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더 이상 마이크 앞에 서지 못할 거란 생각으로 5년을 보냈다"

김지숙 기자 입력 2017.11.19. 08:55 수정 2017.11.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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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MBC ‘시선집중’ 새 진행자 변창립 아나운서 “72일 파업, 공동체 재건 과정”…“요즘 아나운서국 사무실에 가면 즐겁다”

[미디어오늘 김지숙 기자]

오는 20일,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시선집중’이 ‘변창립의 시선집중’으로 새롭게 시청자를 찾아간다. 72일간의 파업으로 김장겸 MBC사장 해임을 이끌어낸 MBC 언론노동자들이 보여주게 될 ‘새로운 MBC’의 첫 장면이다.

지난 15일 기존 진행자 신동호 MBC 아나운서국장이 하차하고 이틀 뒤, 변창립 아나운서가 새 진행자로 확정됐다. 그는 이후 프로그램을 담당할 정식 진행자를 찾기 전까지 방송을 임시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는 1984년 MBC에 입사한 최고참 아나운서로 이번 파업에 참여했다.

‘시선집중’은 올해로 17년째를 맞는 MBC 라디오의 대표적 시사 프로그램이다. 변창립 아나운서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전화인터뷰에서 5년 만에 마이크 앞에 서는 데 대해 “두렵다”며 심경을 밝혔다. 그는 “사회 여러 곳에 아주 의미 있는 영향을 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기본만 할 거니까 너무 큰 기대 하지 말고 인내해주시기 바란다”며 웃었다.

그는 5년 전 인사부부로 발령 받은 후 공식적으로는 아나운서국 소속이 아닌 라디오심의부 소속 심의위원이다. 보복성 발령의 흔적이다. 그의 출입증으로는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에도 들어갈 수 없다. 그는 “인사위원회에서 징계를 내리더라도 방송을 계속 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아직 MBC경영진은 ‘김장겸 없는 김장겸 체제’다.

변 아나운서는 지난 15일 언론노조MBC본부가 총파업을 중단하고 부당전보자의 ‘유배지’ 출근거부 지침에 따라 아나운서국으로 출근하고 있다. 아래는 5년 만에 첫 방송진행을 앞둔 변창립 아나운서와 미디어오늘이 지난 17일과 18일에 걸쳐 통화한 내용을 정리한 일문일답이다.

▲ 오는 20일부터 변창립 아나운서가 MBC ‘시선집중’ 임시 진행자를 맡게 됐다. 사진=MBC
-5년 만의 첫 방송인데,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있나.

“두렵다. 안 하려고 했으니까. 더 이상 마이크 앞에 서지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 5년을 보냈다. MBC 정상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현업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고 후배들 지원이나 교육을 해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예민한 프로그램에 투입이 되니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제작진 회의는 어땠나.

“다 머리를 붙잡았다. 어제(17일) 오후에 방송 재개 결정이 됐으니 부랴부랴 여기저기 흩어진 작가와 출연진에게 연락했다. 오전 10시부터 회의를 시작했는데 오후 3시 가까운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알아보니 70일 넘게 방송 대신 음악을 내보냈더라. 그 공백을 갑자기 메워야 하니 호떡집에 불난 것 같은 분위기다. 일단 섭외가 급하다고 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또 진행자가 바뀌면 그 사람에 맞는 미세 조정이 필요한데, 제작진이 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질 거다. 너무 큰 기대 말고 기본만 할 거니까 인내해주길 바란다.(웃음)”

-‘시선집중’ 진행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나.

“전혀 몰랐다. 17일 라디오국 총회를 통해 결정된 게 그날 오후 나에게 통보됐다. 날벼락 맞은 기분이었다. 지난주쯤 정상화가 눈앞에 보이니 프로그램 정상화에 대한 논의가 오고갔는데 거기서 ‘시선집중’ 이야기도 나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남아있던 보직 간부인 라디오국장·부장이나 편성제작본부장 등이 다른 프로그램 원상복귀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는데 ‘시선집중’ 만큼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시선집중’만 음악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려고 하다가 그걸 지켜보던 후배들과 원로 라디오 PD들이 ‘우리가 한번 설득해보겠다’며 관련자와 면담을 했다. 일종의 설명과 압박을 했다고 들었다. 그게 극적으로 금요일 오전에 해결된 것이다.”

-후배들은 당신을 어떻게 설득했나.

“처음에는 개인적인 이유로 고사를 하려고 했다. 나는 내년에는 안식년에 들어가고 내후년에는 정년을 맞는다. 그런데 후배들이 ‘이건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MBC 정상화를 위한 길에 의미 있는 작업’이라며 힘들더라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에는 거의 협박하더라. 우리나라 정세나 천재지변이 일어난 상황에서 그런 이유로 (프로그램이) 음악만 내보내는 파행을 빚어야 하느냐며. 오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선호했던 것 같다. 일단은 당분간 임시 진행자라는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 MBC '시선집중' 소개 홈페이지 갈무리. 신동호 아나운서의 사진과 이름이 빠지고 프로그램 제목도 '신동호의 시선집중'에서 '시선집중'으로 수정됐다. 진행자도 변창립 아나운서로 고쳐졌다.
-MBC에서 ‘시선집중’이란 프로그램이 어떤 의미기에 경영진도 후배들도 놓지 않으려 했을까.

“아주 간편하게 말하자면 ‘라디오 시사 정보 프로그램’인데, 17년이 됐더라. 2000년 10월에 시작된 방송 하나가 우리나라 아침 시간대 정치권부터 출퇴근하는 시민들까지 모두의 생활 패턴을 바꿨다. 그 정도로 사회 여러 곳에 아주 의미 있는 영향을 준 프로그램이다. 12년 정도 방송을 진행했던 손석희 선배도 현재 언론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 거고. 그래서 마지막까지 신동호 아나운서가 고민했던 것 같은데, 아마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제작진에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진행자 교체가 상징적이라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타는 그냥 기본만 하면 된다.”

-심의국 소속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데에 문제는 없나.

“회사에서 문제 삼자면 얼마든지 삼을 수 있지만 신경 안 쓰려고 한다. 내가 부당 전보된 상태로 5년 동안 심의국에 있었고, 경영진의 잘못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당한 인사 명령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사위원회 열어서 징계 내린다고 하면 받아야겠지만 나는 계속 방송할 거다. 더 중요한 건 빨리 방송으로써 청취자들에게 정상화된 MBC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튜디오에 들어갈 수 있나.

“내가 갖고 있는 신분증이 ‘RS1’, 그러니까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에 출입할 수 없는 신분증이다. 오늘 확인했다. 상암동 MBC 신사옥에서 한 번도 방송을 안 해봤기 때문에 제작진에게 ‘한번 보고 올게’ 하고 가봤는데 내 신분증으로 안 열리더라. 그래서 PD한테 ‘야, 네 신분증 좀 줄래’ 해서 같이 갔다.”

▲ 8월22일 MBC경영진을 규탄하는 아나운서들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변창립 아나운서. ⓒ이치열 기자
-지난 72일간의 파업 동안 구성원들이 무엇을 배웠고 쟁취했다고 생각하나.

“많이 싸웠다. 많이 울었고. 처음에는 각자의 상처나 고통을 꺼내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파업 과정에서 앞으로의 재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각자 다른 곳에 뿔뿔이 흩어진 채 5년을 보냈더니 예전에 갖고 있었던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것 같더라. 그래서 초반에 많이 싸우면서 우는 ‘한풀이’ 과정을 거쳤다. 이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72일간의 파업은 공동체 의식을 재건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요즘 아나운서국 사무실 분위기는 어떤가.

“사무실에 가면 즐겁다. 지금 아마 아나운서국에 오면 놀랄 것이다. 우리가 책상을 붙이고 자체적으로 태스크포스 팀을 3~4개 만들어서 여러 작업을 하고 있다. 예컨대 ‘백서팀’은 지난 5년에서 9년간의 청산되어야 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교육팀’도 있는데, 아무리 방송을 오래 한 사람이라도 5년 쉬면 감이 떨어진다. 새롭게 들어온 친구들은 교육이 충분히 안 돼 있는 경우도 있다. 매일 강도 높게 일하는데도 이 친구들이 너무 즐거워하고, 매일 열의에 차서 눈이 반짝반짝한 게 보인다. 나는 교육팀이었는데 이번에 ‘시선집중’을 맡게 돼서 팀장에게 빼 달라고 선처를 부탁했다.”

-변 아나운서의 후임은 언제쯤 결정될 것 같나.

“새 경영진이 오면 조직 개편도 해야 하고 대대적인 프로그램 개편도 있을 것 같다. 그때쯤이지 않을까. 연말까지 하는 게 현재 상황이다. 일단 지금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MBC 재건에 힘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