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20년-한국 경제 현주소] 덩치 커졌지만..성장 동력 잃고 구조개혁 '헛바퀴'

안용성 입력 2017. 11. 19. 20:00 수정 2017. 11. 1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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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저성장·양극화 만성질환 시대로

 

20년 전인 1997년 11월 19일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투자자들은 한국을 외면했고 주식·외환 시장은 무너져내렸다. 결국 임창열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21일 밤 10시에 긴급 브리핑을 한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200억달러의 차관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이라는 고통스런 터널 속으로 들어선 순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연설에서 외환위기에 대해 “어느 날 불쑥 날아든 해고통지였고, 가장의 실직이었으며, 구조조정과 실업의 공포였다”고 밝혔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외환위기를 이겨낸 한국은 20년이 흐른 지금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외건전성 부분에서 2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화하고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성장동력을 살려내기 위한 구조개혁 작업이 이해당사자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 대타협을 이뤄내지 못한 채 헛바퀴를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20년 전에는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개혁에 공감했지만, 이제는 개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마저 떨어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20년을 맞아 한국 경제의 좌표와 지향점을 탐색해보는 시리즈를 5회에 걸쳐 게재한다.

◆외환위기가 남긴 빛과 그림자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 경제는 경쟁력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부실과 거품이 정리되면서 한국 경제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외환위기의 결정적 원인이 됐던 외환보유액을 비교하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몰라볼 정도로 탄탄해졌다.

1997년 한때 39억달러까지 떨어졌다. 이에 비해 지난 8월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848억달러로, 당시의 100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세계에서 9번째로 달러를 많이 갖고 있는 국가가 됐다. 1년 단기외채 비중도 30%대로 안정적이다. 1998년 6월 외환위기 여파로 코스피(당시는 종합주가지수) 종가는 사상 최저치인 280.00까지 추락했지만 지난 17일 기준 종가는 2533.99로 9배 상승했다. 신용등급도 올라갔다. 1997년 B+(스탠더드앤드푸어스), B-(피치), Ba1(무디스)였던 한국의 신용등급은 8∼12단계 수직상승했다. 살아남은 기업과 노동자들이 그 혜택을 맛봤다.
경제는 성장하면서 거품과 찌꺼기를 만들어낸다. 최근 들어 한국 경제는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계일보가 경제 전문가 50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에서도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로 저성장(44%·복수응답)이나 혁신전략 부재(34%) 등을 꼽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1996년 한국 경제는 7.6%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5% 이상 고성장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0년 이후에는 2%대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모습이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등 구조적 문제의 결과가 저성장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노동시장 유연화와 사회안전망 강화 등 구조적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홍선 한국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도 “혁신전략 부재를 해결해야 저성장 문제를 풀 수 있다”며 “혁신전략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 시스템과 제도·기술·서비스의 혁신이 어우러진 마스터플랜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최대 문제는 양극화”

양극화는 외환위기가 남긴 그늘이다. 경제 전문가 10명 중 6명 이상(62%)이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문제로 양극화를 꼽았다. 이들은 가계 소득과 기업 소득의 격차 확대,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를 지적했다.

박기현 유안타 리서치센터장은 “대기업과 재벌 중심의 경제정책 운용은 수치상 표현되는 경제성장률을 가속화하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원천적인 부의 분배를 왜곡시켰다”라며 “이는 민간 부문의 순환 연결고리를 약화하고, 산업의 근간이 돼야 하는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학과 객원교수도 “더 늦기 전에 양극화 기조를 완화시키지 않으면 경제·사회적 문제가 심화해 국가의 균형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며 “손쉬운 해결책은 없지만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 등을 통한 정상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실시한 인식조사도 이 같은 현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외환위기가 한국경제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이 무엇이냐고 묻는 설문에 응답자의 31.8가 ‘소득·빈부 격차 확대 등 양극화 심화’를 꼽았다.

양극화 문제는 소득 격차를 통해 극명히 드러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20세 이상 인구 중 최상위 10 소득집단의 소득 비중은 1999년 32.9에서 2015년 48.5로 치솟았다. 반면, 2015년 1000만원 이하 소득자는 전체 소득자의 38.4를 차지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도 외환위기가 남긴 숙제다. 설문 대상 50명 중 15명의 전문가가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노동격차, 노동시장 경직성 등을 우리 경제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꼽았다. 

◆“공공 개혁·노동 개혁은 낙제 수준”

외환위기 충격 속에서 시작된 공공·노동·금융·재벌 등 이른바 4대 개혁은 여전히 낙제 수준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특히 노동·공공 분야 개혁에 대한 평가는 절반 이상이 ‘D학점 이하’로 낮은 점수를 줬다. 50명의 전문가 가운데 4대 분야를 통틀어 A학점을 준 경우는 단 1명에 불과했다. 노동과 공공 분야 개혁은 꾸준히 지적받는 부분이다. 

최근 IMF는 한국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근로자 해고의 유연성과 사회적 안전망을 동시에 높이는 ‘유연안전성’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노동개혁을 포함한 개혁이 성공할 경우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고 제언하고 있다. 금융 분야 개혁에 대해서는 전문가 84%가 C학점 이상으로 평가했다. C학점이 60%로 가장 많았으며, 4대 분야 개혁 관련 설문 가운데 유일하게 A학점(1명)을 받았다. 또 C학점을 제외하고 A·B학점이 D·F학점보다 높게 나온 유일한 분야였다.

재벌개혁 분야의 평가도 B·C학점 이상이 각각 32%, 30%를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정부 들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하며 재벌개혁 정책을 내놓고 있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권우석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배구조 투명화 등 어느 정도 개선된 측면은 있다”면서 “(재벌) 본인들이 원해서가 시민단체 등 사회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아서 투명성이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설문 참여 전문가 50명 명단(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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