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편에 서서 맞은 '베를린 희년' 자랑스러워요"

2017. 11. 19. 19:4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정의의 편에 서서 일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독일 한인사회에 처음 생긴 모교회로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끌어안으려고 노력했어요."

독일 거주 한인들의 권리와 단합, 조국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 이웃 돕기에 앞장선 베를린한인교회가 창립 50돌을 맞았다.

독일 전역의 교회들이 모인 '교회의 날' 행사에서 부스를 만들어 5일 만에 한인 간호사 퇴출에 반대하는 1만명의 서명을 받았고, 결국 간호사들은 체류 보장을 받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베를린한인교회 50돌 강경선 장로
민주화·인권·북한돕기 등 앞장
"80년 광주민주항쟁 때 가장 고통"

[한겨레]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45년간 베를린한인교회 공동체를 꾸려온 강경선 장로. 한주연 통신원

“정의의 편에 서서 일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독일 한인사회에 처음 생긴 모교회로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끌어안으려고 노력했어요.”

독일 거주 한인들의 권리와 단합, 조국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 이웃 돕기에 앞장선 베를린한인교회가 창립 50돌을 맞았다. 베를린한인교회는 지난 4일 이민신학 심포지엄과 축하 공연으로 지난 50년을 되새겼다.

기독교에서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노예를 해방시킨다는 연원을 지닌 희년(50돌)은 의미가 각별하다.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45년째 한인교회 공동체에서 동고동락한 강경선(72) 장로는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해”라고 설명했다.

시작은 소박했다. 베를린 슈판다우 지역 병원 목사인 에르빈 쿠제가 낯선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한국인 간호사들을 위해 ‘한국의 집’을 만든 게 시초다. 강 장로는 1972년 한국에서 청빙한 정하은 목사가 한국어로 첫 예배를 올렸을 때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말도 안 통하고, (독일인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아 힘들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 마음을 풀고 기도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살았어요.”

올해 창립 50돌을 맞은 베를린한인교회 전경.

교인들은 유신헌법 반대 구국 기도회와 시위에 나선 것을 비롯해 한국 민주화운동의 후원자 노릇을 했다. 한인 권리 보장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77년, 오일쇼크로 경제 위기에 휘청이던 병원들은 한인 간호사들을 집단 해고해 추방 위기로 내몰았다. 독일 전역의 교회들이 모인 ‘교회의 날’ 행사에서 부스를 만들어 5일 만에 한인 간호사 퇴출에 반대하는 1만명의 서명을 받았고, 결국 간호사들은 체류 보장을 받았다.

가장 힘든 기억은 광주민중항쟁 때다. “텔레비전에서 사람 목을 끈에 묶어 질질 끌고가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어요. 미칠 것 같았어요.” 한인교회는 광주 시민들을 위해 기도하며 헌금과 바자회로 성금을 모았다. 한인들 사이에 갈등도 만만찮았다.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에게 용공이라고 난리치는 한인들도 있었어요.”

1985년에는 목포의 결핵병원에 엑스레이 기계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교인들이 자선음악회와 바자회로 7200마르크를 모았다. 여성들이 이런 일을 도맡았다. 그해에 결성된 여신도회는 한국 재소자들에게 양말을 떠서 보내고 달동네와 원폭 피해자, 소년소녀가장 돕기 활동을 펼쳤다. 지금은 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 활동도 지원한다.

강 장로는 1989년 남북 기독교인 합동예배를 올린 것도 소중한 기억으로 꼽았다. 그는 “만찬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부르며 눈물을 흘린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돌을 맞아 ‘교회의 날’에 한인교회 부스를 만들어 위안부와 세월호 문제를 알렸다. 독일인 청각장애인 로베르트 그룬트가 세운 북한의 함흥 장애인학교도 지원한다. 2000년부터는 베를린의 여러 교회가 모인 한인교회 연합이 해마다 북한 동포 돕기 자선음악회를 연다.

강 장로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내 직업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며 “약자를 도울 수 있으니 좋은 직업”이라고 했다. “남편을 여기에 묻었기에 못 떠날 것 같아요. 2세들이 한국인의 긍지를 잃지 않고 신앙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