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배제·사례비만 과세' 요구..교회 '재정투명성 확보'는 멀어진다

박용하 기자 2017. 11. 19. 22: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보수교회, 여론 동떨어진 주장…종교인 과세 내년 시행 막판 진통
ㆍ“재정 불투명 집행으로 종교이탈 못 막고 과세 효과 반감 가능성”

“세무공무원이 교회를 조사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엄기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과세대상에서 판공비 등은 제외돼야 한다.”(소강석 목회자납세문제대책위원장)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내년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그간 과세 유예를 줄기차게 요구하던 개신교의 일부 보수교회들이 시행령 개정에 앞서 민감한 사안을 걸러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종교인에 대한 세무조사 배제’, ‘사례비에 국한된 과세대상 선정’ 등이 이들의 대표적인 요구사항이다.

보수교회들은 종교활동의 자유나 다른 종교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이들의 주장이 그대로 관철될 경우 교회 개혁의 최우선 과제인 ‘재정투명성 확보’는 멀어질 수 있다. 정부와 보수교회들이 펼치는 막바지 ‘고지전’의 결과에 따라 개신교의 ‘적폐청산’은 갈림길에 서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종교인 과세, 한국 교회의 기회”

사실 재정투명성 확보는 한국 교회 전체가 그간 바라왔던 핵심 과제였다. 많은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일부 장로들이 재정권한을 독점한 채 돈을 불합리하게 사용한 사례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유명 대형교회들이 불투명한 재정 처리로 비자금을 만들고, 목사의 세력을 키우거나 세습 용도로 추진해 논란을 빚었다.

불투명한 재정 문제는 개신교 스스로의 교세도 위축시키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올해 초 벌인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6.1%가 한국 교회가 개선해야 할 사항 중 ‘불투명한 재정 사용’를 꼽아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특히 종교이탈 비율이 높은 20·30대에서 이 문제를 가장 많이 지적했는데, 청년층이 교회를 외면하는 이유도 불투명한 재정 문제와 연관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때문에 교계에서는 종교인 과세를 계기로 재정투명성이 제고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세금을 매기면 관련 재정정보도 당국에 공개해야 되기에 투명성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무조사의 가능성도 감안하면 부패한 일부 교회들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일선 중견교회의 한 목사는 “국가 정책을 계기로 재정이 투명해질 수 있다면 한국 교회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세무조사 거부 이유, 현실과 달라

하지만 일부 보수성향 목사들은 여전히 세무조사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사이비 종교의 견제나 악의적 목적의 고발이 늘어날 경우 교회의 이미지가 추락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국세청의 처리 절차상 제보가 실제 세무조사로 이어질 확률은 25%가량이다. 김경률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탈세 제보가 ‘떠먹여 주는 수준’까지 구체적이지 않으면 국세청은 움직이지 않는다”며 “제보로 시작된 세무조사가 신뢰도를 흠집 낸다는 건 맞지 않는 말”이라고 말했다.

일부 목사들은 “정부가 제시한 과세대상이 다른 종교보다 지나치게 많다”며 “목회에 대한 ‘사례비’ 정도에만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다른 종교의 급여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김애희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불교나 가톨릭은 개신교와 달리 총액 개념으로 급여를 지급해 차이가 있다”며 “개신교의 경우 사례비에만 과세하면 판공비 등 나머지를 부풀려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종교인 과세에 대한 정부의 교육과 준비가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과세 유예’에 대한 바람이 오히려 일선 교회들의 준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교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교회 목사들 중에는 유예 여부에 혼란을 느끼고 ‘확정되면 교육을 받겠다’는 이들도 많다”며 “국세청의 설명회 등에 목사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 보수 목사들, 기독교 대표할 수 있나

개신교 일각에서는 일부 보수 목사들이 최근 정부와의 대담에 전면적으로 나서면서, 마치 이들의 입장이 기독교 전체의 공통된 입장인 듯 보여지는 모습을 우려하기도 한다. 교계 한 관계자는 “교회 내에서는 종교인 과세에 대한 입장차가 갈려, 통일된 입장이 나온 적은 없다”며 “현재 목소리를 내는 단체들은 보수적 목소리로는 의미가 있으나, 교회 전체의 대표성을 가진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조만간 세무조사 배제 여부나 과세대상의 범위를 정한 시행령을 내놓을 예정이다. 보수 목사들의 요구대로만 간다면 종교인 과세의 효과가 ‘반쪽’에 머무를 가능성도 있다.

김애희 사무국장은 “정부가 보수교회들의 눈치를 너무 볼 필요는 없다”며 “이들의 요구대로 하면 세수도 없고 교회의 관행 개선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