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폭행피해 전공의 "병원마다 수련거절.. 차라리 알리지 말 걸"

임주언 기자 입력 2017.11.19. 19:13 수정 2017.11.19. 21:35

"언론에 제보한 뒤 여러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거절당했습니다."

전북대병원 전공의 폭행사건 피해자 A씨(32)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허탈한 목소리로 토로했다.

병원에서 폭행 등 피해를 당한 전공의는 다른 병원으로 이동수련을 신청할 수 있지만 최종결정권한이 병원장에게 있는 한 실효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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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부산대병원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공개한 사진. 지도교수의 폭행으로 전공의 다리에 피멍이 들어 있다. 유은혜 의원실 제공

여러 병원서 수련 거절당해… 2차 피해에 눈물

피해자 떠나고
폭행·폭언 고발후 병원나와
연고 없는 곳이나 해외로…

가해자는 남아
보도된 폭행·성폭력 11건중
5건이 감봉·정직 처분 그쳐

“언론에 제보한 뒤 여러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거절당했습니다.”

전북대병원 전공의 폭행사건 피해자 A씨(32)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허탈한 목소리로 토로했다. 그는 선배 전공의와 지도교수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사실을 고발한 뒤 지난 2월 병원을 나왔다. A씨는 “폐인처럼 살다가 전혀 연고가 없던 강원도로 떠났다”며 “다른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이어가려 했지만 ‘그럼 저희가 전북대병원을 어떻게 보느냐’며 거절당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언론을 통해 사건이 알려지지 않으면 제재가 어렵고, 알리면 (의료계에서) 매장당하는 구조”라며 “너무 힘든 시간을 겪고 있어서 저에게 상담을 요구하는 다른 전공의들에게는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되레 고립된 사례는 A씨만이 아니었다. 지난 8월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서 지도교수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전임의 B씨(33·여)도 두 달을 버티다 지난 9월 말 병원을 그만뒀다. B씨는 “사건을 알린 후 왕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떠났지만 가해자는 남았다. 이날 국민일보가 언론에 보도된 전공의 폭행·성폭력 사건 11건의 가해자 처분을 취재한 결과 절반가량(5건)이 감봉이나 정직 처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A씨가 있던 전북대병원의 경우 폭언을 했다고 인정한 선배 전공의에게 내려진 징계는 정직 1개월 처분에 그쳤다. 산부인과 외래시술실에서 지도교수에게 주먹으로 등을 맞았다고 주장한 B씨 사건에서도 해당 교수에게 경고조치만 취해졌다.

다른 사건들의 결과도 비슷하다. 2012년 후배 전공의를 때리고 반성문까지 쓰게 했던 인천길병원 전공의는 수련정지 4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후 해당 병원에서 나머지 수련을 마친 그는 전문의 자격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피해자는 병원을 떠났고, 아예 일본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수련 특성상 3개월 이상 수련이 정지되면 1년에 1번인 전문의 자격시험을 칠 수 없다”며 나름 중징계였다고 해명했다.

2014년 대구 계명대 동산의료원 전공의들이 폭행 등을 이유로 직위해제를 요구했던 교수도 수개월 감봉처분만 받았다. 해당 교수는 현재도 동산의료원에서 지도전문의 자격으로 전공의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3월 교수의 폭행이 있었다며 한양대병원 전공의가 병원을 무단이탈했던 사건도 비슷하게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정직 처분을 받았던 해당 교수는 다른 문제가 없다면 다음 달 복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공의 폭행 문제는 수차례 공론화됐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병원이 가해자 징계를 결정하는 등 사건을 처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피해자를 가해자와 분리하기도 쉽지 않다. 병원에서 폭행 등 피해를 당한 전공의는 다른 병원으로 이동수련을 신청할 수 있지만 최종결정권한이 병원장에게 있는 한 실효성이 없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나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서 이동수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병원장에게 조치를 강제할 수 있도록 한 전공의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은 “가해자·피해자를 분리할 결정권과 가해 교수에게 지도전문의 자격을 다시 부여할 권한을 모두 병원이 쥐고 있다”며 “최소한 보건복지부나 복지부 산하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