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박근혜가 구치소에 있어야 하는 이유

김준기 사회부장 입력 2017. 11. 1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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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요즘 신문지상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이 사라졌다. 지난달 16일 재판에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며 재판 거부를 선언한 후 구치소에서 나오질 않는다. 변호인단도 모두 사임하자 법원은 재판을 이어가기 위해 국선변호인을 5명이나 선임했다. 얼마 전 이들에게 12만쪽에 달하는 사건 기록이 전달됐다. 하지만 국선변호인들이 기록을 다 검토한 뒤에도 재판이 정상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가 국선변호인과 함께 법정에 나올 것 같진 않아서다. 그래서 재판부가 어쩔 수 없이 피고인 없는 궐석재판을 하면 그와 지지자들은 그것을 놓고 잘못된 재판이라고 열을 올릴 것이다. 그것이 그의 노림수다.

그는 왜 자신이 구치소에 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그 이유를 억지로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와 그의 지지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은 알고 있는 이유다. 지난 여름휴가 때 그가 왜 구치소에 있어야만 하는지 실감할 기회가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남도로 향하는 휴가 길에 목포신항을 들렀다. 철망 너머 작열하는 태양 아래 거대한 고래처럼 누워있는 세월호는 서서히 녹이 슬어가는 듯했다. 뜨거운 날씨에 평일임에도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대부분이 우리처럼 가족 단위였다. 아내처럼 누군가는 숨죽여 눈물을 훔치고, 누군가는 낮은 목소리로 분노를 되뇌고, 아이들은 저 배에 타고 있던 언니, 오빠, 누나, 형들은 왜 죽었어라고 물었다.

그가 대통령 자리에서 밀려나고 구속된 것은 지난해 이맘때쯤 터진 국정농단 사태가 직접적 원인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그 훨씬 전인 세월호 참사 때부터다. 세월호 사고 발생 자체는 그의 책임이 아닐 수 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수백명의 목숨이 검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 그의 대처는 너무나 미흡했다. 그리고 그는 사고 이후 피해자 가족들은 물론, 그들과 함께 가슴이 무너져 내렸던 국민들을 진정으로 위로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과 그의 정부의 잘못된 대처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을 잠재우는 데만 몰두했다. 국민들은 속지 않는다. 아무리 여론을 호도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억눌러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에 대한 회복할 수 없는 실망감이 커졌고, 이는 국정농단 사태로 폭발했다.

그의 정치보복 주장은 형식논리학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모름지기 정치보복이라면 정권이 바뀌고 난 뒤 새 정권이 전 정권 인사를 탄압할 때 그나마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그가 구속된 때는 현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이다. 그의 현재 상황은 그가 권좌에 있을 때부터 이미 절차가 시작됐다. 국정농단 사태로 최순실을 비롯해 안종범, 정호성 등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구속되고, 그로 인해 그는 탄핵심판을 받아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어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에서 벗어난 그가 공범들과 마찬가지로 구속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당초 그는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 했다. 그는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득표율 3.53%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이겼다. 그건 최근 드러나듯이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적인 사이버공작 덕도 컸을 것이다. 그가 정보기관의 불법행위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다는 걸 숨기기 위해, 그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국정원에 파견나간 검사들은 위장사무실과 가짜 증거, 허위 진술로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방해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어 그런 행위가 드러나 수사가 시작되자 당시 국정원 파견 검사 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검사가 죽음으로 몰린 것도 따지고보면 그 때문이다.

그가 지금 구치소에 있는 것은 새 정부 때문도 아니고, 검찰 때문도 아니다. 정권교체가 확실시되자 검찰이 새로 들어설 정권의 눈치를 봐 그를 구속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그때 그를 단죄하지 않았으면 검찰도 함께 사망선고를 받았을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그렇게 그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려 구치소에 보낸 것은 국민들이다.

세월호를 찾았을 때 우리 아이들에게 세월호 언니, 오빠, 형, 누나들에게 보내는 엽서를 쓰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 한 여학생이 있었다. 안경 너머에 맑은 눈빛을 가진 야리야리한 여학생은 목포에 사는 중학생인데 자원봉사를 나왔다고 했다. 이런 맑은 눈을 가진 국민들의 눈물과 분노 때문에 그는 구치소에 있다. 그가 지난달 법정에서 정치보복 운운하며 4분 동안 읽어내려간 문장들에는 자신과 함께 재판받는 공직자와 기업인들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말은 있었지만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언급은 없었다. 그것이 그가 여전히 구치소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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