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쪽 지진 매뉴얼' 몸에 밴 일본..6.3 강진에도 피해적어

정욱,박대의 2017. 11. 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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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느껴지면 우선 머리 보호, 책상 밑 숨거나 가방으로 방어
엘리베이터에 있었다면 모든 층 버튼 눌러 일단 내려야
두꺼운 신발신고 발바닥 보호, 가스·전기 차단해 화재예방
평소 생수·식품 등 갖춰놓고 가족들과 대응방안 미리 정해

◆ 포항 지진 충격 / '도쿄방재' 에서 배우는 지진대응법 ◆

"내 행동이 모두를 패닉에 몰아넣고 불필요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명심하라. 침착하고 침착하고 또 침착하라. 걱정된다면 철저히 대비하라."

일본 도쿄도가 내놓은 지진 발생 시 대응 매뉴얼 '도쿄방재'의 핵심 메시지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규모 6.0 이상 지진의 20%가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피해는 적다. 평소의 철저한 대비, 빈틈없는 대응 시스템 구축, 수준 높은 시민의식이라는 삼박자가 갖춰진 덕분이다. 이번 포항 지진보다 강도가 더 높았던 이바라키현 지진(지난해 12월, 규모 6.3) 때 인적·물적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의 철저한 대비의 상징이 도쿄도가 2015년 내놓은 '도쿄방재'다. 340여 쪽의 대응 매뉴얼을 통해 지진 등 재난 발생 시 생길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응법을 꼼꼼하게 적고 있다.

도쿄방재는 지진이 느껴졌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림으로 인해 떨어지는 물건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가능하다면 책상·식탁 밑에 숨는 것이 안전하다. 적절한 공간이 없다면 머리라도 보호해야 한다. 헬멧이 없다면 책가방, 장바구니, 두꺼운 서적, 쿠션, 이불 등 보호장치가 될 만한 것으로 머리나 몸을 감싸는 것이 좋다. 집이나 사무실 등 건물 내부에는 그릇이나 책 등 떨어지기 쉬운 물건이 가장 적은 공간을 평소에 미리 생각해 두면 위기 상황에 도움이 된다.

떨어질 물건이 많지 않은 장소를 택했다면 진동이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 도쿄방재의 추천이다. 화장실 등 밀폐된 공간에서 지진을 느꼈다면 일단 문부터 열어야 한다. 지진으로 인해 문이 파손돼 꼼짝없이 갇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엘리베이터라면 모든 층의 버튼을 눌러 열리는 층에서 일단 내려야 한다.

외부에서도 원칙은 동일하다. 유리창이나 간판, 전선 등 건물 주변의 일상적인 물건들이 언제 흉기로 돌변할지 알 수 없는 만큼 건물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위쪽에서 떨어지는 물건을 확인하는 일이다. 도쿄방재는 침착하게 낙하물을 확인하면서 넓은 공간으로 움직일 것을 권하고 있다. 특히 사람이 많을수록 침착해야 한다. 한 사람이 겁을 먹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에게 공포가 전염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영화관·지하철 등 출구가 좁은 공간에 있을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얘기다.

운전 중이라면 천천히 속도를 줄여 차를 갓길에 세워야 한다. 급히 세웠다가는 오히려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어서다. 차량을 세운 뒤엔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나오는 것이 낫다. 이때 차량 열쇠는 차 안에 놔둬야 한다. 소방차 등 재난구조 차량 등의 이동에 방해가 되면 차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터널 안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진동이 사그라들었다면 일단 밑창이 두꺼운 신발부터 구하는 게 낫다. 유리나 건물 외벽 파편 등으로부터 발바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을 없애야 한다. 가스밸브를 잠그고 전기를 차단했다면 이제는 탈출로 확보를 위해 현관문이나 창문 등을 열어놓을 차례다.

만약 지진으로 인해 갇혔다면 체력을 아껴야 한다. 무턱대고 고함을 지르기보다는 진동이 사그라들 때를 기다려 단단한 물건으로 벽이나 문을 치는 것이 낫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그때부터 고함을 질러도 늦지 않다. 진동이 잦아들고 피신하기로 결정했다면 자신이 언제 어디로 갈지에 대해 메모 등을 남겨놓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또 피신 과정에서 언제든 다른 사람을 돕는 시민의식도 도쿄방재가 강조하는 내용이다.

도쿄방재는 지진에도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평소의 대비라고 강조한다. 언제든 위기 상황에 견딜 수 있도록 생수와 식품, 비상등, 헬멧 등 비상용품을 갖춰놓고 또 가족과 비상시 대응 방안을 정해놓는 식이다. 도쿄방재가 책의 부제로 '지금 대비합시다'를 내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개인 차원의 대비·대응과 정부 차원의 '꾸준한' 제도 개선도 중요하다.

일본이라고 지진에 대해 처음부터 대비가 잘 갖춰졌던 것은 아니다. 대형 지진을 겪을 때마다 대비 수준을 높인 결과, 피해가 줄고 있다. 일례로 건물에 내진설계 규정이 대폭 강화된 것은 1995년 고베 일대에서 발생한 한신대지진(규모 7.3) 이후다. 당시 6400명의 사망자 중 80%가량이 건물에 깔려 숨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내진 규정이 강화됐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 건물 붕괴 등으로 인한 피해자가 적었던 것도 내진 설계 등이 정착된 덕분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 85%가량의 건물이 채택한 내진설계를 2020년에는 9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 때 '미사일보다 빠른 경보'로 이름을 알린 '제이얼라트(J Alert)'도 원래 목적은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한 경보다. 이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 미사일보다 더 빠른 대응이 가능해졌다.

[도쿄 = 정욱 특파원 / 서울 =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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