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에서도 만화에서도.. 위로는 나의 힘

정상혁 기자 2017. 11.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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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서 근무하며 느낀 감정담아 웹툰으로 독자 위로하는 이라하씨

간호사는 환자를 간호한다. 만화가는 독자를 위로한다. 그리하여 간호사 겸 만화가 이라하(여·33)씨는 주장한다. "누구나 마음에 병이 있다. 누구나 어느 날 입원할 수 있다. 치료받을 수 있다. 그걸 알려주려 만화를 그린다."

지난달부터 웹툰 플랫폼 저스툰을 통해 데뷔작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연재하고 있다. 2010년부터 6년간 서울 강남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근무하며 느낀 감정을 옮겼다. "정신병동은 늘 어둡기만 할 것 같지만 거기도 아침이 와요. 실제로 해가 뜨면 분위기가 밝아져요. 치매 환자의 경우 일몰증후군 탓에 어두울수록 과민하거든요." 만화는 정신병동 간호사가 급성 조증(躁症)이나 망상장애 환자 등과 부대끼며 고통을 이해하고 그 고통을 이해하는 데 따르는 고통을 살핀다. '환자의 증상적 행동과 의료진의 감정적 소진까지 너무 현실적인데 따뜻하다'는 댓글 호응이 빗발친다. "병원에서 기질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조현병 기질이 있다더군요. 그래서인지 환자들과 잘 맞았어요.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내 얼굴이 아니라 만화를 봐달라”며 직접 제작한 캐릭터 탈을 쓴 만화가 이라하씨. 이름도 필명이다. /김연정 객원기자

환자를 향한 고찰의 노력은 이 웹툰을 억지 감상주의와 구별 짓는 힘. "환자 중에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들이 있어요. 그럼 '저 사람은 뭐가 부족해 저리 힘들대?' 같은 시선이 따라붙죠. 그건 아닌데." 이씨는 웹툰 1화에 '저 사람은 힘들다고 할 때마다 그런 얘길 계속 들었겠네' 같은 대사를 넣었다. "이를테면 망상장애 환자 중엔 자기 세계에 갇혀 있을 때 가장 행복한 경우도 있죠. 그렇다면 치료를 위해 그 세계를 부수는 게 옳을까요? 그런 고민을 담았어요."

옷 훌렁 벗고 춤추며 오줌을 싸는 여자, 토라져 숨겨둔 간장을 간호사 옷에 뿌리는 환자 등 여러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다만 "특정 환자의 이야기를 재현한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독자 중에 편집증이 강한 환자들이 있어요. 트위터로 '내 이야기 그린 것 아니냐'고 메시지 보내는 분도 있죠. 만에 하나 상처 드리지 않도록 보고 들은 내용을 찢어 픽션으로 붙여냈습니다."

간절히 원했으나 좌절될 때 마음의 병은 온다. 중학생 시절 만화 '드래곤볼'을 보고 만화가를 꿈꿨으나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한 이후 전혀 다른 진로를 걸었다. 결국 올 것은 오고야 마는 법. 지난해 10월 병원 문을 박차고 나왔다. 만화학원을 다녔고 멘토링을 받았다. '평가라도 받아보자' 싶어 투고한 이 작품이 지난 3월 연재 회의를 통과했다. "누구나 자기 세계가 있죠. 그 세상이 깨지는 경험 속에서도 계속 살아나가는 이야기를 위해 이 만화를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최근 그는 서울의 한 호텔에 간호사로 재취업했다. "이번 작품처럼 직장의 일상을 담은 만화를 그려볼까 해요. 다만 이번엔 인사부 소속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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