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진의밀리터리S] 대응사격, 상황보고 지연보다 더 큰 문제는?

박병진 2017. 11.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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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 우리측 구역으로 생사를 건 탈출을 감행한 북한군 병사가 아주대 수술실에 누워 있다. 수술실과 병실 주변은 관계당국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하는 북한군 병사를 향해 40여발의 총격을 가했음에도 우리 군이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북한군이 남쪽을 향해 수십발의 총격을 가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었느냐. 우리도 응사(應射)를 했어야 했다”는 주장을 편다.

그렇지만 북한군 병사의 귀순 당시 북한군이 우리 군 초소를 향해 지향사격 내지는 도발을 했다는 어떤 징후도 포착되지 않았다. 낙탄(落彈)이 우리 군 초소에 떨어진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응사는 오히려 남북한 간의 우발적 군사충돌 가능성을 높인다고 할 수 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도 “(대응사격은) 북한군이 우리 군 초병을 향해 사격을 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자위권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 의원이 전날 발생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한군 귀순 상황 현안 보고 내용을 살피고 있다.
 
송영무 국방 장관이 1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전날 발생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한군 귀순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상황보고가 지연된 것은 문제일 수 있다.

합참에 상황이 처음 접수된 것은 귀순 병사가 발견(오후 3시14분)된 지 19분이 지난 오후 3시33분이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는 무려 1시간7분이 지난 오후 4시21분에야 내용이 전달됐다. 서욱 합참 작전본부장은 14일 국회에서 “상황보고가 지연된 것은 사실이다. 현장 판단에 시간이 걸렸다”며 “장관에게 보고가 늦어진 데에는 저를 포함한 실무진의 과오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선조치 후보고’가 강조되는 접적지역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대응사격과 상황보고 지연보다 더 큰 문제는 오히려 귀순 병사를 식별하고 구출작전을 펼친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총탄을 맞고 쓰러진 귀순 북한군 구출작전에 뛰어든 것은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 우리 군 지휘관인 대대장(중령)을 포함한 간부 3명이었다. 무소속 이정현 의원은 14일 국방부의 현안보고때 “이번에 영웅이 있었다. 적이 40발의 총을 쏘는 상황에서 대대장이 포복으로 기어가 귀순하는 사람의 신병을 확보한 투철한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치켜 세웠다. 누구든 총탄이 쏟아지는 사지(死地)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한다면 박수를 칠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전술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군사적 측면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병사들 없이 간부들만 있었다면 모를까, 이날 구출작전은 분명 병사들에게 맡겼어야 했다. 병사들을 총알받이로 내몰라는 얘기가 아니다. 지휘관과 병사의 임무가 명확하게 구분지어져 있어야 하고, 이는 유사시 전투력 발휘에서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정이지만 13일 북한군이 쓰러져 있는 귀순 북한군에게 접근하는 JSA 대대장 등을 조준사격해 이들이 희생됐다면 남북군 간 교전은 불가피했을 수 있다. 귀순 북한군을 구하려고 뛰어든 지휘관의 행동은 무책임하며, 무모한 만용(蠻勇)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대장과 간부들은 JSA 경비대대를 지휘하는 책임자다. 지휘에 허점이 생길 경우 경계와 전투에서의 패배는 자명하다.

JSA 경비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군인이다. 북한군과 초근접 대치상태에서 유사시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전투력은 기본이다. 초록색 군복에 각을 세우고 부동자세로 위압감만을 주는 로봇이 아닌 것이다.

군은 대대장이 구출작전에 투입된 배경으로 마침 사건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전술적 상황조치와 군사작전의 기본을 넘어선 행동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신원식 전 합참차장은 “자칫 병사들을 투입해 사고가 날까봐 대대장을 포함한 간부들이 임무 경계를 무시하고 구출작전에 나섰을 수 있다”면서 “대간첩작전 등 과거 군사작전이 벌어졌을때도 늘상 장교들이 앞장섰고 희생된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JSA에 근무했던 한 예비역 장교는 “작전과 임무의 기본도 모르는 조치였다는 점에서 구출작전을 무턱대고 치켜 세울 일은 아닌 듯 싶다”고 지적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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