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글자도 감정 표현이 중요..우리 모토는 '놀 뿐', 놀면서 배우시길"

구교형 기자 2017. 11. 17. 20: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시각디자이너 안상수와 파주시 책마을 ‘파티’

지난 11일 시각디자이너 안상수가 설립한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를 방문한 경향신문 ‘명사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이 건물 외벽에 인접해서 난 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고 있다. 외벽에 그려진 그림이나 장식물 등은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꾸민 것이다. 파주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난 11일 오전 10시50분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기획 ‘명사 70인과의 동행’에 참석한 35명은 경기 파주시 책마을사거리에 있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파티)에서 세계적인 시각디자이너 안상수(65)와 만났다. 파티는 파주(Paju)와 타이포그라피(Typography·글자디자인), 인스티튜트(Institute·교육기관)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합성어다.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1876~1914)이 죽기 직전 일제강점기 때 운영했던 ‘조선어학당’의 이름을 ‘한글 배곳’으로 고쳐 쓴 것에 착안해 순우리말로 ‘멋짓 배곳’이라고도 부르는 ‘디자인학교’다. 5년 전 홍익대 강의를 마지막으로 기성 교단을 떠난 안상수는 2013년 날마다 배움의 ‘축제’가 열리는 ‘파티’를 설립했다.

파티에서는 안상수를 ‘날개(교장)’라고 부른다. ‘스승(교수)’과 ‘배우미(학생)’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게 그의 역할이어서다. “스승이나 배우미들이 저를 부를 때 ‘님’자를 붙이지 않습니다. 교육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권위입니다. 저를 ‘학장님’이나 ‘교수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그 순간 서로의 관계가 결정됩니다. 제일 먼저 돌파해야 하는 부분이 호칭입니다.” 주말인 토요일, 동행인들 앞에 남색 작업복에 빨간 모자 차림으로 카메라를 메고 등장한 안상수는 그 모습 자체가 탈권위였다.

파티 건물 입구에는 작고한 동서양의 ‘큰 스승’을 모시는 작은 사당(祠堂)이 있다. 유리장식장으로 된 사당 안에는 주시경 선생과 세종대왕(1397~1450),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0~1468)의 초상화가 있었다. 1985년 ‘안상수체’를 개발해 한글문화의 혁신가로 불렸던 그가 28년 후에 대안대학으로 설립한 파티의 창학이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동행인들은 건물 1층으로 들어가 나선형으로 된 실내를 돌아 한층 한층 올라갔다. 곳곳에는 ‘현재진행형’인 배우미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작품 감상에 넋을 놓은 사이 어느덧 5층 강의실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안상수와 동행인들의 대화가 시작됐다.

-올라오면서 보니 배우미들이 서예 연습을 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보통 붓글씨를 배운다고 하면 궁체부터 배운다고 합니다. 이곳도 그렇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붓을 잊고 삽니다. 컴퓨터로 모든 일을 합니다. 배우미들이 붓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일부러 궁체 연습을 시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기초로 하다 보면 친숙해지기도 전에 겁부터 먹을 때가 많습니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법부터 충분히 익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계신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환갑 때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파티를 시작했습니다. 제게는 큰 삶의 변화입니다. 어떤 다짐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게 됐습니다. 일본의 한 미술대학에 가보니 화방(畵房)에 색색의 작업복이 걸려있었습니다. 우리 화방에는 작업복 대신 앞치마가 있습니다. 옛날에 여학생들은 아버지의 헌 와이셔츠를 가져와서 걸치고 있었습니다. 옷은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작업복을 입고 있다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겁내지 않을 것입니다. 장갑까지 끼면 ‘다소곳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상수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입구에 유리 장식장으로 만든 사당 안에 모시고 있는 ‘큰 스승’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경기 파주시에 있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둘러보고 있는 참가자들. 이 건물은 포르투갈 현대건축의 거장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것이다. 파주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안상수는 매일 머리 위에 빨간 모자를 얹게 된 사연도 털어놨다. 몇년 전 시베리아 횡단을 할 때였다. 때는 8월 말로 절기상 늦여름이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기온이 25도 정도일 때 기차에 올라 여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하니 비도 내리고 기온은 2~3도여서 춥게 느껴졌다. 러시아인 친구가 그런 사정을 알고 겨울옷과 빨간 모자를 그가 묵고 있던 호텔로 갖다 줬다. 그때부터 빨간 모자를 벗지 않고 3개월간 기차여행을 했다. 때마침 유럽 전역에서는 테러가 극성이었다.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이방인의 빨간 모자는 푸른 눈의 현지인들로부터 어떤 의심도 사지 않았다. 안상수는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빨간 모자를 쓰게 됐다고 한다.

대화가 무르익자 안상수는 메고 있던 카메라를 치켜들었다. 동행인들에게 “한쪽 눈을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일목요연(一目瞭然)”이라고 말했다. 한쪽 눈만 갖고도 충분히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좌중에서는 처음 해보는 경험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왼눈을 가리는 사람과 오른눈을 가리는 사람, 저마다 행동이 가지각색이었다. 그 사이 카메라 셔터는 빠르게 움직였다. 안상수는 붓펜과 메모지를 나눠주고 동행인들의 이름과 연락처, e메일 주소를 받아갔다. 나중에 촬영한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이후 안상수와 동행인들의 문답은 한결 심오해졌다.

-최근에 놀이연구소를 새로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파티에는 몇가지 교시(敎示)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놀 뿐’이라는 모토입니다. 영어로는 ‘Just Play’와 같습니다. 우리의 놀이터는 꽤나 상업화돼 있습니다. 그네부터 미끄럼틀까지 어딜 가도 똑같은 상품입니다. 독일에서 아주 유명한 놀이연구가 한 분이 파티를 방문하셨습니다. 그분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놀이는 기본적으로 위험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위험하지 않다면 아이들에게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놀지 말라고 하는 곳에서만 놉니다. 사실은 그 위험함 자체가 교육입니다. 놀이란 위험에 대한 감각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살면서 얼마나 위험한 일이 많습니까. 심하게 다치지만 않는다면 대부분 약이 됩니다.”

-<직지코드>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직지심체요절(직지)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데 유럽 중심의 역사 때문에 구텐베르크의 업적이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아닙니까.

“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입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했기 때문에 우리가 최고라는 생각은 경계해야 합니다. 독일 마인츠시에 가면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매시간 활자를 만드는 시연을 합니다. 가서 보면 직지의 제작법과 과학적인 구조가 다릅니다. 만일 직지의 기술이 기계적으로 발달했다면 우리 기술이 도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고유 기술은 후대에 없어졌습니다. 타임(미국의 주간지)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변화로 꼽은 게 인쇄술입니다. 여기서 인쇄술은 직지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구텐베르크였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중세를 근대로 이끈 종교혁명을 촉발시켰기 때문입니다.”

안상수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입구에 유리 장식장으로 만든 사당 안에 모시고 있는 ‘큰 스승’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경기 파주시에 있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둘러보고 있는 참가자들. 이 건물은 포르투갈 현대건축의 거장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것이다. 파주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안상수의 구텐베르크 이야기는 예상치도 못하게 세종으로 흘러갔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버금가는 사건이 동시대 한반도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한글의 발명이었다. 안상수는 구텐베르크를 연상하면 직지 대신 세종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서양에서 ‘하드웨어 혁명’이 일어날 때 동양에서 ‘소프트웨어 혁명’이 일어났다고 표현했다. 세종 이전에는 글자를 인간이 직접 디자인한 사례가 없었다. 사물을 본떠 만든 영어와 한자도 마찬가지다. 동행인들은 안상수의 생각에 심취했다. 가을녘 파주시의 적막한 갈대숲을 찾은 한무리의 철새들처럼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안상수는 동서양의 융화를 강조했다.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한국이란 울타리 안에 가두는 것을 경계했다. 더 이상 한국은 작고 소외된 변방국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회·경제적으로 서구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이 시점에 과거처럼 다른 나라보다 한국 문화가 우위에 있다는 식의 국수주의적 사고를 내면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올해 파티에는 프랑스 국립장식미술학교에 다녔던 중국인 학생이 ‘1호 유학생’으로 입학했다. 노르웨이인 4명, 프랑스인 5명 등 바다를 건너온 교환학생도 9명이나 된다.

점심식사 전 안상수는 동행인들에게 각각 한쌍의 가래떡을 나눠줬다. 동행인들과 만난 11월11일은 ‘막대과자의 날(빼빼로 데이)’이기도 하지만 농부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국가가 제정한 ‘농민의 날’이기도 했다. 가래떡은 그가 자주 찾는 파주의 한 떡집에서 주문한 것이었다. 서울에 사는 안상수는 이른 아침 출근길에 매일 새벽 3시 가게 문을 열고 떡을 짓는 이곳에 들러 떡 쪼가리를 얻어먹는다. ‘0에서 0으로’, 파티에서 규율로 정한 ‘3무 정책(무재산·무경쟁·무권위)’을 생활 속에서 몸소 실천하는 듯했다.

정오 무렵 동행인들이 다시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입구에는 293개의 ‘도자기 명패’가 걸려있었다. 세로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명패에는 파티에 다니는 스승과 배우미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 있었다. 국내 최초의 대안대학인 ‘녹색대학’을 설립한 장회익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79)의 이름도 보였다. 장 교수는 경기도 1호 협동조합인 파티의 첫번째 조합원이기도 하다. 떠나는 길에 백범 김구 선생도 파티에서 모시는 ‘큰 스승’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상수는 “김구는 우리 지도자 중 유일하게 이 나라가 문화와 예술로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70인과의 동행 바로가기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