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의 어쩌다 투자] 빗썸 사고, "보상해야" vs "투자는 본인 책임"

고란 입력 2017. 11. 15. 01:01 수정 2017. 11. 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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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썸 서버 다운으로 5000여명 피해 주장
"거액 챙기면서 투자자 보호 안 해" 비난
거래소는 금융회사 아니라 통신판매업자
일부선 "과실로 인한 피해 보상 가능"
서버 닫고 몰래 자사 물량 팔았단 음모론엔
빗썸 "점검 시간엔 거래 전혀 없었다" 주장
암호화폐 거래소 규제 목소리 나오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조차 안 된 상황
"규제 보다는 시장 원리 맡겨 자정해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를 사고파는 거래소의 서버 접속 장애로 거래가 중단돼 피해를 봤다는 투자자들이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거래 중단 직전 가격보다 거래 재개 직후 가격이 30% 급락했기 때문이다.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소송 준비 이틀 만에 50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모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하필’ 최고점에 서버 다운=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암호화폐 거래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현행법상 금융회사가 아니다. 인터넷으로 물건(암호화폐)을 사고파는 걸 중개하는 ‘통신판매업자’일 뿐이다. 외견상으로는 주식을 중개하는 증권회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1번가나 G마켓 등 오픈마켓과 유사하다.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말이나 공휴일 문을 닫는 주식 거래소와 달리 암호화폐 거래소는 1년 365일 문을 연다. 개장 시간도 오전 9시~오후 3시 30분(한국 기준)이 아니라, 24시간이다. 상하한가 폭도 없다. 삼성전자 보통주가 한국거래소에만 상장된 것과는 달리, 비트코인은 국내 거래소는 물론이고 전세계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다. 미국으로 100만원을 송금하려면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고 국내 은행과 미국 현지 은행 등을 거쳐야 하는 등 복잡하지만 1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미국으로 송금하는 건 받는 사람의 지갑(계좌) 주소만 알면 된다.

소송의 발단이 된 건 비트코인캐시다. 비트코인의 거래 처리 용량을 업그레이드 하는 방법을 놓고 개발자들과 채굴업자들 간에 의견이 갈렸다. 그래서 지난 8월 업그레이드(일명 하드포크) 때 비트코인이 쪼개졌고, 채굴업자들 주도로 비트코인캐시가 탄생했다.

최근 세계 최대 파생상품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연내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했다.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지난 8일(현지시간)엔 7879.06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이날 당초 16일로 예정돼 있던 비트코인의 블록 사이즈를 두 배로 늘리는 하드포크를 잠정 보류한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비트코인 매물이 쏟아졌다. 대신 투자자들은 13일 하드포크가 예정됐던 비트코인캐시로 투자금을 옮겼다(암호화폐 투자자들은 하드포크를 호재로 인식한다).

비트코인캐시는 비트코인 시가총액의 5분의 1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됐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데 사자세가 들어오면서 가격이 11일부터 급등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11일 0시 93만4000원에 거래된 비트코인캐시 가격은 24시간 뒤인 12일 0시엔 138만원으로 뛰었다.

갑자기 가격이 오르면서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매수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12일 오후 4시가 좀 못 돼선 280만원을 돌파했다. 이날 오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0위권에 들기 시작했던 비트코인캐시는 4시 경엔 실검 1위에 올랐다. 이 시간을 기준으로 한 24시간 거래량은 4조원을 웃돌았다. 당시 빗썸 혼자 처리하는 비트코인캐시 거래량은 전 세계 거래량의 절반에 육박했다.

그렇게 가격이 정점을 찍었을 때 갑자기 빗썸의 서버가 다운됐다. 매수 매도를 위한 호가창이 아니라 ‘현재 서버 점검중 입니다’는 안내문이 떴다. 아예 거래소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으니, 빗썸에 사 뒀던 비트코인캐시를 팔 수도, 이걸 다른 정상 운영되는 거래소로 송금할 수도 없었다.

거래량의 절반이 몰렸던 빗썸에서 거래가 중단되자, 국내외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다른 거래소의 비트코인캐시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빗썸에 비트코인캐시를 보유한 이들은 가격이 급락하는 걸 보고도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거래 중단 직전 283만9700원이던 비트코인캐시 가격은 197만2500원에 거래가 재개됐다. 매물이 쏟아지면서 한때는 25만원까지 밀리기도 했다.

◆금융회사도 아닌데 보상받을 수 있나=소송을 진행하는 온라인 카페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집단소송을 위해 소송 참여자와 피해 증거를 모으는 중이다. ‘서버 중단 직전의 가격과 서버 재개 직후의 가격 사이의 차액’을 청구금액으로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A법무법인의 변호사는 “거래소가 금융회사가 아니더라도 고의뿐만 아니라 과실·중과실로 인한 피해금은 민법 조항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다”며 “이전에도 여러 차례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다운된 적 있었는데 대비를 안 했다는 건 빗썸에 책임을 충분히 물을 만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투자자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지점은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챙기면서도 투자에는 인색했다는 점이다. 현재 빗썸의 수수료는 거래대금의 0.15%다. 하루 거래량을 1조원으로만 잡아도 하루 영업이익이 15억원이 생긴다. 한달이면 450억원에 달하는 돈이다.

빗썸 관계자는 “서버 접속 장애가 왜 일어났고,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회사 입장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과는 별개로 현재 사각지대에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 금융당국이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도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거래소를 규제하는 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금의 거래소는 거의 도박장 수준의 투기가 판 치는 곳”이라며 “안전한 거래소를 만들어 달라는 건 도박장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보안 등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는 거래소에는 은행이 가상계좌를 제공하지 않거나, 거래소 협회를 만들어 자율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아직까지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 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사태가 재발되는 것을 막는 길은 규제가 아니라 시장 원리"라며 "문제를 일으키는 거래소와는 거래하지 않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 거래소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운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빗썸은 서버 접속 장애에 따른 거래 중단 사태에 대한 설명 자료를 15일 내놨다. 동시 접속자 수가 평균의 1600~1700%에 달하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서버에 과부하 걸려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는 설명이다.
출처: 빗썸
고객의 동의 없이 대기 중인 거래를 일괄 취소 조치한 것에 대해서는 “고객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빗썸 측이 ‘긴급 서버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일부러 서버를 닫고 자사 물량을 팔아치운 것 아니냐는 의혹에는 “점검 시간대에 거래된 물량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빗썸이 투자자들의 의문점을 정리해 내놓은 일문일답.

Q : 서버 접속 장애가 왜 일어났나 A : “12일 오후 4시쯤 글로벌 거래량이 늘면서 빗썸의 거래량이 폭증했다. 서버에 과부하가 생겼다. 장애가 발생한 당시 동시 접속자 수는 평균의 1600~1700%나 됐다. 이날 거래량은 10월 평균의 800~900%에 달했다. 서버에 전송되는 데이터 양인 트래픽도 평균보다 500% 많은 2.25~3Gbps 수준이었다. 기존 용량으로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Q : 서버가 다운된 원인은 무엇인가 A :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세는 단일 거래소 차원이 아닌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의 시세변동에 영향을 받는다. 12일 글로벌 시장에서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락을 보이면서 빗썸으로도 거래가 폭주했다. 외신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12일 새벽부터 비트코인 매각 자금이 비트코인캐시의 매수 자금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이에 8000달러 선을 넘보던 비트코인은 6000달러대로 급락한 반면 800~900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비트코인캐시는 240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이러한 흐름이 국내 거래소인 빗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 투자자들의 비트코인캐시 매수세가 몰리면서 이날 오후 3시 30분 경 280만원 대까지 상승했다. 이후에도 매수·매도 주문이 폭주하면서 트래픽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12일 빗썸이 서버 점검을 위해 사이트 문을 닫은 시각,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원에서도 거래량 폭주로 일부 서비스가 지연됐다. 출처: 코인원(모바일 화면 캡쳐)
4시경 긴급 점검과 함께 장애 복구를 시작했다. 12일 하루 빗썸에서만 6조5000억원이 거래돼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정도로 거래가 크게 폭증했다. 하루 거래량이 3000억~7000억원 사이에 움직이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거래량은 그야말로 폭증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이 시점에서 빗썸 뿐 아니라 다른 국내외 주요 거래소에서도 서버 이슈가 동시에 발생했다).”

Q : 빗썸이 취한 조치는 무엇인가. 거래가 정상화된 시점은. A : ”가용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서버 증설 및 시스템 최적화 작업을 했다. 그 결과, 장애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1시간 30분만인 오후 5시 30분쯤 서비스를 정상적으로 재개했다.

Q : 대기 중인 거래를 일괄 취소조치 했다. 고객의 동의 없이 임의로 취소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A : “거래 대기건 일괄 취소 조치는 고객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서비스 재개 당시 점검 이전과 비교해 최대 30%까지 일부 암호화폐 시세 변동이 발생해 고객의 피해가 예상되었기에, 거래 안정화 및 피해 최소화를 위해 부득이하게 해당 조처를 하고 고객에게 이와 관련 내용을 고지했다.”

Q : ‘긴급 서버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일부러 서버를 닫고, 일부 IP는 열어 자사 물량을 거래했다는 의혹이 있다. A : “절대 그런 일은 없다. 모든 거래 기록은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돼 있으며, 점검 시간대에 거래된 물량은 전혀 없다. 또한, 거래(구매ㆍ판매) 대기건을 모두 취소시킨 상황에서 거래가 발생할 수 없다.”

Q : 투자자 손실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A : “현재 확인 중에 있다.”

Q :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인다. 회사의 입장과 대응 방침은. A : “고객이 불편을 겪은 데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현재 외부 전문기관의 협조를 받아 해당 부서에서 구체적인 대책안을 논의 중이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드리겠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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