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권의 자연생태탐사기]솔부엉이를 부르다

장이권 | 이화여대 교수·에코과학부 입력 2017. 11. 1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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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솔부엉이 정다미 꾸룩새연구소 소장 제공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8월 하순의 월요일이었다. 오전에는 흐렸지만 오후에는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높게 걸려 있다. 게다가 공기도 선선해져 가을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물씬 났다. 늦은 오후에 솔부엉이를 탐조하러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꾸룩새연구소’를 찾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마을 주변의 새들을 관찰하고 기록해온 정다미 소장과 그의 어머니인 부소장이 운영하는 연구소이다. 하루가 다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파주이지만 그래도 꾸룩새연구소와 그 주변은 아직도 전형적인 농촌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4월 초부터 제비를 시작으로 후투티, 솔새, 숲새, 꾀꼬리, 솔부엉이 등의 여름철새가 순서대로 고향인 파주로 돌아온다. 솔부엉이는 5월 말에 우리나라에 도래하는데 다른 여름철새에 비해 늦게 오는 편이다. 늦게 번식을 시작하는 새에도 자연은 기회를 준다. 솔부엉이는 나무 구멍에서 둥지를 틀 수도 있지만 번식을 마친 까치의 빈 둥지를 재활용하기 좋아한다. 솔부엉이는 보통 6월 초에 산란을 시작하여 8월 초면 이소한다. 솔부엉이의 새끼는 부모의 둥지를 바로 떠나지 않고 가을에 이주할 때까지 부모와 같이 지낸다. 그래서 8월 하순 즈음은 어미와 새끼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아 꾸룩새연구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꾸룩새연구소를 내려다보는 참죽나무 두 그루가 눈에 띈다. 솔부엉이가 이 나무의 죽은 가지를 횃대로 이용하기 좋아한다고 설명해 준다. 참죽나무 뒤로는 바로 장명산과 연결되어 있다. 꾸룩새연구소 앞쪽으로는 논이 넓게 펼쳐져 있고, 산도 있다. 장명산이나 앞에 있는 산은 참나무와 밤나무가 우거져 있고, 여기에는 사슴벌레, 하늘소, 나방 등과 같은 대형 야행성 곤충이 많이 살고 있다. 솔부엉이는 매년 이 숲에 찾아와서 대형 야행성 곤충을 잡아먹으면서 번식을 한다. 솔부엉이의 발톱은 다른 부엉이처럼 날카로운 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곤충은 미끈한 외골격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이런 발톱으로 곤충을 잡으면 미끄러져 도망가기 쉽다. 그래서 솔부엉이의 발에는 뻣뻣한 털이 잔뜩 나있다. 이런 털이 있는 발톱으로 잡으면 곤충은 쉽게 도망가지 못한다. 그래서 솔부엉이의 ‘솔’은 발톱에 있는 뻣뻣한 털에서 유래한다.

이날 꾸룩새연구소에서 경험한 탐조는 특별했다. 탐조는 보통 망원경이나 필드스코프를 이용하여 멀리서 새를 관찰한다. 그러나 꾸룩새연구소 소장은 솔부엉이를 우리 가까이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연구소장은 양손을 모아 “호~호~” 하며 솔부엉이 소리를 흉내 냈다. 그러나 솔부엉이의 화답은 없었다. 계속 불어봐도 반응이 없어 우리는 망원경을 들고 앞산으로 이동하였다. 솔부엉이가 번식했던 까치둥지에서도 솔부엉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이주할 때가 아닌데…’ 하며 살짝 걱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때 갑자기 우리 머리 위를 지나 숲속으로 새가 날아갔다. 그리고 “호~호~” 하고 소리를 냈다. 연구소장은 반가워서 같이 화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꾸룩새연구소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솔부엉이를 불렀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솔부엉이는 꾸룩새연구소 앞의 전봇대 위에 내려앉아 우리를 경계하듯 계속 소리를 냈다. 이때 또 다른 솔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와 참죽나무에 내려앉았다. 어미 솔부엉이 소리를 듣고 온 새끼 같았다.

우리는 망원경으로 전봇대 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전봇대 위에 검은 물체가 있지만 주위의 어둠으로 스며들어 정확하게 구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끔뻑끔뻑하는 눈을 보니 솔부엉이가 분명하다. 옆에서 다시 “호~호~” 소리를 내며 솔부엉이를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솔부엉이가 전봇대에서 뛰어내려 내 앞으로 날아왔다. 순간 망원경은 날아오는 솔부엉이로 가득 차서 마치 나를 덮치려는 것 같아 깜짝 놀라 물러섰다. 다행히도 솔부엉이는 우리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전봇대로 날아갔다.

솔부엉이 같은 올빼밋과 새들은 번식을 할 때 영역을 가지고 있다. 영역을 보유하고 있는 새는 그 영역에 존재하는 자원을 독점할 수 있다. 그러나 영역을 유지하는 일은 비용이 따른다. 영역 보유자는 끊임없이 자기의 영역을 다른 새들에게 알리고, 침범하는 새를 쫓아내야 한다. 새들은 주로 소리를 이용하여 영역행동을 한다. 솔부엉이의 “호~호~” 소리는 바로 영역을 주장하는 신호이다. 만약 영역 내에서 다른 솔부엉이의 소리를 들으면 영역 보유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바로 침입자를 찾아 나서고, 소리로써 대응한다. 침입자가 물러서지 않을 경우 싸움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영역을 보유한 새는 영역 밖에서 발생하는 소리에 대해 점차로 구분하여 반응한다. 예를 들면 이웃하는 새의 소리에는 처음에는 민감하게 대꾸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습관화(habituation)되어 덜 공격적으로 된다. 심지어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꾸룩새연구소 근처에 사는 솔부엉이는 지난 몇 주 동안 매일같이 불러도 어김없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은 솔부엉이가 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새끼의 존재가 그런 요인이 될 수 있다. 새끼가 침입자의 소리를 듣고 다가간다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미는 침입자의 소리가 들리면 매번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이 가설을 검증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날은 여름밤 탐조의 백미였다.

<장이권 | 이화여대 교수·에코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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