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환경 범죄]"문 열어" "영장 있나" 완전범죄 다투는 5분..불법 폐수 '콸콸'

송윤경 기자 2017. 11. 1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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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배출 공장 단속 ‘하늘의 별따기’
ㆍ단속 비웃듯 문 닫고 방류…배출구 두 개로 ‘눈속임’
ㆍ현장 적발 피한 범죄 급증

한밤중이었다. 인천시 특별사법경찰과 검찰 수사관들은 서구 석남동의 하수도 맨홀 뚜껑을 하나씩 열어가며 리트머스 종이를 몇 장씩 담가 색상을 확인했다. 붉은색(산성)이거나 파란색(알칼리성)이거나 진하게 나오는 쪽으로 이동한다. 산성을 띠는 폐수도 있고 알칼리성 폐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며칠 전 “인천 북항 부근 하수관로에서 썰물 때만 되면 시커먼 물이 거품을 일으키며 쏟아져 나온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를 시작했다. 하수관로에 까만 물이 흘러내려가는 불법 방류 ‘흔적’이 포착된 날 밤, 단속을 시작했다. 리트머스 종이가 가리키는 방향의 맨홀들을 따라 올라갔다. 의심 업체는 몇 군데로 좁혀졌다.

문을 두드렸다. 전에는 그래도 문은 열어주던 업체들이 변호사 컨설팅을 받아 ‘영장을 가져오라’며 버텼다. 그사이 업체는 문을 닫아건 채 모터펌프를 이용해 탱크로리에 있던 폐수를 변기와 세면대로 흘려보냈다. 화학약품 처리를 하지 않아 중금속이 법정기준치의 수백배를 초과한 악성 폐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폐수 흔적을 없애려 깨끗한 물을 흘려보낸다.

업체 측이 문을 연 것은 5분 후. 단속반이 들어갔지만 폐수를 쏟아보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현장을 적발하지 못하는 한 하수관으로 흘러가버린 폐수를 이들이 방출했다고 단정 지을 방법은 없다. ‘완전범죄’였다. 이 업체들은 영세기업들의 폐수를 받아 법정기준치에 맞게 정화한 후 방류해주는 폐수수탁업체들이었다. 하지만 처리는커녕 몰래 쏟아보내며 돈을 벌고 있었다.

몇 해 전 인천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의 수사 관계자는 “업체들은 단속반이 뜨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환경범죄는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범죄 현장을 덮치는 방식으로는 따라가기 버겁다. 그러다 보니 환경법은 ‘지키나 마나’ 한 법이 됐다.

수질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은 화학적산소요구량(COD)과 페놀, 납, 크롬, 카드뮴 등 47종의 화학물질 법정기준치를 충족시킨 폐수만 흘려보내야 한다. COD는 다른 오염물질이 법정기준치를 만족시켰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 역할을 한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 중앙환경사범수사단(중수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3년6개월간 산업폐수가 유입되는 전국의 635개 공공하수처리장 가운데 COD가 법정기준치를 초과한 처리장이 전체의 40%에 이르렀다. 그중 167곳(26%)은 법정기준치를 3년6개월간 상시적으로 초과했다. 그만큼 악성 폐수 무단방류가 흔하다는 뜻이다. 각 업체가 같은 양의 폐수를 버린다고 가정할 때 전국 폐수 배출 공장 5만7180개 중 40%인 2만2872개는 정화하지 않은 악성 폐수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환경부 중수단이 이처럼 전국의 어떤 공공하수처리장에 폐수가 많은지, 불법 방류 업체는 대강 몇 군데에 달하는지를 추정한 까닭은 하나다. 그동안 주먹구구로 이뤄져 환경범죄에 속수무책이었던 단속의 실효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서다.

현장을 덮치기 힘들어지니 환경당국과 지자체, 수사기관도 다른 분석기법을 동원했다. 공장이 법에 따라 산업폐수를 정화해 흘려보내려면 응고제와 같은 약품을 사용해야 한다. 응고제는 중금속 등을 고체로 만들어 가라앉힌다. 공장은 덩어리가 된 폐기물을 걸러낸 후 맑아진 물만 방류해야 한다. 폐수에서 걸러낸 고체 폐기물은 별도로 폐기물업체로 보내 처리한다.

즉 폐수를 정화하기 위해 쓰는 약품의 구매량과 사용량이 불법행위를 밝힐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단속반은 폐수 불법방류 업체들을 잡아내기 위해 각 공장에 약품 사용일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업도 만만하지 않다. 업체들은 각자 속한 협회를 통해 단속반이 어떤 기록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공유한다. 며칠에 걸쳐 단속이 이뤄지는 동안 업체들은 일지를 조작해 놓는다. 사지도 않은 정화용 약품을 사서 썼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때때로 단속반이 묻기도 전에 먼저 정화용 약품 사용일지를 갖다 주는 공장들도 있다. 결국 단속반은 세금계산서, 회계서류를 약품 사용일지와 일일이 대조해 실제 약품 사용량을 밝혀내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너무 완벽한’ 상황이 의심을 불러일으켜 적발되기도 한다. 경남 양산의 한 도금업체 사장은 2015년 정화하지 않은 폐수를 불법 방류했다고 검찰에서 자백했다.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업체는 낙동강 부근 청정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산업단지들보다 엄격한 환경기준을 적용받고 있었다. 그런데 단속반이 나가면 이 업체에선 늘 깨끗한 물만 방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적인 도금업체라면 니켈 검출량에서 이곳의 법정기준치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검찰은 어떻게 니켈까지 기준치 이하일 수 있었는지 캐물었다.

알고 보니 이 업체는 두 개의 폐수 배출구를 쓰고 있었다. 한 곳은 정화하지 않은 폐수를 일상적으로 방류하는 용도다. 다른 한 곳은 단속반에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 저장수조에 수돗물 9, 폐수 1의 비율로 물을 채워놓았다가 이 물을 흘려보내는 배출구를 따로 둔 것이다. 단속반이 오면 직원은 스위치만 돌리면 된다. 그러면 저장수조의 물이 흘러나간다. 이 공장은 1500만원을 들여 설비를 갖췄다. 약품처리로 오염수를 정화하려면 수억원이 든다. 환경범죄는 ‘크게 남는 장사’다.

환경법을 어기면 이익이 많이 남으니, 공장들은 별별 수법을 다 동원한다. 폐수에서 걸러낸 고체 폐기물은 수집·처리 현황을 ‘올바로 시스템’이라는 환경부의 전산시스템에 기록하게 돼 있다. 폐기물 처리과정은 배출자(공장), 운반자, 처리업자의 삼각 구도 속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서로 봐주기 어렵다. 그런데 한 공장이 폐기물 운반업, 처리업 등 세 법인을 가족회사로 세워 오염물질을 묻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환경부 중수단과 서울 동부지검이 올해 수사한 ‘폐기물 소각장’ 불법행위도 적발이 쉽지 않았다. 폐기물 소각장들은 산업현장에서 나오는 폐합성수지 등을 태워 처리해주고 돈을 번다. 이런 업체 중 8곳이 폐기물을 허가받은 것보다 8만9000t더 태운 사실이 드러났다. 소각로를 불법 증설한 덕이었다. 다이옥신 등 대기오염물질 정화를 위한 활성탄은 제대로 구매도 안했다. 이렇게 법을 어겨 번 돈이 946억원에 달했다. 수사팀은 이틀간 각 소각장에 머물며 태울 수 있는 폐기물 최대치를 관찰하고 세금계산서로 활성탄 실제 구매량을 확인해야 했다. 21세기 환경범죄는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양한 수사기법을 동원해야 할 지능범죄가 된 지 오래다.

과태료 많아야 2000만원…환경사범에 유독 관대한 법 지난해 출범한 중앙환경사범수사단(중수단)은 점점 고도화하는 환경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수단은 출범 이후 환경범죄 수사와 더불어 효율적인 단속 방안을 연구했다. 이들은 특히 미 환경보호국(EPA)의 단속방식을 토대로 한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EPA는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업체 80만곳을 대상으로 어떤 오염물질을 얼마만큼의 약품을 사용해 정화한 후 배출했는지 기록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전산화된 빅데이터를 분석해 오염물질 배출량에 비해 정화용 약품 사용량이 적은 업체를 짚어낸다. 업체가 허위로 기록을 하면 어떻게 될까. 환경부 관계자는 “오염물질을 불법으로 내놓는 행위보다 허위 기록을 내놓는 것에 대해 더 강한 형사처벌, 더 긴 징역형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일일이 다 체크할 수 없으니 ‘시범 케이스’를 적발하면 확실하게 처벌을 하는 것이다. EPA에서는 전체 인원의 20%인 약 3400명이 폐기물 처리를 분석하고 단속한다. 그만큼 환경범죄를 심각하게 본다는 뜻이다. 시스템을 만들어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한국은 환경범죄에 대한 처벌이 유독 약하다.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1년에 3번 적발돼야만 처벌할 수 있게 한 분야도 있다. 범죄수법은 시시각각 진화하고 현장을 잡아내기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1년에 3번 연속 적발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환경부 관계자는 “설사 적발되더라도 행정처분으로 부과되는 과태료는 대개 2000만원, 부당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매겨지는 과징금은 1억원 이하”라고 설명했다. 업주가 감옥살이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는 동안 한국의 산과 강, 바다는 멍들어간다. 환경부 중수단의 집계결과인 법정기준치를 초과해 오염된 256개 하수처리장의 물은 결국 강으로 흘러들어간다. 공공하수처리장은 강으로 물을 내보내기 전에 부유물질, 인, 대장균, 질소 등 7가지 항목만 확인할 뿐이다. 중금속을 정화하는 기능은 하지 않는다. 불법 방류의 이득은 산업체가 보지만 피해는 모두의 몫이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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