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입주 8년만에 베란다 단속, 주민에 보복행정"

임명수 2017. 11. 1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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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8년 간 안해 놓고 특정 아파트 콕 찍어 단속
해당 아파트, 장석현 남동구청장 경찰에 고소
소래포구 임시어시장 불법조성에 맞대응한 듯
주민들 "받겠다"..단속 이유에 법적 대응 예고
공무원들도 "주민 상대 보복행정은 과한 행정"
전문가 "구청장 등 행정권 남용이자 문책 대상"
소래포구 임시어시장이 해오름공원에 불법으로 조성돼 있다. 몽골텐트 뒤쪽으로 보이는 곳이 에코메트로 12단지 아파트. [사진 임명수 기자]
14일 오전 8시 30분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에코메트로 12단지 아파트 정문 앞. 단지 안쪽은 등교하는 학생과 출근길에 오른 직장인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터라 썰렁했다. 평일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에코메트로 12단지에 있어 이날은 특별한 날이다. 인천시 남동구청에서 ‘베란다 불법 확장 세대 현장조사’를 벌이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 듯 굳게 닫힌 창문이 '우리 집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에코메트로 12단지 주민들은 단속을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들 스스로 불법을 정상화하기 위해 투쟁을 벌이는데, 베란다를 불법 확장했는지를 조사하겠다는 구청을 막지 않겠다는 것이다. 집단행동 없이 가정별로 대처하기로 했다.

다만 주민들은 단속을 수용하되 명백한 ‘보복 행정’이자 ‘표적 단속’이라며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2009년 입주한 뒤 단 한 번도 실시하지 않은 ‘베란다 불법 확장’을, 그것도 ‘에코메트로 12단지’만을 ‘콕’ 집어 단속하기 때문이다.

실제 남동구청은 에코메트로 12단지가 2006년 아파트 사업승인을 받은 이후부터 이번 단속 방침이 있기 전까지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물론 관내 모든 아파트에 대한 조사도 안 했다. 단속 실적이라곤 신고가 들어오면 나가는 정도의 수동적 단속 실적만 몇 차례 있을 뿐이다.
소래포구 임시어시장과 왕복 4차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에코메트로 12단지. [사진 임명수 기자]
여기에 주민들이 지난달 장석현 남동구청장과 공무원 등을 상대로 불법조성 묵인 및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것도 작용했다고 한다. 올 2월 소래포구 어시장 화재로 일부 좌판이 소실되자 일부 상인들이 아파트 인근 해오름공원에 임시어시장을 불법 조성한 것을 장 청장이 묵인했다는 것이다. 불법을 정상화해 달라는 주민들의 입을 행정권을 동원해 막으려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주민들은 ‘소래포구 해오름공원 임시어장 개설저지 투쟁위원회’를 결성한 상태다.

구청의 행정권 남용은 또 있다. 불법 조성된 임시어시장에 대해 ‘불법 조성에 따른 철거 및 원상복구 명령’과 함께 행정대집행(강제철거)을 예고해 놓고 후속 조치 없이 방치하고 있다. 반면 주민들이 내 건 현수막은 불법이라며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 철거했다. 주민들이 또다시 내걸자 자진철거 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와 함께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에 주민들은 현수막을 자진철거한바 있다.

소해투위 최성춘(50) 위원장은 “상인들이 몽골 텐트를 불법으로 설치할 때 장 구청장이 현장에 나와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주민들의 카메라에 포착됐다”며 “구청장의 묵인 없이 일반 공원에 어떻게 불법조성이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 구청장은 임시어시장의 불법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하는 것이 구청의 입장인데 오히려 주민들의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 좌판을 놓고 상인들간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기존 좌판에서 영업중인 상인들. 임명수 기자
남동구청의 이런 행태에 인천지역 공무원들조차 혀를 내두르고 있다. 한 공무원은 “정당한 행정권 행사라면 몰라도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어디있느냐”며 “같은 공무원으로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최병대 한양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8년 동안 하지 않던 베란다 불법 확장 단속을 인제 와서 문제 삼는 것은 구청장은 물론 공무원들이 문제 있는 것으로 행정권 남용이자 문책 대상”이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당한 행정권이 행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남동구청은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4시까지 베란다 불법 확장 여부 조사를 했다. 구청 담당 부서 공무원 3명이 나섰다. 점검 과정에서 모두 5세대가 현장 조사에 응했다고 한다. 다만 이들 세대에 위법이 발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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