(69)는 지진 발생 직후인 지난 15일 119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임시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이튿날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 이호덕씨(79)가 10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하체를 쓸 수 없다 보니 임시 대피소 생활이 더 이상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김씨는 “집이 무너지더라도 남편과 집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장 난방이 걱정이다. 지진으로 집 안팎 벽에 금이 가고 일부는 무너져 내렸다. 특히 보일러실 외벽이 모두 무너져 보일러 기계가 찬 바람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연료가 거의 없어 당장이라도 보충을 해야 하지만, 혹시라도 급유하면서 보일러실이 무너져 내릴까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포항 지진 이후 파손된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이번 지진의 진앙 외곽 지역에는 60대 이상 1~2인 가구가 대부분이지만 대피소에 가는 대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이 더 많다.

<백승목·백경열 기자 smbae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