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피? 놀러가는거?" 지진난 양육시설로 돌아가는 아이들

김정석 2017. 11. 1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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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 정상화로 이재민들 대피소 옮겨
아동양육시설 '애육원' 원아들은 다시 건물로
애육원 건물 곳곳서 부서지고 깨진 흔적 여전
"진단결과 안전하다 해도 아이들 다칠까 걱정"

━ [단독]돌볼 이 없어…지진에 부서진 양육시설 돌아가는 아이들

규모 5.4의 강진 피해를 입은 경북 포항시민들의 대피소 생활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7일 오후 포항항구초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단체로 생활하는 선린애육원 어린이들이 인근 교회에서 전달한 피자와 치킨을 간식으로 먹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월요일인 20일부터 포항지역 대부분의 학교에서 수업이 재개된다. 학교 대피소에 있던 이재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대피소로 쓰던 4개 학교 중 3곳은 포항 기쁨의교회 대피소로 옮긴다. 하지만 나머지 한 곳의 이재민들은 외벽이 부서지고 실내 곳곳에 금이 난 곳으로 돌아간다. 어째서일까.

다른 대피소로 옮기지 못한 이재민들은 아동양육시설에 있는 79명의 아이들이다. 이들은 포항시 북구 환호동 선린애육원에 있다가 지진을 당했다. 천장 마감재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고, 벽에 금이 갈라지던 현장에 있던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지진 직후 애육원 인근 포항항구초등학교 대피소에 몸을 피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애육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15일 지진이 발생한 후 지역 초·중학교 건물 4곳이 대피소로 활용되고 있다. 포항시 북구 환호동에 있는 대도중, 환호여중, 포항항구초와 북구 학산동에 있는 포항항도초다. 지진 직후 정부가 16~17일 이틀간 휴교령을 내리고 18~19일이 주말이었기에 학교 건물을 대피소로 쓸 수 있었다.
17일 오후 포항항구초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단체로 생활하는 선린애육원 어린이들. 프리랜서 공정식
18일 오전 항구초 대피소에서 만난 원아들은 좁은 공간에 둘러앉아 치킨과 피자를 먹고 있었다. 한 아이가 보육 교사에게 "맛있는 것도 많고 방도 따뜻해서 너무 좋아요"라고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또 다른 아이는 양 손에 치킨을 들고 뛰어다니고 바닥에서 구르며 신난 모습이었다.
기자가 아이들에게 다가가자 초등학교 1학년 김호진(7·가명)군이 와락 안기면서 순진한 표정으로 "우리 언제 집에 가요"라고 물었다. 또 다른 아이에게는 "'대피'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처음엔 갸웃하다가 "놀러 가는 거?"라고 말했다.
17일 오후 포항항구초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단체로 생활하는 선린애육원 어린이들이 인근 교회에서 전달한 피자와 치킨을 간식으로 먹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애육원 교사는 "아이들은 지금 신났다.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맛있는 것도 먹으니까 마치 캠핑을 온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 교사는 "다시 애육원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금이 가고 부서진 벽을 보면서 아이들이 불안해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으로 각 학교 대피소에 있는 이재민 수는 대도중 60명, 환호여중 9명, 항구초 90명, 항도초 20명 등이다. 나머지 대피소에는 일반 주민들이 머무르고 있지만, 항구초에 있는 90명은 모두 선린애육원 원아 79명과 직원들이다.

20일부터 대도중과 환호여중, 항도초 대피소에 있는 이재민들은 포항시 북구 양덕동에 있는 기쁨의교회 대피소에서 생활하거나 알아서 거처를 구해야 한다. 항구초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 대피소엔 지난 17일부터 '정상적인 학교 수업이 진행되는 관계로 장기적인 사용이 불가능해 부득이 다른 장소로 이전한다'는 안내문이 내걸렸다.
17일 오후 대피소 중 한 곳인 포항시 북구 환호동 환호여자중학교 체육관에 다음 주 학생들의 정상 등교를 앞두고 대피소를 이전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애육원 측은 원아 79명이 대피 생활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포항시와 보건복지부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원래 있던 애육원 건물로 돌아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애육원 관계자는 "1차 안전검사 결과 거주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1차 안전검사는 육안 검사였다. 건물 골조에는 이상이 없으니 원아들이 지내는 8개 방 중 가장 파손이 심한 1개 방을 제외한 곳에선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18일 경북 포항 선린애육원 내부 천장이규모 5.4의 강진과 계속되는 여진으로 파손돼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하지만 애육원 건물 안팎엔 지진의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있었다. 타일이 덮여 있는 복도 벽은 곳곳에 금이 가 있었다. 임시 방편으로 청테이프와 투명테이프를 붙여 깨진 타일이 떨어지지 않게 조치했다. 석고 천장 마감재도 여러 개가 떨어져 천장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경북 포항 선린애육원 내부가 지난 15일 규모 5.4의 강진과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해 곳곳이 파손돼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원아들이 생활하는 방은 물론 복도와 화장실, 건물 바깥 등 성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8개 방 중 사용 불가 판정을 받은 1개 방은 벽이 심하게 부서져 바닥에 돌가루가 흩어져 있었고 TV와 가구도 넘어진 채였다. 회색 벽돌 타일이 붙어 있는 외벽은 지진의 충격으로 곳곳이 무너져 속살을 드러낸 상태였다.
경북 포항시 선린애육원이 지난 15일 규모 5.4의 강진과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해 파손돼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애육원 관계자는 "아무리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타일이 떨어져 아이들이 맞을 수도 있고 뾰족한 것을 건드리다 다칠 수 있다. 포항시에 다른 임시 거처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한 상태"라며 "아이들의 안전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구조 전문가(교수)는 "정밀 안전진단 이전에 이뤄지는 육안 검사는 상당한 경력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라면 섣불리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포항 선린애육원 복도 천장 마감재가 파손돼 구멍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5일 규모 5.4의 강진과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해 곳곳이 파손됐다. 프리랜서 공정식
이런 가운데 포항시는 애육원에 대한 1차 안전검사를 어느 업체에서 했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포항시 건축과 관계자는 "여러 전문업체가 동시에 피해 건물들에 대한 점검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그 결과들이 정리돼 파악되지 않았다"고 했다.

포항=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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