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누아르' <악녀> <미옥>.. 아쉬운 점도 닮았다

이정희 입력 2017. 11. 12. 16:51 수정 2017. 11. 1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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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욕망의 치킨 게임? 핏빛 멜로?.. 아쉬움 설득해 내는 배우들의 호연

[오마이뉴스 글:이정희, 편집:김윤정]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미옥>은 주연 김혜수의 열연과 동시에, 영화로서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여준 작품인 듯싶다.

<미옥>은 지난 6월에 개봉한 <악녀>에 이어 여성 캐릭터를 원톱으로 내세운 느와르 액션 스릴러 영화다. 두 영화 모두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19금 장르 영화'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적나라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악녀>가 현란한 살상신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미옥>은 적나라한 성접대의 장면을 보여준다. <악녀>에 홀로 건물 몇 층에 포진해 있는 양아치 무리를 피 칠갑을 하며 홀로 싸워내며 주인공임을 드러내는 숙희(김옥빈 분)가 있다면, <미옥>에는 그와는 정반대로 화면으로 벌어지는 그 '성의 향연'을 지휘하는 마스터로서의 미옥, 아니 나현정이 있다. 캐릭터의 활약상 그 양상은 다르지만, 영화는 그렇게 여주인공의 대단한 능력을 전면에 드러내며 존재감을 설명한다.

모성적 수동성으로 소모되는 여성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하지만 그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들은 결국 영화의 중반 이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황을 주도해가던 능력이 무색하게 자신에게 닥친 '모성'의 한계로 인해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만다. 킬러로 거듭난 숙희가 자신의 목숨 대신 선택한 아이와의 안온한 삶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거두어 살며 '사랑하는 이와의 가정'을 꿈꾸듯, 나현정 역시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적진에 뛰어들어 조직을 살리고, 그 조직의 언더보스로 성장한다. 현정은 범죄 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내지만,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부터 누수가 시작된다. '어머니'로서의 그녀를 도발하고 '어머니'로서 그녀를 파멸과 최후로 이끈다.

아마도 <악녀>도 그렇고, <미옥>도 영화의 만듦새나, 배우의 열연보다 더 '폄하'되는 이유에는 그 도발적인 등장의 여주인공들이 자신에게 닥친 운명에 허무하게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끌려들어 가고 파멸에 이른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본질은 어쩌면 '모성'보다는 '수동성'에 더 방점이 찍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모성이거나, 사랑한다는 것이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어서는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사랑'을 하고, '어머니'가 된 여성이, 그 상황에 '주체'가 되지 못한 채, 끌려들어가 '휘발'되어 버린다는 점이 본질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건 애초에,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으면서도, 여성이 누아르, 혹은 액션 스릴러의 주인공이 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만든 이의 편견이, 멋들어지게 여성으로부터 시작된 영화를, 여성의 운명적 비극으로 막을 내리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원초적 의심을 품게 만든다. 

충돌하는 세 욕망의 치킨 게임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그런 면에서 더욱 <미옥>은 아쉽다. 김 회장이라는 보스가 있지만 실질적 '언더 보스'로서 범죄 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성장시킨 보스 나현정을 그렇게밖에 소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애초에 자신의 아이로 인해 보스에 절대 충성을 바치는 조직의 이인자라는 캐릭터도 그렇지만, 보스의 유고 이후 오로지 자신의 아이만을 위해 치달리는 모성으로서의 그 향배가, 캐릭터의 입지를 축소한다. 

그럼에도 <미옥>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각자 자신의 욕망이 구체적인 세 인물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치킨 게임이라는 점이다. 도대체 왜 이선균이 조폭을? 했지만, 왜 이선균이어야 했는지가 설명되는 이선균이 분한 상훈의 비극적 순애보라 쓰고 '소유욕'이라 해석되는 사랑. 그런 이선균의 사랑을 도발한 이희준이 분한 최대식의 폭력적인 자기 보신욕, 그리고 이런 이들의 욕망이 도화선이 된 나현정이 된 미옥의 '안락한 전향욕구'라 쓰고 위장된 모성이라 읽힐 수 있는 이 세 욕망의 접점은 흥미롭다. 이들은 '조직'의 일원이지만, 막상 그들의 '행동' 동인에는 '조직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개인적 욕망으로 추돌하는 그들 앞에 조직은 소모적으로 소용될 뿐이다.

그래서 차라리 어설픈 모성에의 헌사 대신, 이 최대식과 상훈을 그리듯이 나현정 역시 어설픈 모성에의 헌사 대신, 그녀의 액션만큼이나 그간 언더보스로 닦여온 범죄 조직의 이인자다운 생존과 보존과 안위, 그 욕망의 발현이었다면 오히려 <미옥>은 좀 더 치열한 누아르로서의 성취를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그리고 남겨진 고민들 

그간 김혜수의 전작이었던 <차이나타운>, 그리고 <악녀>, 그리고 <미옥>은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누아르 장르라는 차별성을 앞세워 관객을 공략했다. 하지만, 그 '전면'에 내세웠다는 홍보성을 뛰어넘어, 여성의 자기 주도성을 내적으로 이해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어쩌면 그건 그 누구 한 사람의 오류나 오인이라기보다는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사는 여성'에 대한 시대적 이해가 부족한 지점의 소산이라 보는 게 맞을 듯싶다. 그런 면에서 이들 영화가 흥행에 부진을 겪는 지점 역시 과연 그런 전면에 내세운 여성의 캐릭터에 대한 짧은 이해 때문인지, 아니면 어쩌면 아직도 사람들에게 여성이 전면에 나선 누아르에 대한 이질적임 때문인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고민해볼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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