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사진관]시각장애 화가의 손끝으로 희망을 그리다!

장진영 2017. 11. 16.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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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환(59)은 앞을 보지 못한다. 사고로 양쪽 시력을 잃었다. 시각장애 1급으로 밝은 빛에도 전혀 반응하지 못한다.

사고 전에도 그는 화가였다. 동양화를 그리다가 서양화로 바꿨다. 7년 동안 화실에 은둔하며 그림만 그렸다. 2012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서양화 개인전을 열었다. 캔버스에 나무나 유리를 붙이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갔다. 이듬해에는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아트페어’에도 초청됐다. 화가로서 탄탄대로였다.

화가 박환은 시력장애 1급으로 앞을 전혀 볼 수 없다. 손끝의 감각으로만 그림을 그린다. 지난 9일 강원도 춘천시 작업실에서 박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박 씨의 작업공간. 장진영 기자
갑작스레 교통사고가 났다. 얼굴은 산산조각이 났고 머릿속에는 시한폭탄 같은 혈전이 생겼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동의서를 쓰고 두 차례의 큰 수술을 받았다. 보호자인 여동생 박수희 씨(57)는 의료진에게 오빠 생명과도 같은 눈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사고 당시 왼쪽 눈 시신경이 끊어졌고 수술을 여러 번 거치며 반쯤 남아있던 오른쪽 눈의 시력도 잃게 됐다. 손상이 심했던 얼굴 왼쪽은 마비가 되어 청력이 떨어지고 혀에 감각도 없는 상태다. 퇴원할 때 주치의는 “중도실명자는 본인이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것이다. 성격이 난폭해지거나 은둔형 생활을 할 가능성이 크니 가족들의 절실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깜깜한 집으로 돌아왔다. 여동생은 한동안 그에게 완전 실명 상태를 알리지 못했다.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거라고 다독였다.
박 씨는 오후부터 새벽까지 쉬지 않고 작업하는 편이다. 채색 위주의 작품을 할 때는 이젤 앞에서 작업하지만 캔버스에 나무를 붙이는 중이라 바닥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박 씨의 왼편에는 산에서 주워온 나무껍질이 종류별로 구분되어 있다. 여동생과 산에 올라 직접 선별해서 가지고온 것들이다. 장진영 기자
작업실을 찾은 9일 박 씨는 4시간이 넘게 캔버스위에 나무껍질로 다리를 표현하는데에만 열중했다. 장진영 기자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좌절만 남아 있었다. 앞을 볼 수 없는 화가는 거실에 웅크리고만 있었다. 삶을 저버릴 생각도 했다. 여동생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다 차 소리가나는 방향으로 달려들까… 11층 아파트에서 다섯만 세고 뛰어내릴까… 다행히 시도는 실패했다. 어느 날 여동생이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볼 수 없는 사람에게 그림이라니. 화가 나고 황당한 그는 “그럼 네가 눈을 감고 그림을 그려봐!”라며 소리쳤다. 어차피 안될 거란 생각에 바닥에 연필과 스케치북을 놓고 삐뚤빼뚤하게 동그라미, 선, 이름을 그려봤다. “거봐! 되잖아!”라는 여동생의 응원이 이어졌다. 그림을 그리니 이상하게 나쁜 생각이 사라졌다. 오로지 그림 생각만 났다. 이것저것 그리며 오랜만에 ‘완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이 한 장 한 장 쌓일 때마다 달라졌다는 여동생의 평가는 그를 다시 그림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캔버스에는 구도에 따라서 수십 개의 핀이 꽂아져있다. 손끝으로 모든 위치를 기억한다. 장진영 기자
나무껍질을 이용해서 작업중인 그의 작업실에는 은은한 나무향이 가득했다. 장진영 기자
이듬해 봄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사고로 시력을 잃은 지 5개월 만이다. 보면서 그릴 수 없으니 무명실을 잘라 캔버스에 붙이며 밑그림을 그리고 경계점마다 핀을 꽂아 손끝으로 구도를 외운다. 손가락으로 물감을 찍어 채색한다. 칸막이로 되어있는 물감통의 순서를 기억해 색을 섞고 칠한다. 다른 물감끼리 섞으면 어떤 색이 나온다는 걸 상상하지만, 그 색이 정확하게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간혹 실수로 엉뚱한 색을 칠하기도 한다. 그는 동시에 6~7개를 그린다. 캔버스 위 물감이나 붙인 소재들이 마르는 시간이 필요해서다. 일반 화가들은 덜 마른 부분이 있으면 피해가며 작업하면 된다. 그렇지만 건조가 덜 된 작품을 만지다 망가질까 봐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이 더 걸리는 셈이다. 어제 만난 사람과 밥상의 반찬 등은 잘 기억 못 하지만 작업 중인 캔버스가 놓인 위치와 그 위에 꽂혀 있는 핀 개수는 정확하게 외우고 있다. 손끝으로 기억하며 작업한다.
그의 왼편에는 동시에 작업중인 캔버스 여러개가 놓여져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 9일 강원도 춘천에 있는 그의 집이자 작업실을 찾았다. 현관문을 열자 은은한 나무 향이 났다. 산에서 주워온 나무껍질을 캔버스에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고목 나무를 만들고 있다 했다. “작은 조각 여러 개를 이어 붙이다 보면 신기하게도 모양새가 맞춰져요. 나무 위에는 새싹을 그릴 예정이에요. 희망과 살고 싶은 의지의 표현이랄까요? “그림을 그릴 때 정확한 구상은 하지 않는다 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 작업의 발상이 저절로 떠올라요. 오솔길을 그리면 굴뚝이 있는 집이, 그리고 나무를 같이 그려야겠다는 생각이죠.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거 같아요”
고향집. 박환 作. 사고전에 그린 그림. [사진 박수희]
외딴집. 박환 作. 사고후에 그린 그림. [사진 박수희]
깊은 산 속. 박환 作. 사고후에 그린 그림. [사진 박수희]
시각장애 화가로 2막의 삶 동안 약 3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지난 1월에는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라는 제목으로 개인전도 열었다. 개막일에만 60~70여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대부분 시각장애인이 그린 것을 모르고 온 사람들이었다.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대단하다는 말을 하며 그를 붙잡고 희망을 줘서 고맙다고 했다. “전시 후에 그래도 내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후론 더 작품에 매진했죠.” 사고전과 비교해 그림 풍이 많이 달라졌다는 평을 들었다. 이전에는 큰 사건이나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주로 다뤘지만, 지금은 삶을 희망적으로 표현하는 것들을 그리고 있다. “제 작품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지만, 그중 열린 지퍼 사이로 풍경이 보이는 ‘열린 마음’을 가장 좋아해요.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들에게 지퍼를 열듯이 마음을 열면 아름다운 세상이 보인다는 말을 하고 싶었죠”
박 씨가 고목나무를 표현하고 있다. 굵은 실을 이용한 스케치후 청바지를 붙여 두껍게 만들고 작은 나무조각을 이어 붙이는 방식이다. 장진영 기자
나무 조각이 캔버스에 잘 붙기 위해선 적당한 건조가 필요하다. 본드칠 후 300번을 흔들어 말려야 한다. 그는 모든 조각을 그렇게 붙이고 있었다. 장진영 기자
물감이 놓인 각도와 위치, 붓과 팔레트 등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의 위치도 외우고 있다. 장진영 기자
굵기가 다른 실을 이용해 밑작업을 한다. 장진영 기자
복숭아밭. 박환 作. 사고후에 그린 그림. [사진 박수희]
남들보다 몇 배는 더딘 작업이 외롭고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예전에는 유명해지고 부유해지고 싶었어요. 이렇게 되고 나니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그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오로지 그림으로만 희망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어요. 대부분의 작업 내용도 행복과 희망에 관한 내용이죠.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거예요. 같이 잘 살아가야죠” 그는 손끝으로 희망을 그린다.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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