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발생률 겨우 5%.. 코끼리에서 '항암 비결' 배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17. 11. 1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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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大, 새 항암유전자 발표

덩치 커서 세포수 많은 코끼리

암 발생률은 사람의 10분의1

암세포 자살로 이끄는 유전자

작동 스위치 없어 쓸모없었지만

세포수 급증하며 다시 부활

암의 원인이 되는 초위성체

진화과정에서 대폭 줄어들어

암은 세포 분열 도중에 일어나는 DNA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다. 그렇다면 덩치가 커 세포 수가 많은 동물일수록 암에 더 잘 걸려야 한다. 하지만 사람보다 훨씬 큰 코끼리는 암 발생률이 5% 미만에 그친다. 사람은 33~50%이다.

코끼리가 암에 강한 이유는 뭘까? 과학자들은 코끼리의 강력한 항암 유전자를 잇따라 찾아내고 있다. 코끼리는 덩치를 키우면서 기능이 정지된 암 유전자를 다시 살려내고 기존의 항암 유전자는 수를 크게 늘린다는 것이다. 코끼리 연구는 암 환자 치료에도 큰 도움을 줄 전망이다.

◇암세포 죽이는 '좀비' 유전자

1970년대 영국 옥스퍼드대의 리처드 페토 박사는 동물원이나 자연에서 죽은 코끼리를 부검해 암으로 죽은 개체가 5% 미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코끼리는 세포가 인간보다 100배나 많다. 이후 과학자들은 코끼리나 고래처럼 덩치가 큰 동물이 암에 덜 걸리는 현상을 '페토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미국 시카고대의 빈센트 린치 교수는 지난 5일 페토의 역설을 설명해줄 새로운 항암(抗癌) 유전자를 발표했다. 린치 교수는 "코끼리의 항암 유전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다가 진화 과정에서 코끼리의 덩치가 갑자기 커졌을 때 다시 살아났다"며 "마치 '좀비'처럼 되살아난 항암 유전자가 코끼리를 암에서 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에는 '백혈병 억제 인자(LIF)'라는 유전자가 있다. 코끼리나 가까운 친척뻘인 바위너구리·아르마딜로·땅돼지에는 이 유전자가 사람보다 10배 이상 많다. 하지만 유전자를 작동시키는 일종의 스위치가 없어 무용지물이다. 단 하나 코끼리의 'LIF6' 유전자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린치 교수는 실험을 통해 LIF6이 암세포를 자살로 이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LIF6을 작동시킨 스위치는 'P53'으로 불리는 또 다른 항암 유전자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P53과 LIF6의 결합은 현재 코끼리와 매머드 같은 코끼리의 조상들에서만 나타났다. 결국 LIF6 역시 유전자 작동 스위치가 없어 오랫동안 버려졌지만, 약 3300만년 전 코끼리의 세포 수가 급증하면서 암세포 킬러로 부활했다는 것이다.

◇이상 DNA 줄이고 항암 유전자 늘려

코끼리가 암을 이기는 무기는 또 있다. 먼저 암이 생길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지난해 박중연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은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포유류 31종의 유전자를 분석했더니 몸무게가 무거울수록 DNA에 같은 부분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초위성체(超衛星體·microsatellite)가 적었다"고 발표했다. 이를테면 사람은 성인 평균 체중 65㎏에 약 60만개의 초위성체가 있지만, 몸무게가 5000㎏을 넘는 밍크고래는 약 46만개에 그쳤다.

초위성체는 돌연변이 발생률이 다른 곳보다 높다. 박 연구관은 "고래나 코끼리와 같은 대형 포유류들은 진화 과정에서 암의 원인이 되는 초위성체를 줄이는 조절 능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LIF 유전자를 되살렸던 P53항암 유전자도 코끼리에서 수가 월등히 많다. 2015년 미국 유타대의 조슈아 시프먼 교수는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에 "사람은 암 억제 유전자인 P53이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하나씩 받아 2개 있지만 코끼리는 무려 40개나 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코끼리와 사람, 그리고 P53에 돌연변이가 생긴 환자의 세포에 각각 방사선을 쏘아 암세포를 만들었다. 나중에 암세포가 죽는 비율을 알아보니 코끼리는 14.64%, 정상인 7.17%, 유전병 환자 2.71%였다. 코끼리 세포에 무더기로 있는 P53유전자가 암세포를 죽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코끼리가 가진 항암 능력은 자손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한 본능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코끼리는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임신 기간이 22개월로 길다. 또 한 번에 보통 1마리만 낳는다. 결국 자손을 늘리려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출산을 해야 한다. 코끼리는 암을 이길 수 있도록 유전자를 변화시켜 수명이 인간과 거의 비슷하면서도 암에 걸려 죽는 비율은 인간보다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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