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TV속의 삶 이야기] 대학입시에서 원격시험체계 도입 추진

김수연 2017. 11.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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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통신망 통해 컴퓨터로 시험·평가 추진
대학 입학 비리 근절하기 위해 준비
지역에 있는 전자도서관에서 시험
대학끼리 시험지를 교환해 채점
대입시험 채점 장소 알아내려 '007작전'
교수 월급 쌀 1kg 정도 뇌물 근절하기 어려워

북한이 대학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공정성·객관성을 위해 컴퓨터에 의한 원격시험체계를 일부 지역에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대북소식통은 16일 “내각·기업소의 당조직들이 후원하는 고급중학교(고등학교)·대학에서 진행되는 원격시험체계 도입에 필요한 컴퓨터와 액정TV 등을 마련해 주라는 지시가 하달됐다”며 “각 기관이 원격화 교육 설비 구매에 필요한 외화 마련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각 도당위원회는 송배전부와 체신관리국들에 ‘교육기관에서 불필요한 전력선들을 퇴치하고 원격시험을 원만히 치르는 데 필요한 2중(예비) 전원체계를 완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북한이 추진하는 원격시험체계는 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이 수천 개의 문제가 들어있는 학과목별 문제 자료기지에서 낸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치르고 시험이 끝나면 즉시 채점해 교육위원회(한국의 교육부)에 전송하는 체계이다.

그리고 수험생들이 해당 대학들에 가지 않고도 거주하는 도에 있는 전자도서관에 앉아 국가정보통신망을 통해 교육위원회가 출제한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고 그에 대한 평가도 컴퓨터에서 받는 새로운 시험체계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흥고급중학교 학생들이 국가통신망으로 연결된 컴퓨터로 시험을 보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노동신문은 지난 10월 12일 ‘첨단돌파전의 불길을 세차게 일으켜 지식경제강국을 하루빨리 일떠세우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교육위원회 원격시험연구소가 내놓은 대학입학 원격시험체계 ‘탐구’가 10대 최우수 정보기술 제품으로 선정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대학 입학생 선발에서 공정성과 객관성, 과학성을 담보할 수 있는 우리 식의 대학 입학 원격 시험체계 확립은 자강력을 필승의 무기로 틀어 쥔 사회주의 교육의 발전 모습을 보여주는 첨단 성과”라고 자랑했다.

북한은 지난 9월 20일 3대 혁명 전시관에서 열린 ‘전국 정보화 성과 전람회-2017’의 교육 정보화 성과 전시대에 컴퓨터 앞에 앉아 직접 시험을 쳐보면서 대학 입학 원격 시험체계의 실력 평가 방법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대학입학시험장’을 설치하고 새로운 시험방법을 널리 홍보했다.

원격시험은 학생들이 문제에 답을 내면 점수가 나오고 점수는 즉시 종합돼 순위가 발표된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북한이 상급학교 추천·입학시험에서 원격시험체계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교육기관의 정보화·현대화 수준을 높여 김정은 정권이 추구하는 ‘인재 강국 건설’에 힘을 넣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에서 대학에 들어가려면 대학추천시험과 대학입학시험 등 2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대학추천을 받기 위해 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은 매년 11월 지방 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시험을 친다. 이를 내각 시험이라고도 한다. 내각의 교육위원회가 관할하는 시험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말이다. 성적 우선순위로 대학을 추천하는데 각 도·시·군 마다 제1고등중학교(영재학교)가 설립되면서 일반 고급중학교 학생들에게는 추천 기회가 줄었다. 평양시 모란봉 제1고등중학교 학생들의 경우 80% 이상이 대학 추천을 받지만 일반 고급중학교에서는 10%에 못 미치는 학생들이 대학추천을 받게 된다.

대학 선택은 전교 1∼10위권 내 성적의 학생들은 비교적 희망에 따라 대학 선택을 할 수 있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대체로 지방 인민위원회 ‘대학생 모집과’에서 배정한다. 그것은 인재를 지역별 균형에 맞게 배치할 목적에서 대학생 추천 인원수 계획이 지방별로 할당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5일 TV 소개편집물 ‘교육의 정보화에 큰 힘을 넣어’에 출연한 박송미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흥고급중학교 교원은 ’김책공업종합대학·평양기계종합대학 연구사들과 함께 고급중학교 교육프로그램(원격화)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학생들은 대학 추천을 받은 후 추천받은 대학에 가서 입학시험을 친다. 성적은 대학교수들이 평가한다. 90년대 중반까지 해당 대학 교수들이 입학 시험지를 채점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입학 비리를 없애기 위해 시험지를 대학끼리 교환해 채점하고 있다. 예를 들면 김일성종합대학 입학 시험지 채점을 어느 대학에 가서 하는지 비밀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민은 “대학입학 시험일에는 채점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시험장 주변 곳곳에 고급 승용차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시험지를 운반하는 교육위원회 차량을 뒤따른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교육위원회가 시험지를 한 차량에 실었지만 뒤따르는 차량을 따돌리려고 똑같은 여러 대의 차량이 동시에 움직이다가 일정한 곳에서 갈라지는 등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광경을 연출한다”고 말했다.

대학입학시험 거간꾼들은 여러 방법으로 시험 채점 장소를 알아내고 채점장에 들어가는 해당 대학교수들과 연계해 이미 표시를 해둔 시험지의 점수를 올리는 등 대학입학 비리는 다양하다.

북한 교육기관에서 근무한 탈북민 김모씨는 “대학교수 등 교육기관 종사자들의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다 보니 입학 시즌에는 입학 비리의 유혹에 빠진다”며 “대학교수의 월급은 보통 북한 돈 5000원 정도인데 이것으로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 NK가 16일 밝힌 평양의 쌀값은 1kg당 5810원인데 한 달 월급으로 쌀 1kg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얘기다.

입시생들의 대학입학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단위는 대학 당위원회 ‘간부부’이다. ‘간부부’는 청탁을 막기 위해 사무실 접근 불가를 강조하지만 다양한 방식의 뇌물공작은 꼬리를 잇는다.

김씨는 “북한이 대학 입학 및 추천에서 원격시험체계를 확립하여 입학생 선발에서 공정성·객관성·과학성을 보장하지만, 교원·교수를 비롯한 교육기관 일꾼들의 박봉이 해결하지 않고서는 입시 등 사회 전반에 성행하는 뒷돈과 뇌물에 의한 사회부작용을 근절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kim.suye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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