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북한, 올해 말까지 남한과 상대 안 한다고 했다"

김지영·구민주 기자 입력 2017. 11. 1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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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文 정부의 대북특사 파견 좌절' 비화 소개한 정세현 前 통일부 장관

한반도 주변 정세가 여전히 급박하고 불안하다. 20년 넘도록 북핵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정부 9년 동안 한반도 긴장 지수는 더 치솟았다. 그마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남북 관계는 실타래가 더 꼬인 형국이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방한했지만 북핵을 빌미로 무기 보따리만 잔뜩 풀어놨다. 우리에겐 생존이 달린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잇따라 통일부 수장을 역임한 정세현 전 장관을 11월9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평화협력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1시간30분 동안 정 전 장관은 한·미 정상회담과 북핵 문제, 우리 외교·안보 라인 등에 대해 비교적 거침없이 피력했다. 특히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대북특사를 파견하려고 했다가 미국이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좌절됐던 비화(秘話)를 자세히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 외교·안보 라인의 대미 공포증을 지적하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은 북측을 향해서도 “문재인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 무기를 사주면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틈새를 벌려 놨다”며 “이게 앞으로 북한한테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현 전 장관 © 시사저널 박정훈

 

한·미 정상회담과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어떻게 봤나.

“정상회담 자체는 우리가 크게 손해 본 건 없는 것 같다. (미국산) 무기를 산 건 돈이 나가는 일이기 때문에 손해 본 것 같지만 어차피 미국 무기는 사야 한다. 금년 국방 예산 400억 달러 가운데 40억 달러는 무기 구매 비용이다. 그보다 더 준다 해도 첨단 무기를 사기로 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 정찰기 등으로 북한 군사 동향을 우리가 직접 수집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전시작전권 환수를 위해선 그 정도는 해 놔야 한다. 돈 나가는 것 생각하면 아까울 수 있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보면 전작권 환수를 위한 준비나 투자일 수 있다. 무기를 팔아주는 대신 우리는 외교 지평을 확대하면서 운신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한·미 간, 한·중 간 균형외교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대미 일변도 외교에 거리를 두는, 외교 다변화를 이뤘다고 본다.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개선하겠다는 한·미 간 합의가 있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무기 사주고 그걸 끌어냈다면 다행인 거다.”

우리도 실리를 챙겼다는 의미인가.

“한·중 관계를 복원할 수 있게 되면 결국 사드 문제로 인한 중국의 경제보복도 완화된다. 그러면 우리가 거둬들이는 경제 이익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무기 수십억 달러 사줬다고 자랑하겠지만 우리가 사드 보복으로 받은 경제적 손해를 다시 만회한다면 그보다 더 많은 경제 이익을 거둬들일 수 있지 않겠나. 트럼프는 무기 팔아서 (미국에) 일자리 만들어 지지세력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사드로 인한 경제 불이익을 만회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윈-윈(win-win)한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우리가 크게 손해 본 것 없다”

미국 무기를 구매하면 북한을 자극해서 더 경색 국면으로 갈 수도 있지 않겠나.

“그대로 놔두면 걱정대로 된다. 우선 방어정찰용 무기 구입이라 해도 북한을 의식한 구입이란 점에서 북한은 감시받는 입장이다. 북한이 남한의 장비 도입으로 생기는 불이익을 만회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을 더 많이 생산한다든지, 일종의 군비경쟁 늪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무기 구입이 북한을 압박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방어 차원에서 하는 거라는 점을 잘 설득해야 한다. 북한을 압박하기보단, 북한이 핵과 미사일 기술 고도화를 통해 미국과 일전을 불사하겠단 자세로 못 나가도록 한·중, 한·러 관계를 활성화해야 한다. 그러면 북한도 우리가 무기를 사지만 그걸로 자신들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아직 유효하다고 보는가.

“유효하다고 본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은 평화협정을 보장하지 않으면 비핵화 못하겠다고 한다. 어차피 동시에 맞바꿔야 할 일이다. 북한은 먼저 (비핵화) 해 놓으면 뒤통수 맞을 거란 불안감을 늘 갖고 있다. 북한이 그런 의구심을 갖게 된 사례가 리비아와 이라크다. 미국은 리비아에 ‘비핵화하면 경제 지원 해 주겠다’ ‘카다피가 둘째 아들한테 권력 승계하는 것도 묵인하겠다’ 했다. 그래서 비핵화했더니 (카다피 정권을) 그냥 쳐버리지 않았나. 이라크도 핵무기 없는데 있다고 전제하고 쳐들어간 것 아닌가. 뒤져보니 핵무기가 없었다. 후세인이 학살을 했다는 등으로 재판한 걸 북한도 똑똑히 봤다. 핵개발이란 누명을 씌우고 군사 공격한 뒤 나중에 전혀 다른 명목으로 지도자를 없애는 걸 봐왔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에 의구심을 갖는 거다.”

9월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문재인 정부, 남북관계 경색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한반도평화포럼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목사들, 7월 독일서 북측 인사들 만나”

문재인 정부도 처음엔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겠다’고 했다가 지금은 ‘제재와 압박’ 기조로 가고 있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못 믿는 것 아닌가.

“바로 그거다. 그걸 이제 바꿔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가 되려면 북핵 문제 해결 단초를 한국이 주도해서 열어야 한다. 지금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만 얘기하고 문재인 정부도 똑같은 소리를 한다. 이젠 미국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둬야 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금과 같은 논리로 계속 가선 안 된다. 아직도 ‘중국과 러시아도 대북 압박에 동참하라’고 목소리 내고 있지만 그렇게는 해결이 안 된다. 왜냐하면 북한은 압박과 제재로 굴복할 DNA를 갖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북한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10% 정도로 낮다. 대외적인 경제 압박이 그들의 항복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생각 자체가 판단 착오다. 어차피 제재와 압박으론 안 된다는 논리를 문재인 정부가 자신의 입장으로 표명해야 한다. 그걸 갖고 중국이나 러시아와 협조해서 북한에 ‘평화협정부터 먼저 보장하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설득해야 한다. 한·미 연합훈련도 전면 중단까진 아니어도 규모 축소까지 할 수 있는 거다. 중국과 러시아가 그런 식으로 북한을 설득하고, 우리는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어떤 전제를 걸기 시작하면 비핵화와 평화협정 얘기로 다시 돌아간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평화실현 5대 원칙(▵한반도 평화정착 ▵한반도 비핵화 ▵남북 문제의 주도적 해결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북한의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나 3NO 정책(사드 추가 배치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에 불참하고,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겠다) 등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우리 행동에 대해 북한이 의미 있는 언급을 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 이유는 뻔하다. 우리가 너무 미국이랑 똑같은 소릴 하니까. 자기 목소리도 못 내는 사람들하고 무슨 얘기를 하겠는가. 솔직히 나는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 많은 기대를 했다고 본다. 실제로 (북측으로부터) 그런 사인(sign)도 있었다.”

어떤 사인이 있었다는 건가.

“사실 특사가 대통령선거 직후인 5월에 (북한에) 갔어야 했다. 우리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특사를 보내지 않았나. (4개국을) 갔다 와서 바로 대북특사를 보내는 식으로…. 북한도 기대했을 거다. 북한에서 ‘(특사가) 올 줄 알았는데 안 왔다’고 얘기한 걸 나중에 들었다.”

‘특사가 올 줄 알았는데 안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5월, 6월 거치며 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똑같은 말을 하면서 남북 관계가 경색돼 갔다. 국제회의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했다. 내가 직접 (북한 사람들을) 만난 건 아니다. 7월8일 독일에서 WCC(세계교회협의회) 회의가 있어 거기에 북한에서도 나왔다. 우리 쪽 목사님들이 그날 북한으로부터 최후통첩 같은 걸 받았다. ‘올해 말까지 우린(북한은) 당신들과 상대 안 한다. 미국과 끝장 보기 위해서 우리 길을 간다’고. ‘괜히 남북 관계 어설프게 하다가는 우리(북한) 전략에 차질 있으니까, 당신들이 도와주려는 거 고마운 일인데 그런 거 필요 없다’고. 그러면서 ‘조국(북한)에서 온 지시입니다’라고. 북한은 정부 방침이 정해지면 외국에 나와서도 그대로 얘기한다. 그러니 개인 의견은 아니었던 거다.”

북한이 대북특사가 오길 기대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겠다고 했고, 북핵 문제는 (2005년 제4차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북한은 남북 관계를 중심축에 두고 한반도 문제를 풀겠다는 사람이 대통령 됐으니 확실하게 남북 관계 세팅하고 자기네들 외교를 전개해 나가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한국 특사가 4개국을 다 돌고 평양에 온다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자기네들이 감지할 수 있고, 그걸 토대로 남북이 앞으로 어떤 관계를 설정해 나갈지, 남한의 힘을 빌려서 자기들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지 전략도 세울 수 있지 않았겠나. 그러나 (대북특사가) 가지 않았다.”

“외교·안보 라인에 대미공포증 환자들 있다”

우린 대북특사를 준비하지 않았나.

“준비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조금 난색을 표한 모양이다. 북한에 잘못된 사인을 줄 수 있다고. 트럼프 입장에선 북한을 압박해야 하는데, 남쪽에서 특사를 보내면 유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거다. 북한이 계속 방자하게 나갈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한·미 정상회담 후에나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권고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게(대북특사) 좌절됐다. 한·미 정상회담 후에 나가는 쪽으로 (결정)됐다는 얘기가 돌아서, 내가 어느 세미나에서 ‘청와대에 미국 눈치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게 기사화됐다. 그랬더니 청와대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 섭섭하다고. 잘 아는 사람끼리 왜 그러냐고.”

현재 남북 경색 국면을 풀기 위해 우리 외교·안보 라인이 움직이고 있다고 보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 외교·안보 라인의 발상이나 상상력 자체가 어떻게 보면 좀 화석화돼 있다고 할까.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큰일 난다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얘기한 것처럼 일종의 대미공포증 환자들이 좀 있는 것 같다.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지극히 당연한 건데도 불구하고 다른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대북특사가 못 가면서 북한이 많이 서운했던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베이징에 북한 당국자들과 자주 얘기하는 내가 아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한테도 많이 들었다. 그쪽(북한)에서 섭섭해했다고 말하더라. 문재인 정부에 기대했는데 완전히 미국과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서 기대할 게 없다고.”

북한이 현 정부에 등을 돌렸다고 보나.

“북한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지 아직 모르겠다. 그런데 북한이 알아야 할 게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 무기를 사주면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틈새를 벌려 놨다. 이게 앞으로 북한한테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행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몇 가지 워딩(발언)만 보고 험악한 말을 쏟아내거나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란다.” 

김지영·구민주 기자 young@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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