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도 다 해" 학원 셔틀.. 속으로 앓다 우울-불안-반항장애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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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에 진력하는 부모를 탓할 수만은 없다. 부모에겐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 자녀가 ‘특목고→명문대’ 코스에 올라타도록 도우려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소아청소년전문의들은 아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다른 아이가 하니까…’란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강남 등 학원 밀집지역 부작용 더 커
서울의 학원 밀집지역인 강남 노원 서초 양천 4개 구의 병·의원 전문의들은 전원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한 이상증상 진료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는 “이번 설문을 진행하다 보니 지역별 차이가 분명히 드러났다”며 “지역사회에서 ‘사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높아지면 부모는 결국 동조하게 되고, 적응하기 어려운 아이가 늘어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교육으로 인한 이상증상을 진료한 경험이 있는 의사 79명의 응답(복수 응답 2개까지 허용)을 분석했더니 학생들이 보이는 주요 증상으로는 ‘우울’(33.1%)이 가장 많았다. 이어 ‘반항’(30.1%), ‘불안’(24.7%) 순이었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때리거나 밥을 굶기는 물리적 학대는 아니지만 학습을 독려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언어적 학대가 일어난다”며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는 부모로부터 지지가 아닌 비난만 받다 보면 아이들에게 심리적 취약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받은 진단명은 ‘우울장애’(38.3%)가 가장 많았고 ‘불안장애’(22.8%), ‘적대적 반항장애’(15.5%),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10.7%) 순이었다. 불안장애는 성적 상위권 학생들에게서 오히려 많이 나타난다. 과학고에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다른 아이가 공부할까 봐 불안과 불면에 시달리다 공황발작을 일으킨 A 양 같은 경우다.
○ 아이의 말 착각하는 부모들
치료 방법으로는 ‘부모 교육 또는 상담을 권했다’(36.2%)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사교육 시간 및 횟수를 줄이도록 했다’(27.6%), ‘아이 상담 또는 심리 치료를 했다’(26.4%), ‘약물을 처방했다’(9.2%) 순이었다. 결국 치료 방법의 핵심은 부모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다.
부모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사교육 빈도를 조절하기 쉽지 않다. 초등 3학년생인 B 군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틱 증상이 심해져 진료를 받았다. 만 5세부터 사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매년 학원 수를 늘려 왔다. B 군 엄마는 “좋아하는 과목만 시켰다”고 말했지만 아이 마음은 달랐다.
김 교수는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엄마를 비롯해 주변의 칭찬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하는데 부모는 ‘공부를 좋아한다’고 착각한다”고 했다. 이런 지시적 부모와 순응적 아이의 관계는 비극으로 끝나기 쉽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 내용이 어려워지고 꾸중 들을 일만 남아서다. 정서적, 언어적 학대가 심한 체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과도한 사교육은 아이의 과거, 현재, 미래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 교수는 “사교육이 아이 두뇌에 과도한 자극을 주고 정보를 과잉 입력하면 아이는 쉬고 싶어 엄마를 피하게 된다”며 “이런 불안정한 애착관계는 아이의 뇌 발달과 성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아이는 단순한 놀이로 행복할 수 있고 이런 행복한 기억이 차곡차곡 쌓일 때 심리적으로 건강한 어른이 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아픈 안타까운 사례들도 전했다. 중고교 시절 줄곧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고교 3학년생 C 군은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안 보겠다고 선언했다. C 군은 “내가 대학에 가봤자 ‘저 사람들(부모)’ 자존감 올려주는 일일 뿐”이라고 말했다. 옷 한 벌 안 사 입고 학원을 보냈던 엄마는 우울증에, 밤마다 집을 나가는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는 불면증에 걸리면서 가족이 붕괴 직전에 놓였다.
우경임 woohaha@donga.com·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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